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리사의 첫 솔로 싱글 ‘라리사’ 뮤직비디오가 조회수 1억 회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 제공 · YG엔터테인먼트]
제목은 ‘LALISA(라리사)’, 리사의 본명이다. 솔로 음반을 통해 ‘나 자신’ ‘진짜 나’ ‘솔직한 나’를 표방하고 나선 아이돌은 수없이 많다. 얼핏 생각하면 리사도 그 한 예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리사(Lisa)’는 영어권 이름 엘리자베스(Elizabeth)를 줄인 것이다. ‘Lalisa’는 리사의 고향 태국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케이팝 전형 안에 담은 아시아 전통문화
뮤직비디오에는 태국 전통악기와 의상, 유명 관광지가 등장한다. 물론 ‘타이 팝’이라고 부를 만한 건 아니다. 무국적 거리와 중세풍 복도의 교차, 정확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경찰 기동대가 긴박하게 출동하고, 리사는 명품을 걸친 채 바이크로 황야를 질주한다. 갑자기 노래가 달콤해지고 화면도 로맨틱 코미디에서 따온 듯한 장면으로 뒤바뀌더니, 황금빛으로 빛나는 신화적 공간과 군무로 다시 반전을 맞이한다. 가사는 평소 블랙핑크 가사의 톤 앤드 매너와 유난히도 잘 달라붙고, ‘새까만 핑크빛 왕관’ 같은 표현에서도 ‘블랙핑크의 그 멤버’로서 리사를 인상적으로 짚는다. 초현대적 공간과 교차해 아시아 전통문화 요소를 황홀한 매혹으로 활용한다는 점까지도 케이팝의 전형이다. 다만 아주 근사하게 잘 만든 케이팝이다.지금까지 케이팝이 세계를 향해 한국 문화의 어떤 부분을 발신했다면, 리사는 자신의 문화를 발신하면서 케이팝이라는 매개체를 거치는 셈이다. 동시에 그는 케이팝을 향해서도 발신하고 있다. 이를테면 익숙한 것은 써먹을 대로 다 써먹은 케이팝에 금단의 과일인 태국 전통문화 요소를 문화적 전유라는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부시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그다. 물론 그의 가치가 문화적 전유의 적법한 핑계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차갑고 거만한 표정과 누구보다 도전적인 눈빛 틈새로 보여주는 짓궂은 얼굴만 해도, 한국인 아티스트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다. 그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강렬한 스타성은 말할 나위 없이 그만의 것이기도 하다. 또한 해외에서 소수자의 용기로 자리 잡은 케이팝이 다시, 케이팝 세계관 속 비주류인 외국인 멤버에 대한 관심으로 쏠리는 것 역시 케이팝 속 리사에게 주어지는 어드밴티지다.
과거에는 해외 진출 과정에서 친숙함을 주고자 외국인 멤버를 기용했다지만, 그 모델은 전원 국내 출신인 방탄소년단이 세계 정상에 오름으로써 이미 깨졌다. 외국 출신 아이돌을 해외 공략을 위한 기능성 부품으로 여기던 시대는 ‘틀렸다’는 뜻이다. 케이팝 속 외국인 멤버는 많지만 국내에서 솔로로 음악 활동을 펼친 예는 아주 적다. 여성 아티스트는 더 심해서, 손에 꼽다 보면 금세 15년 전 아유미의 ‘Cutie Honey(큐티 허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지금 리사의 흥행은 외국인 출신 아이돌의 가능성을 새롭게 사고하길 권하고 있다. 이들을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바라보고 그만이 가질 수 있는 비전에 주목할 것, 원론적이지만 새로운 제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