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26

2024.02.02

루마니아 자주포 수주전서 초반 선두 치고 나간 K9

현지 언론, 입찰 위한 제안서 접수 마감 후 “K9, 예선 1위 차지” 보도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4-02-1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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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3~25일(이하 현지 시간) 핀란드 수도 헬싱키에 7개 나라 군 관계자가 모였다. 방위사업청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최한 일명 ‘K9 유저클럽’이었다.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한국·폴란드·노르웨이·핀란드·에스토니아·호주 등 6개국과 옵서버 국가인 미국이 참가했다. 올해 세 번째로 열린 유저클럽에서 K9 자주포 보유국 군 관계자들은 실전 경험과 각종 노하우를 공유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 군 관계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방사청이 밝힌 K9 자주포의 단계적 개량 계획이었다.

    K9 자주포 보유국 이목 쏠리게 한 신형 모델

    국산 K9 자주포. [뉴시스]

    국산 K9 자주포. [뉴시스]

    방사청은 유저클럽 행사에서 K9A2, K9A3로 불리는 개량형 개발 일정을 소개했다. 현재 각국에 수출된 모델은 기본형 K9과 초기 개량형 K9A1 두 종류다. K9A1이 일부 전자장비와 센서를 개량한 소폭 개량형이었다면 K9A2와 K9A3는 기존 K9과 아예 다른 모델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점이 개량된다. K9A1만 해도 이미 세계 최정상급 성능을 가진 자주포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서 성능이 대폭 개량된 자주포가 나온다고 하니, 기존 K9을 보유한 나라 군 관계자들의 이목이 쏠린 것이다.

    K9 자주포는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제조업체 카탈로그 데이터보다 높은 정밀도의 탄착군(彈着群)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국군에만 1300여 문이 납품되며 일찌감치 규모 경제를 달성했다. 성능 면에서 K9에 견줄 만한 독일 PzH-2000 자주포가 지난 30년간 380여 문 정도 생산된 것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압도적 물량이다. K9은 경쟁 모델에 비해 획득·유지비용은 적으면서 성능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 결과 기술 도입국까지 포함해 총 9개 나라가 주력 자주포로 운용하는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특히 주목할 것은 K9 자주포를 구매한 나라 상당수가 한국 방위산업의 전통 고객인 동남아시아 개발도상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튀르키예가 기술 도입 형식으로 구매한 것을 시작으로 핀란드·폴란드·에스토니아·노르웨이·인도·호주·이집트가 K9을 사갔다. 8개 수입국 가운데 5개 나라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다. 특히 폴란드는 아예 면허생산 방식으로 624문을 구매하고 현지 생산·종합정비창도 설치해 유럽 시장 추가 진출을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할 전망이다.

    최근 나토는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해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에 마련되는 생산·정비 거점은 향후 K9 자주포 추가 수출에 대단히 큰 호재다. 나토 회원국은 유사시 무기·탄약을 서로 지원하고자 표준화와 호환성을 중시한다. 현재 나토 회원국이 선택할 수 있는 신형 자주포는 미국 M109A6, 독일 PzH-2000, 한국 K9뿐이다. M109는 성능이 뒤떨어지고, PzH-2000은 가격과 납기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최근 튀르키예가 K9 자주포 기술을 도입해 제작한 T155 모델의 개량형을 시장에 내놓고 있긴 하다. 하지만 다른 회원국과 엇박자를 내는 튀르키예의 정치적 행보 탓에 관심을 갖는 유럽 국가는 없다시피 하다.



    경쟁 모델 제치고 유리한 고지 선점

    이런 상황에서 최근 나토 회원국의 차세대 자주포 사업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소식이 있었다. 1월 11일 루마니아 육군의 신형 155㎜ 곡사포 시스템 사업 입찰을 위한 제안서 접수가 마감됐다. 이 사업에 한국 K9 자주포를 비롯해 독일 PzH-2000, 튀르키예 T-155 프르트나2 등 3개 모델이 도전장을 냈다. 현지 군사 전문매체는 제안서 접수 마감 소식을 전하며 “한국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가 폴 포지션(pole position)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자동차 레이싱 경기 용어인 폴 포지션은 예선에서 1위를 기록한 드라이버에게 주어지는 본선 레이스 가장 앞 출발점을 말한다. 가장 앞에서 출발하기에 후발 주자들의 견제와 압박이 심하지만,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폴 포지션을 차지한 드라이버의 우승 확률이 높다고 한다. 이제 막 제안서 접수가 끝난 상황에서 K9이 경쟁 모델들을 제치고 가장 유리한 고지에서 레이스를 시작했다는 평가다.

