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 이맘때쯤엔 명절 후유증 이야기가 나오곤 하는데.
영대 저희는 너무 해당사항이 없네요.
현모 그러니까요. 영대 님은 정말 살이라곤 안 찌시잖아요.
영대 많이 먹질 않아요. 배가 터질 때까지 음식 먹는 걸 정말 싫어하거든요.
현모 전 딱 그렇게 심각하게 많이 먹는데….
영대 그렇게 잘 드시는데 살이 안 찌는 게 더 신기하죠.
현모 집에 까다로운 회사 대표님 한 분을 모시고 사니까 살찔 걱정은 없는 듯해요. ㅋ
영대 추… 축복이라고 해야 하나? ㅋㅋ
현모 영대 님도 연휴에 새로운 일이 좀 있지 않으셨어요?
영대 추석 특집이긴 하지만 처음으로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도 해보고, 안 해본 일을 좀 했네요. 현모 님은 유튜브 채널 개설하자는 제안은 안 와요?
현모 엄청 오죠. 근데 제가 지속적으로 운영할 자신이 없어서 못 해요.
영대 영어공부 관련이나 일상생활, 자기관리 등등 제안이 진짜 많이 들어올 거 같은데.
현모 음… 사실 제 모습을 공개하는 건 쑥스럽고, 만약 제 채널이 생긴다면 저 말고 엉뚱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면 좋겠어요.
영대 네?? ㅋㅋㅋㅋ
현모 모르는 사람들이요. 그냥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
영대 어떻게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엘런 디제너러스 쇼’에 출연해 웃고 있다. 9월 13일 시즌19를 시작한 엘렌 드제너러스 쇼는 내년 봄 19년 만에 종영한다. [뉴시스]
영대 아아. ㅋㅋㅋ 동네 의인 같은 훌륭한 일반인들 사연을 받아 칭찬해주고, 서프라이즈로 학교나 직장도 방문하고, 선물도 주고 뭐 그런 거요?
현모 네네, 그런 것도 좋고 엘런이 엉뚱한 몰래 카메라를 되게 잘하거든요. 서점이나 마켓 같은 데서 갑자기 행인들한테 다가가 노래 가사를 중얼거린다던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직원을 심어놓는다던가. 그럴 때 다들 어찌나 다양하게 반응하던지, 전 미친 듯이 깔깔거리면서 보거든요. ㅋㅋ
영대 그럼 현모 님도 한 번 해보세요. 재밌겠네. ㅋㅋ
현모 그게 아마 한국에서는 쉽지 않을 거예요. 저도 늘 이유가 궁금한데, 미국 토크쇼를 보면 일반인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거든요. 아주 가끔 모자이크 처리되는 얼굴이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99% 여과 없이 방송돼요. 그들 입장에서 다소 창피하고 민망할 거 같은 모습도요. 제작진이 과연 촬영 후 일일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걸까. 차 타고 가는 운전자들을 하나하나 쫓아가 허락을 받는 걸까. 설령 그렇게 한다 해도 시민이 전부 흔쾌히 오케이 한다는 게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 같아요.
영대 법적으로 차이가 있는 건가요?
현모 변호사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보도국에서 일할 때 초상권 보호가 아주 강조됐거든요. 예컨대 한가로운 휴일 풍경을 스케치할 때도 자칫 행락객 얼굴이 화면에 담기면 회사로 항의 전화가 오고 언론중재위원회에 불려 가기도 해서 극도로 민감하게 신경 써야 하는 이슈였어요.
영대 나라가 좁다 보니 한 다리 건너 다 지인이라 노출을 더 꺼리는 건가.
현모 뭐 여러 원인이 있겠죠. 그런데 전 ‘엘런 디제너러스 쇼’에서 항상 관객들이랑 다 같이 춤추고, 어우러져 게임하고, 짓궂게 골탕 먹이고, 선물도 주고 이런 게 재미도 재미지만 감동적일 때가 참 많아요. 전문 방송인들이 아니다 보니 그야말로 순수하게 웃고 우는 것은 물론, 작가가 미리 짜놓은 대본도 없으니까요. 그런 가운데 인류 공통의 희로애락 같은 게 전해져 오랫동안 팬이었는데, 내년에 폐지된다고 해서 아쉬워요. 물론 진행자 엘런 개인에 대해서는 최근 각종 논란이 있었지만요. 그 프로그램에서 일관되게 추구하는 주제이자 슬로건인 ‘Be kind to one another(서로에게 친절하세요)’는 최고로 아름다운 가치거든요.
