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5일 발생한 사상 초유의 전국적인 정전사태를 기억하는가. 전력수급 불균형에서 야기된 예기치 못한 정전과 이에 따른 공장 전력공급 중단, 엘리베이터 고장 등으로 상당수 국민이 큰 불편을 겪었다. 그럼에도 여진(餘震)은 여전하다. 사태 이후 현행 전력공급 체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본 정태근 국회의원(현 무소속)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이하 지경위) 위원 25명 전원의 동의를 얻어 지난해 10월 5일 대표발의한 전기사업법 및 한국전력공사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이 2월 13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아 폐기될 상황에 놓인 것.
개정안의 골자는 9·15정전사태가 전력수급 계획 및 전력계통 운영을 맡는 한국전력거래소(이하 전력거래소)가 전력계통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만큼, 전력거래소의 기능을 예전처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로 되돌림으로써 안정적인 전력계통망 운영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조합원 1만5000여 명을 거느린 전국전력노동조합(이하 전력노조) 김주영(51) 위원장은 개정안 관철의 선봉에 섰던 주인공이다. 2월 27일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정전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분리하지 않는, 전력산업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못 박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 개정안 통과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데 대한 생각은.
“분노한다. 지경위 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서명해놓고도 개정안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과연 의원들이 전력산업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는지 의심스럽다. 정부 처지에선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2001년 4월 전력사업구조개편법을 통해 한전을 화력발전 5개사와 수력원자력발전 1개사(한국수력원자력), 계통 운영 1개사(전력거래소)로 분할해 독립시킨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 자체가 오류였음을 자인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정안 통과 막아
▼ 지난해 9월 23일 한전에서 열린 지경위 국정감사 때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측은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답하지 않았나.
“지경부는 통합 방안과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연구용역을 맡겼지만, 그 결과는 통합 반대였다. 이에 전력노조는 KDI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사실 의원들은 2008년쯤부터 전력산업 통합 쪽으로 방향을 맞춰왔다. 그런데도 정작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건 납득하기 힘들다.”
▼ 전력거래소를 한전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
“국가에너지계획 수립 주체인 지경부는 전력수급을 관리하며 이를 전력거래소에 통보한다. 전력거래소는 전력계통 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전력시장을 운영하면서 한전에 전력수급과 관련한 지시를 내린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전력거래소로 모든 전력계통 운영권이 넘어가 한전은 전력거래소의 지시 없인 이상고온이나 자연재해를 예견해도 발전회사에 발전량을 늘리거나 줄이라는 요청조차 할 수 없는 게 현행 체계의 폐단이다.
사정이 이러니 2006년 4월 제주도 전역에 2시간 30분 동안이나 정전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한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이미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예전엔 한전이 전력수급 계획을 직접 세우고 발전, 송전, 배전 및 운영, 판매까지 모두 책임지는 일관된 체계여서 광범위한 정전이 발생해도 30분 안에 전기 공급을 재개할 수 있었다. 사전에 TV나 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정전 예고도 할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 중 어느 쪽이 효율적인가.”
▼ 전력거래소가 전력수요 예측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보는 듯하다.
“전력거래소가 전력계통 운영을 해온 지 올해로 12년째지만 전력 현장 경험자가 많지 않다. 직원 절반 이상이 현장 경험이 없다. 한마디로 현장 감각을 잃은 조직이다. 9·15정전사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한전과 전력거래소 간 인적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업무 협조체계에 단절이 생겨 위급상황 발생 시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정전 당일인 9월 15일 오전부터 한전에 강제정전을 통보해온 시점까지 약 3시간 동안 전력예비량과 수급기능 붕괴 시의 조치 등에 대해 지경부도, 전력거래소도 한전에 명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전력거래소는 지경부 퇴직 관료의 자리보전용 조직으로 전락했다. 사장, 임원 자리는 물론 홍보, 인사, 기획, 비서 등 관리조직이 엄청나게 늘었다.”
▼ 그렇지만 ‘전기’라고 하면 ‘한전’을 떠올리는 게 국민 정서다. 9·15정전사태 당시 국민은 물론, 대통령까지 전후사정을 모른 채 한전부터 탓했으니 직원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겠다.
