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이른바 건진법사 전성배 씨의 법당 인근 직장인과 주민들이 보인 반응이다. 전 씨는 ‘한국불교 일광조계종’ 소속 승려다. 2018년 경북 영천시장 선거를 앞두고 당시 새누리당 경선 출마자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와 더불어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24년 12월 23일 오후 기자가 찾은 전 씨의 법당은 역삼동 고급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법당 앞 도로에는 벤츠, 포르쉐 등 외제차가 자주 지나갔다. 붉은색 담장에 둘러싸인 이 2층 단독주택은 외견상 일반 가정집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2층 테라스에는 러닝머신이 놓여 있었다.
2024년 12월 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진법사 법당으로 알려진 서울 강남구 역삼동 2층 단독주택. [윤채원 기자]
“그 점쟁이가 건진법사였다니”
이날 법당에선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담장 위는 대나무발로 빈틈없이 막혀 있어 외부 시선이 차단됐다. 주민들이 평소 마당에서 자주 봤다는 반려동물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굴뚝에서도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법당 근처 주민들은 이곳이 법당이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 A 씨는 “이 동네는 워낙 조용해서 평소 사람 왕래가 드물다”며 “법사 같은 인물은 거의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 B 씨는 “가끔 중년 여성이 드나드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 외에는 밤에도 불이 켜지지 않아 사람이 사는지조차 의문스러웠다”고 증언했다.
법당 인근 직장인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한 직장인은 “점집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건진법사라는 이름은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사실 최근에는 법당을 찾는 사람보다 기자가 훨씬 많이 드나드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은 “우리 회사 주차장에 종종 모르는 외제차가 주차돼 있어 차를 빼달라고 요청한 적이 여러 번”이라며 “그때마다 해당 집에서 양복 입은 사람이 황급히 나와 차를 옮겼다”고 덧붙였다.
일명 건진법사, 무속인 전 씨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건 2022년 대선 경선 때였다. 그는 윤 대통령 대선 캠프의 네트워크본부에서 활동하며 윤 대통령의 주요 의사결정에 비공식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당시 논란이 커지자 윤 대통령은 전 씨를 당 관계자를 통해 소개받아 인사한 적이 있는 사이 정도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 씨가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의 등을 손으로 감싸며 친밀함을 드러낸 장면이 포착되면서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전 씨의 공천 개입 의혹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김영선 전 의원과의 연관성인데, 김 전 의원이 전 씨의 도움으로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명태균 씨와 나눈 통화 녹취록에는 김 전 의원이 건진법사로부터 공천을 받았다는 발언이 포함돼 있었다. 이 녹취록에 따르면 명 씨는 2024년 1월 강혜경 씨와 통화하던 중 “김영선이 나를 내쫓기 위해 건진법사에게 공천을 받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공천 대가로 불법 정치자금 1억 원을 받은 혐의다. 검찰은 전 씨가 윤한홍 의원 측에 공천을 부탁할 수 있다며 지방선거 예비후보자들에게 금품을 요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의원은 전 씨와의 개인적 친분은 인정했지만 공천 관련 사항은 전혀 모른다고 부인했다. 검찰은 전 씨의 휴대전화와 장부를 확보해 수사를 진행 중이다.
지방선거부터 대선까지 개입했나
전 씨의 정치적 영향력은 그와 김건희 여사의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4년 전 씨는 김 여사가 운영하던 코바나컨텐츠에서 고문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듬해 전 씨는 김 여사가 주최한 전시회 VIP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에는 충북 충주에서 열린 굿 행사에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윤석열’과 ‘코바나컨텐츠 대표 김건희’의 이름이 적힌 연등이 목격되며 두 사람의 친분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 의혹을 밝힌 더불어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전 씨의 활동 이력이 단순한 사적 인연을 넘어 정치적 개입의 단초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비선 및 무속 논란이 한국 정치의 인물 검증 부실 문제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 경험과 훈련이 부족한 인물이 체계적인 검증 없이 인기와 권력을 얻으면 생기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적 의사결정은 각 분야에 밝은 전문 인력과 국민의 뜻을 반영해 이뤄져야 한다”며 “대통령이 기본도 지키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전문성과 합리성을 철저히 검증해 한국 정치에서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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