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미국이 직면한 가장 도전적이고 중요한 위협은? 

• A 중국 스파이

‘필립스 66’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을 생산하고 각종 에너지 제품도 개발, 판매해온 미국 에너지 회사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중국 출신 연구원이 영업비밀을 훔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했다. 미국 영주권자인 탄홍진(36)은 2017년 6월부터 필립스 66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이 회사는 그동안 리튬이온전지 등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해왔다.

10억 달러 가치의 차세대 배터리 기술

FBI는 베테랑 수사 요원들을 투입해 24시간 탄 연구원을 감시하는 등 은밀하게 수사를 벌였다. 그리고 그가 거주하던 아파트를 샅샅이 수색한 결과 노트북컴퓨터에서 리튬이온전지를 개발 중인 한 중국 회사와 맺은 고용 계약서를 찾아냈다. FBI는 탄 연구원이 회사의 허가 없이 연구개발 자료가 들어 있는 수백 개의 파일을 몰래 내려받은 외장하드도 발견했다. 탄 연구원은 FBI 조사에서 “기밀을 들고 중국으로 가 새로 취업할 계획이었다”고 진술했다. 미국 연방 검찰은 올해 11월 산업스파이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그에 대한 선고기일은 내년 2월 12일이다. 

존 디머스 미국 법무부 국가안보담당 차관보는 “그가 유출한 것은 차세대 배터리 기술로 10억 달러(약 1조1640억 원)의 가치가 넘는다”며 “이번 사건을 통해 미국의 지식재산권을 훔치려는 중국의 계획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난징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캘리포니아공대(Caltech)에서 재료공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유능한 과학자였다. 그가 어떻게 중국 정보기관에 포섭돼 스파이 활동을 해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쉐화 에드워드 펑(56)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그마한 여행 가이드업체를 운영해온 중국계 미국인이다. 펑은 2001년 임시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2006년 미국 여성과 결혼해 영주권을 받았고, 2012년 미국에 귀화했다. 이후 중국인 관광객과 유학생을 상대로 가이드를 하는 등 평범하면서도 모범적인 생활을 해왔다. 펑이 중국 스파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FBI는 수년간 그를 감시해왔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활동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호텔 객실까지 안내하는 등 가이드로서 일상적인 생활을 해왔다. 다만 가족을 만나거나 사업을 하기 위해 중국을 자주 오갔다. 

펑은 미국의 국가 안보 기밀을 직접 수집하는 역할이 아닌, 정보를 몰래 전달하는 운반책이었다. 그는 2015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와 뉴어크, 조지아주 콜럼버스 등에 마련된 접선 장소에서 미국 안보상 기밀 정보가 담긴 디지털 카드 등을 받아 중국으로 가져가 정보기관에 넘겼다. 그는 예약한 호텔 방에 들어가 중국 스파이들이 감춰놓은 USB 저장장치 등을 자연스럽게 수거해갔다. 미국 연방 검찰은 9월 펑을 스파이 혐의로 기소했다. 데이비드 앤더슨 연방검사는 “펑이 고전적인 스파이 기술과 첨단기술을 접목해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고 밝혔다. 펑은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최대 10년 징역형과 25만 달러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美, 중국 외교관 2명 스파이 혐의로 추방

미국 정부는 최근 비밀리에 중국 외교관 2명을 스파이 혐의로 추방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 외교관을 추방한 것은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인 1987년 2명을 추방한 이후 32년 만이다. 이들은 9월 말 네이비실 등 특수 작전부대가 주둔한 버지니아주 노퍽 소재 미군 해군기지에 침입하려던 혐의를 받고 있다. 각자 부인과 차량에 동승한 이들은 기지 검문소에서 되돌아가라는 말을 듣고도 계속 진입하다 동원된 소방차의 제지를 받고서야 멈춰 섰다. 이들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단순히 길을 잃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들이 기지의 보안 상태를 시험하려 의도적으로 경비병의 지시를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추방된 2명 중 1명은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정보요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정부는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다 한 달 후인 10월 국무부 명의로 ‘주미 중국 외교관과 공무원이 미국 관리를 만나거나 연구기관을 방문할 경우 사전에 통지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도 이에 맞서 외교부 명의로 ‘미국 외교관들이 중국 지방정부와 접촉할 경우 닷새 전 미리 통보해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미국 정부의 중국 외교관 추방 사례처럼 중국이 최근 들어 미국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스파이 활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 정보기관은 첨단기술뿐 아니라 안보기밀, 심지어 새로 개발한 씨앗까지 빼내가는 등 미국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면책특권을 활용해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중국대사관 직원들이 미국의 주요 연구시설을 예고 없이 방문하는 등 스파이 활동이 대범해지고 있다. 실제로 중국인 유학생 자오치안리(20)는 지난해 9월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해군 항공기지의 위성 안테나 등 정보시설을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 시설은 안보 위협을 감시하는 곳으로, 허가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하다. 체포된 자오는 중국 외교관들처럼 서투른 영어로 길을 잃었다고 변명했다. 또한 2016년 중국인 유학생 모하이롱은 미국 듀폰 파이어니어 등이 개발한 옥수수 씨앗을 훔쳐 중국으로 밀반출하려다 지난해 6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에번 메데이로스 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중국의 정보 수집 활동이 최근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링크드인은 중국 스파이들의 온상?

