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 29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 참석한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왼쪽)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선후보가 손을 잡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동아DB]
“노무현 대 이회창 때도 이랬나.”
이재명-윤석열과 다른 노무현-이회창
필자의 직전 칼럼(‘주간동아’ 1306호 ‘노무현과 달라도 너무 다른 문재인’ 제하 기사 참조)은 ‘더불어민주당은 이명박근혜의 후예’라는 필자의 다른 칼럼보다 더 격렬한 반응을 불러왔다. 100만 명 넘는 이가 읽었다. 다른 계열 정치인들을 ‘비슷하다’고 비교하는 글보다 같은 계열 정치인인데도 ‘너무 다르다’고 ‘대조’한 글에 사람들의 마음이 더 크게 움직였다. 같은 이유에서 이번 대선에선 ‘노무현 대 이재명’ ‘이회창 대 윤석열’ 같은 견주기가 유권자들 마음에서 일어날 수 있다.‘노무현 대 이재명’부터 살펴보자.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조선일보’의 대장동 개발 의혹 보도를 맞비판하면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과 대한민국 대통령선거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도중 노 전 대통령이 인천에서 토해낸 연설 멘트와 거의 같다. ‘오마주’ 수준이다. 그의 지지자 상당수도 “노무현과 비슷한 건 문재인이 아니라 이재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무현의 길은 이재명이 걸어온 길보다 훨씬 외롭고 정치적으로 드라마틱했다.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 들어 당 주류를 많이 들이받지 않았지만 새천년민주당 경선이 시작되던 무렵 노무현을 지지한 국회의원은 1명뿐이었다. 그에게 비주류 이미지가 강했던 건 ‘영남의 소수파’이자 ‘호남당의 영남인’이라는 정체성이 강렬하게 빛나서다. 극적 반전을 연출하며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반(反)김대중 여론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비켜가며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다음은 ‘이회창 대 윤석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스스로 이회창 마케팅을 펼치고 있지는 않다. 판사 출신 최재형 전 감사원장이나 이회창을 정치적 스승으로 모시는 유승민 전 의원 등 다른 후보도 그렇다. 이회창이 대선에서 끝내 패배한 후보여서다(대통령이 되지 못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에게 자주 경의를 표하며 ‘JP’를 자처하는 홍준표 의원은 특이한 사례다). 그럼에도 윤석열 또는 최재형이라는 대선주자를 언급할 때 곧잘 이회창이 거론된다. ‘정부 안에서 정권과 싸우며 큰 인물’이라는 굵직한 공통점이 있다.
‘바보’ ‘대쪽’으로 불린 정치인
그러나 윤 전 총장이나 최 전 감사원장은 경력에서 이회창에게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가 1986년 대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한 이유가 ‘전두환 정권의 눈 밖에 나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태우 정권기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여야 정치권과 불화했다. 김영삼 정권 출범과 함께 감사원장을 맡은 이회창은 ‘평화의댐’이나 율곡사업 비리를 조사하면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조사했다. 서면조사였지만 당시로서는 파격이었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까지 겨눴다. 그리고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사퇴했다.20년 만에 대선판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노무현-이회창의 공통점과 현 대선주자들의 공통점을 대조해보면 더 잘 보인다. 현 대선주자들은 ‘정적에게는 맹공, 정치 질서에는 고분고분’이다. 같은 당이라도 라이벌이면 다른 정당 이상으로 적대시한다. 국가정책을 레벨업하기는커녕 소속 정당을 혁신할 의지도 찾을 수 없다. 대선주자들을 둘러싼 정치인으로 시야를 넓히면 더 비관적이다. ‘앞으로도 오래갈 고인물’이다.
반면 노무현과 이회창은 모두 1990년대 정치개혁 아이콘이다. ‘3김(金)’ ‘보스정치’에 대항했다. ‘바보’와 ‘대쪽’이라는 별명은 순응, 굴복, 기회주의의 반대편에 있다. 둘 다 결국 거대 정당에 들어가는 타협을 했지만, 3김 퇴조기에 거대 양당을 접수하며 세대교체를 이끌었다.
2002년 대선 TV토론에서 노무현과 이회창은 서로를 ‘정권의 핵심’이었다고 몰았다. “노무현은 김대중 정부 핵심에 있으면서 대통령 가족 스캔들과 동교동계를 비호했다!” “여당이 선거에서 안기부 자금을 쓸 때 이회창은 선대위원장이었다. 측근들은 재판도 받았다!”이들은 자신뿐 아니라 상대 코드도 ‘정치개혁’ ‘비주류’임을 숙지했기에 “당신은 개혁파가 아니고 기득권(‘내가 더 개혁적이다’)!”이라며 뼈를 때렸다. 자신이 든 칼이 크고 시퍼렇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정확히 가져다 대기만 해도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조롱하면서 휘두르면 되레 자신이 쓰러진다는 이치를 새기며 절제했다. ‘품격’은 그 결과이지, 그들이 애써 연출하려고 하던 목표가 아니다.
“그때 당신은 상대 후보를 내심 존경하지 않았느냐”
방어도 간단명료했다. “나는 대통령과 국사를 논했지 부패를 논하지 않았다.” “무죄를 받았거나 재판 중이다. 법조인답지 않게 굴지 마라.” 자신에게 날아든 창만 쳐내고, 상대 인격을 폄훼하지 않는다. 기회가 닿는다면 두 사람에게 질문하고 싶다. “그때 당신은 상대 후보를 내심 존경하지 않았느냐”고.지나간 일은 아름다워 보이기 쉽다. 2002년 대선을 추억하는 필자도 스스로를 그렇게 의심해본다. 하지만 TV토론을 다시 보니 그때는 깨닫지 못한 부분이 뒤늦게 몰려온다. 그들 역시 여러 실책과 결함이 있는 인물이지만, 노무현과 이회창은 시대가 쏘아 올린 정치인다웠다. 당파성, 이념, 정책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태도’나 ‘방식’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정치적인 것’이 있다. 현 대선주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으로 어떻게 그것을 선보이고 입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