    루마니아 신형 자주포 사업에 가장 먼저 참여 의사를 밝힌 주자는 독일 라인메탈의 PzH-2000이다. PzH-2000은 냉전 시절 나토 표준 자주포인 미국 M109 계열 모델을 대체하고자 야심 차게 개발됐다. 다만 군축 열풍이 불었던 탈냉전 시기에 나온 데다, 가격이 매우 높아 당초 기대했던 대량 양산에 실패한 모델이다. 시기를 잘못 타고난 탓에 가격은 충격적일 정도로 높게 책정됐지만, 자국 방위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독일 정부의 정책적 배려로 꾸준히 생산 라인이 유지되고 있다. 그 덕에 30년째 조금씩 개량을 거치며 지금도 생산 중이다.

    독일 PzH-2000 자주포. [뉴시스]

    독일 PzH-2000 자주포. [뉴시스]

    이 자주포는 서방 세계 최초로 52구경장(口徑長: 총포 구경 단위로 나타낸 총포신 길이) 장포신 155㎜ 곡사포를 탑재했다. 여기에 완전 자동화된 사격·장전 시스템도 갖춰 연사 속도가 매우 빠르다. M109 시리즈가 분당 최대 4발 정도를 쏠 수 있던 것에 비해 PzH-2000은 분당 최대 8발이라는 발사 속도를 구현했다. 비록 저위력 장약을 사용한 상황이었지만 107초 동안 20발을 쏜 기록도 있다.

    긴 사거리도 PzH-2000의 장점이다. 52구경장 장포신 덕에 기본탄을 사용해도 28㎞ 사거리가 나온다. 신형 V-LAP 포탄을 사용할 경우 56㎞까지 타격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소량 투입된 PzH-2000은 장거리 사격 능력 덕에 먼 거리의 탈레반 진지를 초정밀 포격하는 전과를 여러 번 올렸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압도적 사거리로 러시아군 자주포를 일방적으로 격파해 다시 명성을 입증했다. 독일 측은 루마니아와 가까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의 실전 경험을 적극 홍보하고 나섰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루마니아가 PzH-2000을 구매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필자의 분석이다. PzH-2000의 태생적 한계를 감안하면 루마니아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가격과 납기가 문제다. PzH-2000은 독일 기계기술이 집약된 명품이지만, 이 때문에 생산 단가가 크게 치솟고 생산 효율도 떨어진다. 독일군이 지난해 12문을 추가 발주하면서 제작사에 지불한 돈이 1억9070만 유로(약 2745억 원)였다. 이미 134문의 PzH-2000을 운용하고 있어 부품·탄약·교육훈련 등 인프라를 모두 갖추고 있음에도 말이다. 자주포 자체 가격만 K9의 3배에 육박하는 230억 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무기체계를 완전히 새로 구매할 때는 제반 인프라와 탄약도 함께 사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155㎜ 곡사포를 보유하지 못한 루마니아가 PzH-2000을 구매할 경우 1문에 400억~500억 원은 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루마니아는 54문의 곡사포·탄약·군수지원 패키지 구매 예산으로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를 책정했다. PzH-2000은 자주포 가격만 해도 루마니아가 이번 사업에 책정한 전체 예산을 초과한다. 자주포를 사더라도 탄약이나 예비 부품은 살 수 없다는 얘기다.

    독일 자주포, 우크라이나 지형에 부적합

    독일 방산물자의 느린 납기와 까다로운 유지 조건도 문제다. 독일군 조달 기준으로도 PzH-2000은 계약 후 최소 2년 후에나 초도 물량 인수가 가능하다. 전자장비 내구성이 떨어져 먼지와 습기에 노출되면 수시로 고장 난다는 사실이 우크라이나군 운용 사례에서 드러났다. 장기간 운용하지 않을 경우 일반 차고가 아니라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특수 격납고에 보관해야 한다는 것도 약점이다. 차체가 워낙 무겁고 궤도 단위 면적당 접지압이 높아 무른 지형이나 진흙탕에서 쉽게 기동 불능이 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루마니아는 습윤 대륙성 기후다. 남부 왈라키아와 동부 몰다비아 일대 토질이 우크라이나처럼 진흙탕이 되기 쉬운 흑토라는 점을 생각하면 PzH-2000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튀르키예가 내놓은 T-155는 선정 가능성이 낮은 ‘들러리’로 보인다. PzH-2000은 나토와 유럽연합(EU)에서 독일이 갖는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기대할 수도 있다. 과거 오스만튀르크의 지배를 받은 탓에 루마니아는 튀르키예에 감정이 좋지 않다. 유럽에서 튀르키예의 정치적 위상도 독일과 비교할 수 없다. 무기 품질과 가격 경쟁력 외에 ‘정치적 판단’에 따른 이점조차 없다는 얘기다.