그런가 하면 중국 정보기관은 세계 최대 비즈니즈 네트워크 사이트 링크드인(Linked-In)을 이용해 미국의 전·현직 관리들과 연구원 등을 일자리나 프로젝트 등을 미끼로 포섭하는 수법도 사용하고 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인 케빈 패트릭 맬러리(62)는 2017년 2월 링크드인을 통해 만난 중국 정보요원에 포섭됐다. 맬러리는 중국 싱크탱크 연구원을 가장한 이 정보요원에게 군사 기밀을 넘겼고 그 대가로 2만5000달러(약 2910만 원)를 받는 등 각종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올해 5월 20년형을 선고받았다. 미국 연방 검찰이 지난해 10월 스파이 혐의로 기소한 중국 정보요원도 링크드인을 통해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항공 분야 엔지니어를 포섭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링크드인이 중국 스파이들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특히 전직 고위 관리들이 중국 스파이의 목표물”이라고 지적했다. 윌리엄 에바니나 미국 국가방첩안보센터(NCSC) 국장은 “중국 정보기관이 관리는 물론 학자, 과학자, 엔지니어 등 링크드인 회원 수천 명에 접촉하는 등 스파이 모집 활동을 하고 있다”며 “목표물 하나를 포섭하려고 요원들을 미국으로 파견하는 대신 중국에 앉아 가짜 계정으로 수천 명에게 친구 요청을 보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방첩기관 고위 관리가 미국 기업명을 언급하면서 경고까지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중국 정보기관의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링크드인은 200여 개국에 회원 5억6200만여 명을 두고 있으며, 미국인 회원이 1억4900만여 명에 달한다. 

FBI 등 미국 방첩기관들은 갈수록 활동이 증가하는 중국 스파이들을 색출하고자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중국 정보요원들이 그동안 미국의 주요 대학, 싱크탱크, 영화제작사, 언론사 등에 은밀히 침투해 스파이 활동을 자행했다’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중국의 경제 절도 행위를 막는 ‘중국 이니셔티브’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기업의 영업기밀 유출 사례를 파악·추적하고, 불법적으로 중국에 기술을 이전할 가능성이 있는 실험실·방위산업체·대학의 연구원에 대한 관리 전략을 개발하며, 잠재적 위협에 대비한 교육을 진행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총성없는 스파이 전쟁

미국은 지난해 중국과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이후 스파이 활동이 우려된다면서 중국 학자들의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방문을 차단해왔다. 특히 미국 방첩기관들은 중국 산업스파이의 침투를 막고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레이 FBI 국장은 “중국은 미국이 직면한 가장 광범위하고 도전적이며 중요한 위협”이라며 “FBI는 미국 전역에서 지식재산을 절도하려는 시도와 관련해 1000여 건을 수사 중이며, 이들 사건이 대부분 중국과 연결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2011~2018년 적발한 산업스파이 사건의 90%가 중국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레이 국장은 또 미국 대학을 대상으로 한 중국의 스파이 행위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 냉전시대와 달리 중국은 기업가·과학자·대학원생 등 비전통적인 스파이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레이 국장은 “중국이 미국 대학에 파이프라인을 꽂고 중국의 핵심 지식재산의 연료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의 고급 인재 유치 프로그램인 ‘천인 계획(thousand talents)’이 지식재산 절도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와 함께 중국의 해킹 등을 막고자 사이버 분야의 예산과 인원을 대폭 늘리고 민간 사이버 보안업체들과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빌 프리스탭 FBI 방첩본부장은 “중국의 인터넷 해킹 등 스파이 행위가 미국의 가장 중요한 방첩 과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스파이 활동을 막기 위한 미국 정부의 냉전 종식 이후 최대 규모 방첩 활동이 과연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