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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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족부터 돼지엄마까지… ‘정글’ 대치동 천태만상

[책 읽기 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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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입력2021-12-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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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대치동: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
    조장훈 지음/ 사계절/ 416쪽/ 1만8000원

    “강남의 카페에서는 중년 여성들이 모여 앉은 테이블마다 최근 부동산 시세와 전망, 인근 재개발 아파트나 신도시 투자처에 대한 정보가 은밀하게 오간다. (중략) 11시경 대치동 학원가의 카페에 모인 엄마들은 여러 학원 팸플릿을 펼쳐놓고 강사진이나 학원 분위기 등에 관해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는다.”(203~204쪽)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이자 부동산 불패 신화의 최전선. 오늘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을 비롯한 강남지역 카페 곳곳에서 ‘맘(mom)’들의 정보전이 한창이다. 혹자는 공교육 붕괴와 아파트 값 과열 책임을 그들에게 돌린다. 선악(善惡) 평가를 떠나서 대치동을 분석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 현실을 이해하는 것. ‘대치동: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은 그 민낯을 통찰하는 데 유용한 책이다. 1990년대 후반 대치동 사교육계에 입성한 논술 강사 출신 학원장이었던 저자가 자신이 겪은 대치동이라는 공간 및 현상을 분석했다.

    부유층과 고학력 엘리트 주민, 이들의 교육열을 노린 사교육업계는 대치동을 떠받치는 기반이다. 저자는 “사교육업체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유행 문제를 실시간 수집·분석해 수많은 유사 문제를 만들어낸다. 평가원의 출제 역량은 사교육의 손바닥을 벗어나기 어렵다”(53쪽)고 짚는다. 사교육 생태계와 부동산시장은 공생관계다. “대치동에 자기 소유 집이 있는 사람은 더 이상 그곳에 살 이유가 없어도 학원가 덕분에 집값이 오르니 절대 집을 팔지 않고 세를 놓는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주택시세를 근거로 전세·월세를 매년 올린다”(155쪽)는 것이다.

    이 책은 대치동을 애써 고발하거나 두둔하지 않는다. 사교육과 부동산이라는 씨실, 날실이 교차하는 정글에 대한 인류학적 통찰에 가깝다. 저자는 대치동 학원가 주민과 학부모를 △대원족(대치동 원주민) △연어족(인근 재건축 단지로 돌아온 대원족 자녀) △대전족(대치동 전세 세입자) △원정족(대치동 학원가로 자녀 통학)으로 나눠 사회경제적 배경과 행동 패턴을 꼼꼼히 분석한다. 일부 ‘돼지엄마’(교육열이 높고 입시 정보에 밝은 학부모)에 대한 다음과 같은 관찰도 눈에 띈다.



    “이들(돼지엄마)은 대개 사회생활 경험이 많지 않은 전업주부이고, 남편이 명문대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 아이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그것이 자기 탓으로 돌아오리라는 불안감을 지니고 있다. (중략) 무시와 소외의 악순환 속에서 엄마들이 상처받은 내면을 위로받을 유일한 공간은 다른 엄마들을 만날 수 있는 카페였을 것이다. 집에서는 뜬소문이라며 타박 들을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줬고 거기에 한마디씩 보태어 가치 있는 정보를 만들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이야기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221~223쪽)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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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김우정 기자입니다. 정치, 산업, 부동산 등 여러분이 궁금한 모든 이슈를 취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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