특집 | 스마트 국방·드론 산업대전 -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53년간 소비자 건강 지킨 ‘국민 갑옷’

의류, 세정제, 마스크, 항공기 검사·인증…탄소동위원소 검사로 천연물질 한눈에

  •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8-11-02 15: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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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용두동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본관(왼쪽). 10월 31일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본관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의류제품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서울 용두동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본관(왼쪽). 10월 31일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본관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의류제품 품질 검사를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섬유, 표백제, 세정제,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 같은 생활용품은 물론 어린이용품, 가전제품, 항공기 내장재 등 다양한 공산품의 안전성 검사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몸에 닿거나 먹는 것 대부분을 시험하고 인증한다고 보면 돼요. 중국 상하이와 다롄, 베트남 하노이 등 해외에서도 시험이 한창입니다.” 

    10월 30일 서울 용두동에서 만난 허재호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해외사업본부장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KATRI는 1965년 4월 대한메리야스시험검사소로 발족한 국가 공인 종합 시험·인증기관이다. 전 기관명에서 보듯, 가난하던 시절 KATRI는 한국을 먹여살린 의류 수출품에 대한 검사를 시작했다. 당시 우리의 기술 수준은 짐작할 만하지만, KATRI는 질 좋은 의류를 선별해 배에 실어 보내면서 보세가공·수출입국(輸出立國) 경제발전의 기치를 드높였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이 보유한 가속질량분석기(위)와 의류 완제품 쾌적성 검사를 위한 서멀마네킹. 원단 시료를 마네킹에 입혀 실험한다. [사진 제공 · 한국의류시험연구원]

    한국의류시험연구원이 보유한 가속질량분석기(위)와 의류 완제품 쾌적성 검사를 위한 서멀마네킹. 원단 시료를 마네킹에 입혀 실험한다. [사진 제공 · 한국의류시험연구원]

    지금도 직원 380여 명이 서울 본원과 경기 안양별관, 전국 5개 지원 및 해외지사 등에서 일하며 국내에서 판매되는 의류의 60% 이상을 검사한다. 씨실이나 날실 1계열의 실에 코(loop)로 연결돼 만들어진 메리야스 시험에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미생물이나 화학물질, 열 침투를 막는 보호복과 소방복(消防服), 보호장갑 같은 특수 고난도 시험과 함께 안전성 검사도 정밀하게 수행한다. 소방복의 꿰뚫림이나 열피로도, 절단지수 같은 안전성 검사는 현장에서 뛰는 소방관의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연구원들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검사에 임한다. 

    최근에는 방수·방온 등 고기능성 원단으로 만든 의류가 쏟아지면서 서멀마네킹(Thermal manekin·체온, 발한 등 인체와 유사한 조건을 가진 특수 마네킹)을 이용해 보온성과 투습저항성, 원단 수분 제어 등을 평가하는 쾌적성 검사 의뢰도 밀려들고 있다.



    ‘대한메리야스시험검사소’로 출발

    마스크 착용자가 염화나트륨 에어로졸이 공급된 체임버에 들어가 마스크 내 · 외부 염화나트륨 농도를 측정하는 누설률 실험. [사진 제공 ·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마스크 착용자가 염화나트륨 에어로졸이 공급된 체임버에 들어가 마스크 내 · 외부 염화나트륨 농도를 측정하는 누설률 실험. [사진 제공 · 한국의류시험연구원]

    “검사 결과에 따라 EQ마크(친환경 제품)나 비자극, 항균, 탈취 마크 등을 부여합니다.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아지고 첨단 레포츠 의류 등 신제품이 쏟아지는 만큼 고도의 평가기술 개발에도 역점을 두고 있고요. 우리의 연구 데이터와 결과를 바탕으로 고기능성 의류의 적절한 세탁 방법을 개발해 추천하거나, 특수 원단의 경우 다년간 수행한 신뢰성 연구 결과를 제공하기도 해요.” 

    허 본부장의 말처럼 시험평가와 검사, 인증은 물론 산업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품질 향상과 기술지원도 KATRI의 주요 업무다. 동시에 산업이 발전하면서 KATRI의 업무 영역도 대폭 넓어졌는데,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의류에서 벗어나 완구 등 일반 공산품은 물론 자동차, 전자, 건축 내장재 등 산업자재 품질 시험과 중금속 등 유해물질 시험도 병행하고 있다. 엄마들이 걱정하는 어린이용품의 안전성 문제도 KATRI 연구원들이 책임진다.
     물놀이 기구와 비비탄총의 안전성 인증부터 유아 섬유제품, 기저귀, 보행기, 안경테, 장신구 등 생활용품 적합성 검사까지 물 샐 틈이 없다. 전자제품이 고장 없이 일정 기간 최초 품질과 성능을 유지하는지 평가하는 ‘신뢰성 평가’ 등 지난 53년간 소비자의 ‘헬스 케어’ ‘건강 갑옷’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뿐 아니다. 자동차 시트와 안전벨트, 각종 플라스틱 내장재는 물론 쇼핑백과 주방용품, 벽지 등 건축 내·외장재, 합성·주방세제 등 우리가 먹고 마시고 만지는 모든 생활용품의 안전성 검사도 KATRI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압력냄비와 가스라이터, 습기제거제, 쌍꺼풀용 테이프 등은 안전성이 입증되면 국가통합인증 ‘KC마크’를 부여한다. 

