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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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경의 on the stage

서민들의 삶을 통해 우리 사회 민낯을 보다

연극 | ‘옥상 밭 고추는 왜’

  • 공연예술학 박사  ·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 간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17-10-30 14: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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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어느 날, 필자가 탄 광역버스에서 성추행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한 여성의 비명소리에 버스 승객들은 ‘정의의 사도’로 변신했다. 버스는 곧장 피해자와 가해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태우고 경찰서로 향했다. 목적지와는 다른 승강장에 내린 승객들은 다음에 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몇 정거장을 지났을까.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와 엄마가 버스에 오르자 자리에 앉은 승객들은 그들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아이 손을 꼭 잡은 엄마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승객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약자인 여성을 대변하며 사회 정의를 부르짖던 그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연극 ‘옥상 밭 고추는 왜’를 보면서 필자는 10년 전 그날을 떠올렸다.

    연극은 서울 변두리 빌라의 옥상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가 사라지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고추를 길러 이웃과 나눠 먹던 304호 광자가 옥상에서 쓰러지자 301호 현태는 이에 대한 진실을 파헤치려고 나선다. 현태는 303호 동교의 도움을 받아 진실에 가까이 다가선다. 그동안 201호 현자는 몇 차례 고추를 몽땅 따갔는데, 이 사실을 안 광자가 우연히 고추 따는 현자를 보고 “고추를 너무 많이 딴다”고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고혈압이 있던 광자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병원 신세를 지게 된 것. 현자는 평소 빌라 재건축을 반대한 광자에게 불만이 쌓여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된 현태는 현자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고, 갈등은 심화된다. 결국 광자가 죽음에 이르자 현태와 동교 등은 ‘외부 세력’의 힘을 빌려 현자의 사과를 받아내고 만다. ‘전문 시위꾼’이 등장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옥상 밭 고추는 왜’에는 저 인물, 저 대사, 저 행동이 굳이 필요할까 싶을 정도로 가지각색 캐릭터가 등장한다. 퇴직 후 주식과 부동산 사업으로 쓴맛 단맛을 다 본 현자, 한때는 잘나갔지만 무기력증에 빠져 이혼을 앞둔 동교, 세상에 대한 불평  ·  불만을 분노로 분출하는 현태 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도덕과 윤리를 논한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 23명의 말과 움직임에는 저마다 삶의 흔적이 묻어난다. 관객은 자신의 분신처럼 익숙한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고, 그 캐릭터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인물관계를 유추하며 인간군상의 내면을 가늠해본다. 자아성찰을 통해 인간의 이치와 가치를 새롭게 되새긴다. 

    빌라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에 따른 갈등 과정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공연을 본다. 타인의 이야기 속 거울에 내가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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