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대결을 소재로 한 영화 ‘커런트 워’(왼쪽)와 ‘테슬라’. [네이버 영화]
전설적 사업가로 널리 알려진 에디슨은 어린 시절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시키려 했던 일화가 유명하다. 호기심이 많아 평범한 교육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헌신적 노력으로 에디슨은 평생 자신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품을 남겼는데, 미국에서 낸 특허 1093개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총 2332개 특허를 보유했다.
막대한 부와 명예를 가진 에디슨은 “천재는 1% 영감과 99%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명언을 통해 노력의 중요성과 영감의 가치를 설파했다. 한동안 수많은 위인전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인지를 상세하게 기록했다. 반면 니콜라 테슬라라는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공학자에 대해서는 꽤 오랫동안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에디슨에 대한 끝없는 찬사가 멈출 때쯤 사람들은 그의 뒷얘기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세기의 발명가 뒤에 가려져 있던 또 다른 천재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테슬라를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하는 세르비아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국제공항이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다. 공학에서는 자기장 단위로 테슬라(T)가 가우스(G)만큼 많이 쓰인다. 게다가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결성된 미국 록 밴드와 슬로바키아의 진공관 제조업체도 테슬라 업적을 기리고자 동명의 이름을 사용했다. 수소연료전지를 기반으로 대형트럭을 만드는 회사 니콜라와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는 기존 내연기관을 대체할 세상을 꿈꾸며 니콜라 테슬라에서 이름을 따왔다. 아마도 전기의 대중화를 통해 전 세계 모든 곳에 흔적을 남긴 그를 기리려는 의도일 것이다.
이 제조업체들이 대중에게 테슬라 이름을 각인한 건 사실이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적어도 니콜라 테슬라는 평생 돈을 벌 수 있는 기술특허 사용료 체계나 투자자들에게 제시할 직접적인 수익모델은 만들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대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혜택을 받을 것인지에 관심을 쏟았다. 테슬라의 의지를 제대로 잇고자 마음먹은 기업이라면 그가 해낸 기술 혁신 브랜드를 내세워 돈 벌 생각만 할 게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그가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선물이 무엇이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평생 연구에만 매진한 과학자이자 발명가
천재 공학자 니콜라 테슬라. [사진 제공 · The Tesla Collection]
1870년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에 입학한 테슬라는 당시 적분을 암산으로 계산할 수 있었는데, 그를 가르치던 수학 교사가 정답을 훔쳐본 것으로 오해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3년 후 테슬라는 고향 스밀랸으로 돌아왔다. 귀국과 동시에 콜레라에 걸려 9개월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자신의 뒤를 이어 성직자가 되길 원하던 아버지에게 테슬라는 공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 마당에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겠나’라는 심정으로 가장 좋은 공대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건강을 되찾은 테슬라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있는 공대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다. 하루에 4시간씩만 자며 공부한 그는 첫해에 모든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았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테슬라가 이렇게 공부하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편지를 그의 아버지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두 번째 해가 끝나갈 무렵 테슬라는 도박으로 장학금과 용돈을 탕진했다. 성적도 형편없어 졸업이 불가능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가족 얼굴을 보기 부끄러워진 그는 모든 관계를 끊고 도박만 하다 신경쇠약에 시달렸다. 결국 경찰의 호송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이후 그는 프라하대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전기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사진 제공 · 미국 의회도서관]
모두가 승리자 될 새로운 전류 전쟁
니콜라 테슬라의 전구 실험. [GettyImages]
지금 우리가 부족함 없이 전기를 활용할 수 있는 것도 테슬라가 발명한 교류 덕분이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가 각자 집까지 도달하는 모든 과정은 테슬라가 같은 주파수에서 위상은 달리하도록 설계한 다상교류 방식을 기반으로 한다.
직류와 교류 전쟁을 형상화한 이미지 [GettyImages]
니콜라 테슬라가 미국 뉴욕에 세운 워든클라이프 타워. [GettyImages]
심지어 최근에는 테슬라와 에디슨 모두가 승자라는 주장도 나온다. 전기차 시대엔 두 방식의 전기가 모두 중요해서다. 한정된 전기를 알차게 사용하는 데 특화한 전기차는 우선 교류를 직류로 바꿔 저장한다. 쉽게 빠져나가는 특성이 있는 교류보다 직류를 저장해두는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전기차를 제어하는 데 쓰이는 전자장치에는 직류가 사용된다. 하지만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모터에는 다시 교류가 필요하다. 직류 모터를 사용하면 시끄럽고 비효율적이라 안정적으로 달리기 위해서는 교류로 변환해 모터로 보내야 한다. 충전 방식 역시 교류와 직류를 모두 쓴다. 배터리 수명을 단축하는 급속 충전은 별도의 변환 없이 직류를 사용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하지만 비교적 수명에 영향을 적게 미치는 완속 충전은 교류를 조심스럽게 직류로 변환해 저장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앞을 내다본다’라는 뜻의 이름으로 늘 인간 편에 서서 도움을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에게 최초로 불 대신 마음껏 쓸 수 있는 전기를 가져다준 니콜라 테슬라 역시 불행하게 삶을 마감했다. 어린 시절 나이아가라 폭포를 그린 판화를 보며 물의 힘으로 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그는 세계 최초 수력발전소를 통해 뉴욕에 전기를 공급하면서 꿈을 이뤘다. 테슬라는 8개 국어를 능숙하게 할 만큼 머리가 좋고 말솜씨도 뛰어났다. 키도 훤칠한 데다 미남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성에는 관심도 없고 오직 새로운 발명에만 몰두했다. 말년까지 테슬라는 자연으로부터 무한한 에너지를 영원히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뉴욕에 ‘워든클라이프 타워(Wardenclyffe Tower)’라는 무선 전력 전송 장치를 건설해 인류에게 무료로 전기를 나눠주려는 시도도 했다. 물론 그의 몽상은 투자자들의 거부로 중단됐다.
결국 테슬라는 가난에 시달리다 87세 나이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일평생 독신으로 외로운 삶을 살았지만, 그가 최초로 만들어낸 위대한 과학기술 결과물들은 전 인류에게 영원히 남아 있다.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