    2000년대 이후 친환경 제품 수요가 많아지면서 ‘천연재료’를 사용한 화장품과 샴푸가 쏟아져 나왔지만 제품에 있는 다양한 종류의 천연성분을 확인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 숙제도 KATRI가 풀었다. 2016년 가속질량분석기(AMS)를 도입하면서 국내 안전 기관 중 유일하게 석유화학제품과 천연원료(바이오매스) 제품을 정확히 분석할 수 있게 된 것. 5730년마다 그 양이 반으로 감소하는 방사성탄소동위원소(14C)의 성질과 대기 중 14C 농도를 보정해주는 대기보정계수(REF)를 적용하면 바이오탄소함량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성분 함유 여부, 단번에 알아낸다”

    박형건 KATRI 원장은 “석유의 생성은 수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석유화학제품의 경우 14C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나무나 곡물에서 추출한 바이오물질의 탄소함량을 계산할 수 있어 천연물이 함유된 제품 분석에 활용된다”고 설명했다. 

    탄소배출권 거래 제도가 시행됐지만, 바이오연료를 사용할 경우 사용 비율만큼 탄소배출권 감면을 받을 수 있어 기업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일까. 최근에는 항공우주방위산업에 필수인 융·복합 소재 평가 시험으로 영역을 넓혔다. 190도 고온에 견디는 열적 특성 및 기계적 강도검사 등 모든 시험장비를 갖춘 KATRI는 2014년 11월 미국 시험인증기관 PRI(Performance Review Institute)로부터 국제항공우주 분야 특수공정(NADCAP) 인증을 받았다. NADCAP 인증은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에 대한 글로벌 협력 인증 프로그램으로, 보잉사 등 세계적 항공사는 납품업체의 NADCAP 인증 취득을 의무화하고 있다. 그동안 독일에서 제품 인증을 받아 에어버스에 항공기부품을 납품하던 대한항공은 KATRI 부산지원에서 인증을 받고 있으며, 전차와 잠수함 등에 사용되는 부품 소재와 구조물의 열적·기계적 특성 검사도 KATRI가 맡고 있다. 

    박 원장은 “정부가 나서 해야 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 수행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연구원의 공공성을 키워야 한다”며 “정확한 인증 검사를 바탕으로 국민이 불안해하거나 궁금해하는 제품의 성분 분석이나, 사정이 어려운 중소기업의 경우 다양한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KATRI 직원들은 월 2회 수도권 4곳의 보육원을 방문해 물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박형건 한국의류시험연구원 원장
    “글로벌 전쟁에 나선 기업 의무 부대, 이제 국민 속으로…”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박형건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원장은 “KATRI는 기업의 품질 향상과 소비자의 신뢰도를 높이고 기술 지원을 통해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연구원”이라며 “특히 미세먼지 방지 마스크와 세정제, 표백제 검사 등 소비자를 지키는 최후의 ‘실드(shield · 방패)’라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벌레’란 별명이 붙은 박 원장은 행시 35회로 국무조정실 정책상황팀장,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 제품안전정책과 과장 등을 역임했으며, 2016년 10월 KATRI 원장에 취임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KATRI 업무 영역이 매우 광범위하다. 

    “세정제, 화장품, 옷, 자동차 등 우리 피부와 접촉하는 모든 것을 KATRI가 검사한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약이나 항공우주산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만큼 긴장감도 높겠다. 자칫 KATRI 검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렇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나 황사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보건용 KF94 마스크(0.4㎛ 크기의 입자를 94% 이상 걸러내는 마스크로 KF80, KF99 마스크도 있다) 등이 제 기능을 못 하면 직접적으로 국민의 건강을 해치게 된다.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KATRI의 모든 직원도 엄중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고, 성실하고 야무지게 검사에 임한다.”


    3단계 ‘KF 마스크’ 인증 검사

    ‘KF 마스크’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서 인증하지 않나. 

    “지난해 ‘KF 마스크’가 쏟아져 나올 때 우리 연구원은 자체 검사를 하고 있다. 당시 모든 제품의 검사를 마치려면 9개월가량 걸릴 정도로 많은 제품의 시험 의뢰가 들어와 무척 바빴다. 안면부 흡기 저항(마스크 착용 후 공기 흡입 저항을 측정)과 분진포집호율(마스크 투과율 측정), 누설률 시험 장비를 갖춰 주야간 할 것 없이 검사했다. 누설률 시험은 마스크 착용자가 염화나트륨 에어로졸이 공급된 체임버에 들어가 시속 6km로 빠르게 걸으면서 마스크 내·외부의 염화나트륨 농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 시험성적서가 발급되고 식약처가 인증을 한다. 단순한 마스크라도 과학적 인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렵게 제품을 개발했는데 정작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인력과 자금을 쏟아부어 제품 개발에 나섰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회사는 큰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중소기업이 신청하면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카운슬링을 해줘 위험도를 줄이도록 지원하고 있다.” 

    서울 용두동 본원과 안양별관, 부산지원 등 국내 7곳, 중국과 베트남 등에 해외지사와 사무소를 운영 중인데. 

    “해외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현지에서 곧바로 시험한다. 외국 시험기관은 우리 법규와 달라 검사 항목 등에서 차이가 날 수 있고, 기업 처지에선 생산현장에서 바로 인증받을 수 있어 편하다. 전방 깊숙이 들어가 경제전쟁을 벌이는 우리 기업들이 원활하게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때로는 상처를 치료하는 의무부대 역할도 한다.” 

    11월 2~3일 경북 구미시 구미코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스마트 국방·드론 산업대전’에 참가하는데. 

    “대회 참가 기업 상당수가 우리의 클라이언트라는 보고를 받았다. 국방과 항공우주산업 분야는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이자 KATRI의 미래 사업 영역이기도 하다. 이번 산업대전이 우리의 기술력을 알리고,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면서 KATRI가 나아갈 방향도 고심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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