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9월 13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열린 ‘극중(剋中)의 길, 민주공화국의 앞날’ 강연회에 참석했다. [뉴스1]
“安 만날 계획 없다”→“새로운 정치해야”
안 대표는 8월 16일 국민의힘과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국가 미래를 생각하고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든 만나 의논할 그런 자세가 돼 있다”며 김 전 부총리와 연대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민의당 권은희 원내대표는 다음 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주중으로 김 전 부총리와 적극 소통에 나설 예정이라며 연대 논의를 공식화했다.김 전 총리는 안 대표의 구애를 거절했다. 그는 8월 18일 “만날 계획이 없다. 수차례 얘기했지만 내가 추구하는 건 정권교체나 재창출 차원을 뛰어넘는, 정치세력 교체”라고 말했다. 그랬던 김 전 부총리가 안 대표를 만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제3지대에 또 다른 대선 리그를 만들겠다는 뜻일까.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김 전 부총리는 9월 8일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제는 진보와 보수 모두 의지도, 능력도 부족하다. 새로운 정치를 해야 한다면서 언제까지 ‘양당 구조에 중독’된 정치판을 지켜만 보겠나”라며 “대한민국을 기회공화국으로 만들고자 정치 스타트업을 창업한다. 정치판을 바꾸고 정치세력을 교체하기 위해서다. 국민 여러분과 내가 힘을 모으면 대한민국을 기득권공화국에서 기회공화국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에서 ‘새로운 정치’라는 단어가 눈길을 끈다. 여러모로 안 대표의 2012년 대선 출마 선언을 연상케 한다. 안 대표는 당시 “정치가 바뀌어야 우리 삶이 바뀔 수 있다. 새로운 정치가 들어서야 민생 중심 경제가 들어선다”며 “변화의 열쇠는 바로 국민 여러분에게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와 김 전 부총리는 ‘새로운 정치’, 줄여서 ‘새정치’를 매개로 대동단결, 곧 후보 단일화를 할 수 있을까. 대전제는 제3지대에 새로운 대선 리그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과 합당에 실패한 안 대표는 간절하게 이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전 부총리는 독자 정당 창당 후 양당과 정책연대 형태의 연정을 만드는 데 아직은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출마 선언에서 ‘공통공약추진시민평의회’를 제안했다. 차기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의 공통공약을 추린 뒤 누가 이기더라도 이를 공동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과거 대선후보들이 내놓은 경제공약의 80%가량이 같다는 이유에서다. 김 전 부총리는 30년 넘게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 전문가로서 자신이 공통공약추진시민평의회 주역을 맡겠다는 제안도 빼놓지 않았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국무총리는 본인이 해야 한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오른쪽)와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9월 13일 ‘극중(剋中)의 길, 민주공화국의 앞날’ 강연회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과 실무 협의하자는 단계”
정치세력 교체를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기성 정당 대선후보들에게 손을 잡자고 하는 다소 앞뒤가 맞지 않는 제안이지만, 결국 정책연대를 하자는 취지로 보인다. 이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쪽은 안 대표가 아닌 이재명 경기도지사다. 김 전 부총리는 9월 14일 한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에서 “이 지사 쪽이 ‘공통공약추진시민평의회’ 제안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곧 실무 협의를 하자는 단계까지 와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부총리 말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는 물론, 야권 일부 후보도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김 전 부총리가 그리는 정책연대, 곧 연정에 안 대표가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안철수 대체자로서 부상을 노리는 듯하다. 김 전 부총리의 구상이 성공하려면 일단 본인 지지율이 상승해야 한다. 아직은 여야 주요 대선후보는 물론, 안 대표와도 격차가 크다.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김 전 부총리는 양당의 본선 대선후보 누군가에게 흡수 통합되고 만다.
안 대표 역시 김 전 부총리와 후보 단일화를 전제로 한 제3지대 대선 리그를 결성하지 못할 경우 타격이 크다. 다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합당을 전제로 최종 단일화를 시도하는 것 외에는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 물론 이번에도 독자 출마를 해 완주하는 방안이 있긴 하다. 애매한 득표율을 기록해 당선은커녕 국민의힘 후보 낙선에만 기여하는 과거 악몽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안 대표의 새정치 실험이 거듭 실패하면서 제3지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불씨를 되살리고자 한다면 그나마 힘을 합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는 안 대표의 판단이 옳다. 김 전 부총리의 진의가 제3지대에서 몸값을 올린 뒤 결국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준 다음 실세 국무총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일단 안 대표와 리그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또 다른 참신한 인물들까지 가세한다면 의외로 흥행을 노려볼 수도 있다. 한 달 만에 대선후보 순위가 뒤바뀌는 격변의 시대다. 누가 출렁이는 여론을 잡을 것인가. 왕좌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