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북한 핵·미사일이 실전배치되면 남북의 군사력 균형이 결정적으로 붕괴돼 혹시 평화가 유지된다 해도 종속적, 노예적 평화를 벗어나기 어렵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 이사장(전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예비역 육군 중장·사진)은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가 10월 25일 개최한 제4회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 ‘북핵과 대북 군사옵션’ 주제 강연에서 최근 정세를 이렇게 진단했다. “북한 핵개발이 완성 단계에 들어서면서 한국은 생사의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다. 김 이사장은 이어 “우리도 전술핵 재배치나 자위적 핵개발 등 강한 압박을 해야 한다”며 “우리가 오늘 어떤 용기와 지혜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미래 100년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이사장이 한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군사력 균형 무너지면 ‘노예적 평화’
북한의 핵개발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면서 대한민국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10월 19일 “북한이 대미 핵공격 능력을 갖추는 데 몇 달 걸리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북핵은 코앞에 닥친 위협으로, 바로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북한 핵·미사일이 실전배치되면 남북의 군사력 균형은 결정적으로 붕괴되고, 한국은 졸지에 전략적 피그미가 될 공산이 크다. 평화가 유지된다 해도 ‘종속적, 노예적 평화’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이 경우 우리에게 핵이 있든, 없든 북한이 어떤 도발을 해도 응징 보복이 어렵게 된다. 우리가 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우리로서는 북한 핵·미사일을 어떻게든 폐기해야 한다.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이 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민 수백만 명을 굶겨 죽이면서 만든 핵은 북한 체제 정통성의 방증이자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런 북한을 상대로 우리는 그동안 대화로 설득하고 달래면 될 것이라고 믿었다. 대북지원으로 다 굶어 죽어가던 김정일 체제를 살려내고 핵·미사일까지 만들게 했다. 국제사회의 ‘6자 회담’을 비롯한 ‘외교 경제적 제재’도 북한의 교활한 술수에 휘말렸다. 6자 회담은 말잔치로 끝난 셈이다. 러시아는 관심이 없고 일본은 영향력이 거의 없다. 미국도 주로 중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중국은 북핵 문제만 나오면 6자 회담을 거론한다. 그러나 6자 회담이 북한의 핵실험 시간 벌기와 식량·에너지를 얻어내려는 사기 수단이라고 꼭 집어 지적한 것이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다. 중국이 정말 원유 공급을 차단하고 확실하게 대북제재 고삐를 죄면 김정은 체제도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전술핵 재배치와 자위적 핵개발론’이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매우 유용한 대책임에 틀림없지만 북한 핵·미사일 폐기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임시로 대처하는 방안일 뿐이어서 한계가 있다. 특히 미국이 전술핵을 배치하려면 ‘전략적 필요성 못지않게 동맹적 신뢰와 관리상의 안전’도 중요하다. 그럼에도 ‘전술핵 재배치나 자위적 핵개발론’을 적극 주장해야 한다. 북한이 정말로 핵 보유국이 되면 미국과 내밀히 협의해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폐기하는 것은 물론, 우리도 사생결단으로 핵을 개발할 것임을 공개 선언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의 군사공격론만으로도 대북 억제 효과는 확실히 있다. 그러나 군사공격은 말이 쉽지 부담이 크다. ‘실현 가능성’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욱이 이제는 북한 핵능력이 만만치 않은 데다 중국도 세계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올라섰다. 이래저래 군사공격 여건이 매우 나쁘다.
그렇다고 군사공격이 무조건 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고도 북한을 타격할 수 있다”고 했듯 반드시 참혹한 피해가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작전을 어떻게 전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실현성 차원에서는 ‘군사공격’보다 ‘레짐 체인지’가 거론된다. 하지만 레짐 체인지 역시 확실한 북한 핵 폐기 방법이 될지는 의문이다. 지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핵·미사일 해결’에 대한 관심과 의지가 유례없이 강해 보이는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사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고 자유통일을 이루려면 우리 힘만으로는 어렵다. 우리에게는 지금 이것저것 따질 여유도 없다. 싫든 좋든 미국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단 평범하게 그냥 함께 가는 정도로는 안 된다. 한반도 자유통일을 내다보는 큰 전략 차원에서 한미가 총체적이고 긴밀한 협력을 할 수 있는 혈맹관계로 재정비해야 한다.
이제는 북한 핵위협의 차원이 달라졌다. 많은 전문가는 북한 핵·미사일이 과거에는 미국 동맹국에 대한 ‘간접 위협’이었지만 이제는 ‘직접 위협’이라고 표현한다. 미국도 서둘러 해결해야 할 긴급 안보 문제가 됐다는 뜻이다. 미국은 ‘군사옵션’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타협’하는 수밖에 없다. 군사옵션에는 핵시설만 정밀 타격하는 방법, 김정은만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작전’, 그리고 이들을 통합한 광범위한 군사공격 등이 있을 수 있다.
미국, 단순한 압박 수준 아니야
현재 미국은 군사옵션이 불가피할 경우 어느 것이 가장 적합할지 고뇌가 깊을 테다. 이런 군사옵션, 특히 ‘대북 군사공격’은 작전 준비와 사후처리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면 한국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수다.만약 미국이 정말로 대북 군사옵션을 감행한다면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미국도 중국이 적극 반대하면 난감할 수밖에 없다. 11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면 어떤 형태로든 협의가 있을 것이고, 그 결과가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때 일각에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환수’까지 거론한다는 게 어이없다. ‘한미연합전력의 작전지휘를 누가 하느냐’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한미연합사령부(연합사) 해체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로 이어진다. 대한민국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대전략 차원의 문제다.
지금 미국 전략자산이 수시로 한반도를 훑고 지나가고, 항공모함 전단과 동맹국 전력까지 한반도 주변을 순회하는 것을 보면 어떤 타임 테이블 위에서 움직이는 듯하다. 미국 측 의지가 만만치 않고 단순 압박이 아니라는 증거다. 물론 어떤 형태의 작전이건 우리와 협조하지 않은, 미국만의 일방적 공격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클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주한미군 외 전력으로 북한을 공격할 경우 우리는 막을 명분도, 방법도 없어 보인다.
혹자는 ‘그래도 전쟁은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공격으로 혼을 내서라도 북한 핵·미사일을 없애겠다는 것이지 언제 전쟁을 하자고 했던가. 중국이라면 몰라도 미국과 북한이 무슨 전쟁이 되겠는가.
이 시점에 특히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한미동맹은 물론 ‘전통적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도 더욱 튼튼히 재정비하고, 북한 핵개발 도전에 앞장서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정적 시점에 또다시 평화와 타협만을 내세우며 북한 핵 문제를 회피하고 동맹국을 흔들다 보면 영원히 우리의 미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오늘 우리가 어떤 용기와 지혜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미래 100년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