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온큐 공동창업자 김정상 교수(왼쪽)와 크리스 먼로 교수. [사진 제공 · 아이온큐]
아이온큐는 최근 한 달 사이 한국인이 많이 투자한 미국주식 4위에 올랐다. [사진 제공 · 아이온큐]
한국 투자자 사이에서도 이 회사 주식이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다. 한국예탁결제원의 증권 정보 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최근 한 달(11월 4일~12월 3일) 기준 아이온큐는 한국인이 많이 투자한 미국주식 4위를 차지했다. 테슬라, 엔비디아, 리비안 다음 순위다.
아이온큐는 김정상 미국 듀크대 교수와 크리스 먼로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가 2015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이 두 창업자는 양자물리학 분야에서 5만 개 이상 학술 인용을 보유한 세계적 석학이다. 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부를 졸업한 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세계 최고 민간연구기관 벨연구소를 거쳐 2004년부터 듀크대 전자컴퓨터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0여 년 전 먼로 교수와 공동으로 양자컴퓨터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개발해 상업화하자고 의기투합했다.
트랩이온 큐비트 기술 선두주자
양자컴퓨터는 신약 개발, 신소재 혁신, 물류 고도화, 금융 서비스 등에서 획기적 발전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제공 · 아이온큐]
양자컴퓨팅 기술에서 핵심인 큐비트를 만드는 방법은 매우 까다롭지만 몇 가지가 고안됐다. 그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초전도 큐비트 기술과 트랩이온 큐비트 기술이다. 초전도 큐비트는 기존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IBM 등 기성 기업이 택하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다. 큐비트의 안정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에 비해 트랩이온 기술은 상온에서도 구현이 가능하고, 동질한 원자를 사용하기에 오류나 결함도 적다. 컴퓨터 부피 또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잠재력 높은 트랩이온 기술을 현재 가장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두 회사가 바로 다국적기업 허니웰(Honeywell)과 아이온큐다. 아이온큐는 희토류계 원소 이테르븀(Ytterbium)에 레이저 빔을 쏴 이온을 덫(트랩)에 가둬 조정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김 교수와 먼로 교수는 이 기술의 잠재력에 주목해 200만 달러(약 24억 원) 초기자금으로 아이온큐를 설립했다. 2019년 삼성전자의 벤처캐피털 삼성캐털리스트펀드 주도 아래 아랍에미리트 국부펀드 무바달라캐피털로부터 5500만 달러(약 647억 원)를 투자받으며 본격적인 연구개발 및 상업화에 착수했다. 투자 당시 삼성은 아이온큐를 “양자컴퓨팅의 리더”라고 부르면서 “삼성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기술 분야의 시장 리더십과 결합할 수 있는 양자컴퓨팅 산업의 기회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온큐가 지향하는 사업 모델은 아마존웹서비스(AWS)처럼 양자컴퓨터를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사진 제공 · 아이온큐]
아이온큐 주가는 11월 15일 3분기 실적 발표 후 35%가량 급등했다. 손실 규모가 1480만 달러(약 174억 원)로 전년 동기(350만 달러) 대비 4배 이상 급증하고 매출은 20만 달러(약 2억 원)로 미미함에도 투자자들이 기대를 품고 있는 이유는 미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아이온큐 측은 연간 예약 매출(full-year booking estimates)이 1580만 달러(약 186억 원)라고 발표했다. 이는 올해 상반기 500만 달러에서 9월 1500만 달러로 샹향 조정된 데 이어 한 번 더 상향된 수치다.
삼성·아마존 등 우량 고객 확보
이 회사의 양자컴퓨터 개발이 여전히 초기 단계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아이온큐의 트랩이온 기술은 상당한 양의 레이저로 이테르븀 원자를 조작하는데, 전문가들은 이 기술에서 수정되고 업그레이드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고 말한다. 또 아이온큐는 2023년까지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양자컴퓨터를 출시하지 않을 계획이다. 골드만삭스의 토시야 하리 애널리스트는 “양자컴퓨터의 광범위한 사용과 상업화 사이에는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궁극적으로 어떤 형태의 양자컴퓨터가 시장을 차지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며 아이온큐에 대해 보수적 견해를 피력했다. 투자 전문매체 ‘인베스터플레이스’의 증권 애널리스트 조시 에노모토도 “아이온큐 주식은 믿음의 문제”라면서 “엄청난 상승 잠재력을 지녔지만 투자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종목”이라고 말했다.이 회사의 피터 채프먼 최고경영자(CEO)도 회사 블로그를 통해 “양자컴퓨팅이 실험실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현재 아이온큐는 두 번째 단계에 진입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양자컴퓨터가 실험실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1단계라면, 2단계 목표는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 수준으로 발전하는 것이고, 3단계는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를 훨씬 능가해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시대라고 구분한다. 즉 아이온큐의 양자컴퓨팅 기술은 이제 막 시장에 진입해 2단계 초입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아이온큐가 과학실험실을 넘어 성장을 거듭하고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이 되려면 아마존, 테슬라 같은 IT(정보기술)기업처럼 계속 인재를 유치하면서 기술 혁신을 이어가야 한다. 양자물리학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보안, 영업 등 서비스 ‘완성’을 위한 다방면의 인재 및 기술 확보도 필수불가결하다. 아이온큐는 일단 인재 영입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구글 양자엔지니어링팀을 이끌던 데이브 베이컨을 소프트웨어 담당 부사장으로, IBM 양자팀의 초기 멤버이자 영국 양자컴퓨팅 회사 캠브리지 퀀텀 컴퓨팅의 최고 비즈니스 책임자였던 데니스 러프너를 비즈니스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채프먼 CEO도 아마존에서 아마존 프라임의 기술 및 물류를 담당한 고위 임원 출신이다. 김 교수와 먼로 교수는 각각 최고기술책임자(CTO)와 최고과학자(Chief Scientist)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