    튀르키예 T-155 프르트나2 자주포. [튀르키예 국방부 제공]

    튀르키예 T-155 프르트나2 자주포. [튀르키예 국방부 제공]

    그렇다고 T-155의 성능과 신뢰성이 높은 것도 아니다. T-155 프르트나2는 튀르키예가 개발에 오랜 기간 차질을 빚다가 최근에야 배치를 시작한 모델이다. 주포는 한국산 CN98 155㎜ 곡사포를 면허생산한 MKEK 155㎜를 그대로 쓴다. 따라서 튀르키예가 이 자주포를 수출하려면 한국 승인을 받아야 한다. 카탈로그 제원상 분당 최대 발사속도는 8발이지만 제대로 검증된 바 없다. 40㎞라는 최대사거리도 경쟁 모델 가운데 가장 떨어지는 수준이다. 엔진과 파워팩 성능을 개선하지 않은 채 장갑만 강화해 전투중량이 10t 가까이 늘어난 점도 문제다. 루마니아 지형 특성상 지나치게 무거운 기갑차량은 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T-155 차량 자체의 신뢰성도 떨어진다는 평가다.

    리스크를 잔뜩 안은 경쟁 모델들과 달리 K9 자주포의 제원과 판매 조건을 보면 그야말로 탄탄하다. K9 자주포(현 생산 모델 K9A1 기준)는 화포·탄약·후속 군수지원 패키지 가격이 대당 80억 원 정도다. 현재 배치된 HE-RAP탄 기준으로 55㎞ 사거리를 발휘할 수 있고, 분당 8발의 최대 발사속도를 지녀 화력도 우수하다. 경쟁 모델 가운데 가장 가벼운 47t 전투중량에 1000마력의 엔진, 유일한 유기압 현수장치를 갖추고 있다. 루마니아 지형 적합성이 가장 뛰어난 것이다.

    K9의 최대 강점은 로봇화된 탄약보급장갑차 K10 패키지의 존재다. 경쟁 모델들은 자주포 안에 탑재된 포탄과 장약을 전부 소진하면 40㎏에 육박하는 포탄을 사람이 직접 트럭에서 자주포 안으로 들어서 날라야 한다. 반면 K9은 포탄 104발을 실은 K10과 연결해 1분에 12발의 포탄을 버튼 조작만으로 보급받을 수 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대(對)포병전 양상을 보면 트럭에서 포탄을 내린 뒤 다시 자주포로 옮겨 싣는 과정에서 피격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K9과 K10 모두 장갑화된 차체를 갖고 있어 직격당하지 않는 한 적 포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탄약 재보급이 가능하다.

    국산 K10 탄약보급장갑차는 K9 자주포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포탄을 보급할 수 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포탄 도수 운반의 위험성이 재확인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국산 K10 탄약보급장갑차는 K9 자주포에 신속하고 안전하게 포탄을 보급할 수 있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포탄 도수 운반의 위험성이 재확인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K-방산, 유럽 동서 제패할까

    이처럼 K9은 빠른 발사속도와 긴 사거리, 루마니아 지형에 적합한 기동성, 이미 대량 생산돼 경쟁 모델 대비 가장 낮은 가격과 유지비용, 높은 신뢰성 등을 두루 갖췄다. 루마니아가 책정한 예산에 적합한 최선의 선택지다. 이미 폴 포지션을 점한 K9 제작사는 “하루 납기 지연이 발생할 때마다 전체 사업비의 0.1% 지체 상금, 즉 하루 100만 달러(약 13억3000만 원)를 내겠다”는 파격적인 부가 조건을 제시해 경쟁 업체들의 넋을 나가게 했다. 납기 지연이 일상인 PzH-2000이나 아직 기술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T-155는 제안 자체가 불가능한 조건이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10억 달러 규모의 루마니아 자주포 도입 사업은 무난하게 K9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에 이어 루마니아까지 K9을 채택하면 나토 최전선이 모두 K9 자주포로 도배되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영국 차세대 자주포 사업에서도 K9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다. 그럴 경우 K9은 유럽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을 지키는 명실공히 나토 표준 자주포로서 입지를 탄탄하게 굳히게 될 것이다. 하루빨리 K9 자주포가 유럽 시장을 제패했다는 낭보가 들려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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