영대 그죠. ‘친절’은 제 삶에서 대단히 중시하는 개념이에요. ‘kind’ 혹은 ‘nice’의 의미인데, 결국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자세거든요.
현모 오오, 맞아요! 그리고 그 배려는 상대도 나만큼 중요하다는 인식, 상대도 결국 나와 다르지 않다는 믿음에서 시작되는 거 같아요. 어쩌면 그런 예능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건 비연예인이건, 인종이나 성별, 직업, 나이 등 우리를 가르는 모든 분리 벽을 허물고 다함께 소통하고 얼싸안는 모습이 그래서 더 따뜻하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지도 몰라요.
영대 요즘은 2인 이상 혹은 4명만 넘어가도 분리하고 견제해야 되는 무서운 세상이니…. 그런 풍경이 더 사라지고 있는 거 같아 씁쓸하네요.
‘더 레이트 레이트 쇼 위드 제임스 코든’의 횡단보도 뮤지컬. [유튜브 캡처]
영대 오, 전 아직 못 봤는데. 이제 거리에서 공연해도 안전한 상황이 됐나 보네요.
현모 네, 백신 덕에 가능해졌다고 도입부에서 멘트를 하는데,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영대 놀라운 인물이 나왔나요. 설마 BTS(방탄소년단)??
현모 뭐야! 순간 아닌 걸 알면서도 소리 지를 뻔했잖아요. 그나저나 5~6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제임스 코든이나 엘런에 대해 막 열변을 토하면 방송국 관계자들도 오프라 윈프리만 알고 그게 누구냐고 했는데, 케이팝 인기 덕분에 이제는 대한민국 시청자도 꽤 친숙하게 느끼는 쇼 호스트가 됐다는 게 새삼 신기해요.
영대 제임스 코든은 이제 아미(ARMY) 사이에서는 미국 유재석이죠. ㅎㅎ
현모 ‘파파모찌’(제임스 코든이 방탄소년단 지민을 가리켜 베이비모찌, 자신은 파파모찌라고 한 데서 나온 별명) 코든과 방탄소년단이 하루빨리 재회할 수 있길. 이번에는 아마존 프라임 신작 영화 ‘신데렐라 2021’ 홍보차 카밀라 카베요, 이디나 멘젤 등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했어요. 그런데 세상에, 출근길에 몇 초 불편을 끼쳤다고 현장에서 운전자가 직접 찍은 영상과 함께 불평이 터져 나왔어요!
영대 와 진짜요? 돈 주고도 못 보는 광경일 텐데….
현모 그러니까요 ㅎㅎ. LA 텔레비전시티(CBS의 녹화 스튜디오) 근처에 사는 현지인들한테는 넘 흔한 일이라 그런가. 아침에 바쁜데 갑자기 차 앞으로 와 얼굴 들이밀고 흔들어대니 기분 나빴다는 글이 올라오고,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약간 조롱거리가 됐어요.
영대 아, 어렵네요.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그 정도 심리적 여유도 없다니 거 참 삭막하네요. 사실은 그 짧은 순간에라도 신나는 음악과 볼거리를 통해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힘내라는 긍정적 취지가 있었을 텐데 말이죠.
현모 그죠. 그러니 방송 제작 환경이 점점 예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고, 아무리 내용이 다수에게 기쁨을 준다 해도 누군가는 불쾌할 수 있는 거죠. 그 누구에게도 전혀 피해를 끼치지 않는 안전한 콘텐츠를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니까, 결론적으로 제가 개인방송을 여태까지 못 하고 안 하는 거예요. ㅎㅎㅎ 제 게으름에 대한 그럴듯한 핑계이기도 하지만요. ㅎ
영대 저는 경험자니까 십분 이해해요. 안 그래도 제 유튜브 채널 ‘김영대 LIVE’도 조금 재정비해 새롭게 다시 시작하려고요.
현모 저에게 유튜브는 계속 숙제 같고 어렵기만 한데, 영대 님이랑 이렇게 글로 대화를 나누는 건 편해요. 왜 그럴까요.
영대 ㅎㅎㅎ 왜 그럴까요.
(계속)
안현모는… 방송인이자 동시통역사. 서울대,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SBS 기자와 앵커로 활약하며 취재 및 보도 역량을 쌓았다. 뉴스, 예능을 넘나들며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우주 만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본 연재를 시작했다.
김영대는… 음악평론가. 연세대 졸업 후 미국 워싱턴대에서 음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BTS : THE REVIEW’ 등이 있으며 유튜브 ‘김영대 LIVE’를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