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나인스토리]
가슴에 코끼리 인형을 꼭 끌어안고 끊임없이 코끼리 이야기만 하는 남자가 있다. 곰곰이 되짚어보면 속사포와도 같은 코끼리 이야기는 눈물 젖은 절규다. 결핍의 늪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연극 ‘엘리펀트 송’(연출 김지호)이다.
캐나다 작가 니콜라스 빌런(41)의 2004년 데뷔작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극이다. 특히 2014년에는 찰스 비나메(70) 감독이 빌런의 시나리오에 메가폰을 잡은 동명 영화도 개봉됐다. 연극 ‘엘리펀트 송’은 2015년 한국 초연 이후 2년 연속 재공연을 거치며 관객의 가슴에 확실히 자리 잡았다. 특히 이번 공연은 한층 성숙해진 연기력으로 9년 만에 연극무대로 돌아온 정일우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느낄 수 있다. 극이 반전을 거듭하는 사이 관객은 물과 기름같이 섞이지 못하는 서스펜스와 감동을 오가며 손에 땀을 쥔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밤, 캐나다 브로크빌의 한 정신병원 의사인 로렌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병원장 그린버그(이석준·고영빈·양승리 분)는 로렌스의 행방을 추적하고자 그가 마지막으로 진찰한 환자 마이클(정일우·강승호·곽동연 분)을 찾아온다. 개인적인 일로 마음이 바쁜 그린버그는 빨리 조사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환자 차트를 펴보지도 않는다. 로렌스의 진찰실에서 맞닥뜨린 두 사람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마이클은 수간호사 피터슨(고수희·박지아·이현진 분)을 의식하며 그를 배제시키려 한다. 실종사건의 실마리를 얻으려는 그린버그는 애가 타지만 코끼리 인형 ‘앤서니’를 가슴에 안은 마이클은 능청스럽게 이해 불가한 코끼리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는다. 인내심이 바닥난 그린버그에 비해 마이클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존속살해라는 패륜을 저지른 정신병자 마이클의 말소리는 허공의 메아리가 아니다. 외려 촘촘하게 잘 짜인 퍼즐에 가깝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애정 결핍 속에서 애타게 사랑을 갈구해온 마이클의 상처와 아픔이 객석으로 고스란히 전해져 눈물을 훔치는 관객이 의외로 많다. 코끼리에 집착하는 마이클의 우수에 젖은 눈망울이 애달프게 다가온다. 결국 마이클이 갈망하던 것은 복닥복닥 더불어 사는 우리네 가족의 따뜻함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