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올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오지환(29)이 4년 40억 원에 도장을 찍자 또 설왕설래가 한창입니다. ‘스포츠동아’는 “‘오버 페이’라는 비판, 팀 내 대안이 없는 유격수이자 그동안 공헌도에 어울리는 계약이라는 의견이 맞선다”고 전했습니다.
아니, 다른 팀 팬들 중에는 ‘오버 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지만 LG 팬들 사이에서는 ‘이 돈도 적다’는 목소리도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물론 팔은 안으로 굽게 마련이고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쁜 법이지만, LG 팬들은 다른 팀 팬들과 비교해도 자기 팀 선수 사랑이 더 크다는 ‘느낌적인 느낌’입니다. 한번 따져볼까요.
이병규의 경우
선수 생활을 마감한 LG 트윈스 이병규(맨 앞)가 2017년 7월 9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7 KBO 리그’ 한화 이글스와 LG의 경기가 끝난 뒤 영구결번식에서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뉴스1]
사실 타격 기록만으로 따지면 이병규와 비교되는 것 자체가 김동주에게는 ‘굴욕’입니다. 이병규는 통산 OPS(출루율+장타력) 0.818을 남기고 은퇴했습니다. 김동주는 0.919입니다. 참고로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37)가 올해까지 남긴 통산 OPS가 0.918이고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한 최준석(36)이 0.815입니다. 이대호가 최준석하고 비교당하면 굴욕 아닌가요?
OPS로 따지면 ‘파워 히터’인 김동주에게 유리하다고요? 네, 그럴 수 있습니다. 김동주는 통산 홈런 273개로 이병규(161개)보다 112개나 더 많았으니까요. 그런데 통산 타율도 이병규 0.311, 김동주 0.309로 0.002밖에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두산에서 17년간 뛰었던 안경현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김동주가 대단한 건 잠실 라이벌전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원래 두산이 LG에게 밀렸는데 김동주가 입단한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LG가 MBC 청룡을 인수한 1990년 이후 1997년까지 8년 동안은 두산(당시 OB)에 86승 5무 55패(승률 0.610)로 앞섰습니다. 그러다 ‘김동주의 전성시대’였던 1998~2011년에는 두산이 156승 5무 99패(승률 0.612)로 역전하게 됩니다.
김동주는 LG를 상대로 통산 OPS 0.940을 기록했습니다. 자기 통산 기록(0.919)보다 오히려 LG전 기록이 더 좋습니다. 참고로 두산과 LG가 맞대결을 벌이는 잠실야구장은 프로야구에서 ‘투수들의 천국=타자들의 지옥’으로 가장 많이 손꼽히는 구장입니다. 그런데도 김동주는 오히려 LG전 성적이 더 좋았습니다.
네, 이병규도 두산전 통산 기록이 OPS 0.849로 통산 기록(0.818)보다 높았습니다. 다만, OPS 0.940과 0.849를 비교하는 게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는 앞에서 한 번 설명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LG 팬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이병규가 못한 타자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통산 OPS 0.818은 프로야구에서 통산 10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상위 20%에 속하는 ‘좋은’ 기록입니다. 그저 상위 5%에 드는 김동주와 비교하는 게 맞지 않을 뿐입니다. 아, 제가 이병규와 달리 김동주는 팀에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선물했다는 것도 말씀드렸던가요?
이동현의 경우
9월 29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9 KBO 리그’ 두산 베어스와 LG 경기에서 7회 초 교체된 LG 투수 이동현이 역투하고 있다. 이동현은 701번째인 이날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뉴스1]
프로야구 역사상 700경기 이상 출전한 투수는 총 12명. 그 가운데 한 팀에서만 이런 기록을 남긴 선수는 이동현 한 명밖에 없습니다. 이동현이 LG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2017년 태어난 아들 정후 군에게 반드시 야구를 시킬 생각인데 만약 다른 팀의 지명을 받으면 “야구를 그만두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동현은 이 701경기에서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요. 이동현은 총 910과 3분의 1이닝을 던지면서 삼진을 687개(9이닝당 6.8개) 잡는 동안 볼넷을 364개(9이닝당 3.6개) 내줬고 홈런을 84개(9이닝당 0.8개) 허용했습니다. 삼진, 볼넷, 홈런은 투수와 타자 사이에 승부가 끝나는 기록으로,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에서는 흔히 TTO(Three True Outcomes)라고 합니다.
한때 이동현과 같은 유니폼을 입었던 송신영(42·현 키움 히어로즈 코치)은 어떨까요. 송신영은 통산 709경기에 나서 1132이닝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삼진 817개(9이닝당 6.5개)를 잡는 동안 볼넷 431개(9이닝당 3.4개)를 내줬고 홈런 107개(9이닝당 0.9개)를 허용했습니다. 9이닝당 기록으로 보면 두 선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동현이 커리어 내내 ‘투수들의 천국’ 잠실야구장을 안방으로 썼고 송신영이 200이닝 더 던졌으니까 송신영의 손을 들어줘도 크게 잘못된 비교는 아닙니다.
게다가 키움(당시 넥센) 팬 관점에서 보면 송신영은 ‘없는 살림’ 탓에 LG에서 한화 이글스로, 또 NC 다이노스로 갔다 겨우 다시 ‘우리 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이기도 합니다. 송신영이 돌아오던 날 히어로즈 구단은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송신영이 웃는 사진으로 장식했습니다. 히어로즈 팬들 역시 송신영이 다른 팀 유니폼을 입고 이 팀 안방인 목동야구장에 등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정도로 그에게 각별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LG 트윈스의 경우
19일 충북 청주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 리그’ 한화와 LG 경기 3회 초 1사 만루 상황에서 LG 오지환이 한화 제이슨 휠러의 폭투를 틈타 홈인하고 있다. [뉴스1]
김은식 작가는 LG가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2013년 ‘LG 트윈스 때문에 산다’는 책을 펴내면서 “야구는 기록 너머의 기억이고, 사건 너머의 사연이라고 본다. 그래서 야구란 스포츠이고 게임이고 승부이기 이전에 하나의 드라마다”라고 썼습니다.
백 번, 천 번 맞는 말입니다. 일부러 ‘세게’ 썼지만 이병규, 이동현처럼 선수 스스로 ‘하나의 드라마’인 사례는 사실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찾기 힘든 게 사실입니다. 두 선수 모두 LG의 이병규, LG의 이동현이 아니라 이병규의 LG, 이동현의 LG를 만든 선수니까 말이죠. LG 팬들은 그저, 다른 팀 팬들이 그러는 것처럼 이들을 열렬히 응원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야구규칙 1.05’는 ‘각 팀의 목적은 상대팀보다 많이 득점하여 승리하는 데에 있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김재현이 SK 와이번스 시절 자기 친정팀 LG에서 뛰던 이진영(39)에게 “팬들에게 사인볼을 주기보다 승리를 줘라. 팬들은 너의 사인볼보다 이기는 것을 더 좋아할 수도 있어”라고 한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선수가 잘하면 ‘LG 팬들은 왜 이렇게 자기 팀 선수들을 감싸는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자연스레 사라질 겁니다.
그래서 오지환은 오버 페이냐고요? FA 몸값은 과거에 잘했다고 주는 게 아니라 앞으로 잘하라고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평가가 어떻든 그 평가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오직 미래의 오지환뿐입니다. 오지환은 과연 26년 묵은 전설의 우승 기념주를 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번 ‘베이스볼 비키니’에 대한 반응도 LG팬과 다른 팀 팬이 확실히 차이가 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