“정전사태 다음 날 이명박 대통령이 한전 본사를 찾아 정전사태에 대해 질책했다. 그래서 일이 더 커졌다. 아무튼 한전이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반대할 때부터 예고했던 문제가 지금 불거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전기에너지는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 도발했을 때 전기공급이 차단돼 한동안 혼란이 컸지만, 한전 직원이 사선(死線)을 넘어가 복구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한전 직원은 늘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일한다.”
값싸고 질 좋은 전기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 결국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한전이 여러 회사로 쪼개진 것이 대규모 정전(black out) 위험의 상존과 관련 있다는 건가.
“물론이다. 지금처럼 전력수급 관리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9·15정전사태는 단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따라서 전력계통 운영 경험이 풍부한 한전이 전력거래소 대신 이 업무를 다시 맡아야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다.”
▼ 그렇다면 대안은 전력노조가 그동안 주장해온 전력산업의 재통합인가.
“‘재(再)’자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 그냥 ‘통합’이라고 표현하겠다. 외환위기 직후 공기업 개혁의 일환으로 한전 조직이 분할된 것이 국민의 기대편익과 우리 전력산업의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됐나. 글로벌 경쟁에 나서려면 한전 조직을 통합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 5월 31일로 18대 국회는 종료된다. 앞으로 전력산업 통합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할 생각인가.
“어차피 입법기관은 국회다. 향후 여러 회의체를 통해 논의하겠지만 전력산업 통합이라는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개정안이 완전히 폐기된 것도 아니다. 어쨌든 목표는 개정안 통과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분들이 자기 조직의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값싸고 질 좋은 전기의 안정적인 공급’을 바라는 국민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전력산업 통합은 지난해 3월 열린 제19대 전력노조 위원장선거 당시 김 위원장이 내건 공약이다. 1986년 한전 입사 후 2002년 제16대 전력노조 위원장을 시작으로 임기 3년의 위원장직을 11년째 ‘장기집권’ 하는 그가 어떻게 전략산업 통합이라는 난제를 풀어낼지 주목된다. 그에게 전기는 누구나 함께 누려야 할 ‘인권’이므로.
개정안의 골자는 9·15정전사태가 전력수급 계획 및 전력계통 운영을 맡는 한국전력거래소(이하 전력거래소)가 전력계통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만큼, 전력거래소의 기능을 예전처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로 되돌림으로써 안정적인 전력계통망 운영체계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조합원 1만5000여 명을 거느린 전국전력노동조합(이하 전력노조) 김주영(51) 위원장은 개정안 관철의 선봉에 섰던 주인공이다. 2월 27일 서울 삼성동 한전 본사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정전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분리하지 않는, 전력산업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못 박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 개정안 통과가 무산될 위기에 처한 데 대한 생각은.
“분노한다. 지경위 위원 전원이 만장일치로 서명해놓고도 개정안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과연 의원들이 전력산업의 중요성을 얼마나 인식하는지 의심스럽다. 정부 처지에선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2001년 4월 전력사업구조개편법을 통해 한전을 화력발전 5개사와 수력원자력발전 1개사(한국수력원자력), 계통 운영 1개사(전력거래소)로 분할해 독립시킨 전력산업 구조개편 정책 자체가 오류였음을 자인해야 하는 부담이 있을 것이다. 그런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 벌어진 일이라고 본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정안 통과 막아
▼ 지난해 9월 23일 한전에서 열린 지경위 국정감사 때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 측은 한전과 전력거래소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답하지 않았나.
“지경부는 통합 방안과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연구용역을 맡겼지만, 그 결과는 통합 반대였다. 이에 전력노조는 KDI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사실 의원들은 2008년쯤부터 전력산업 통합 쪽으로 방향을 맞춰왔다. 그런데도 정작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은 건 납득하기 힘들다.”
▼ 전력거래소를 한전으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
“국가에너지계획 수립 주체인 지경부는 전력수급을 관리하며 이를 전력거래소에 통보한다. 전력거래소는 전력계통 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전력시장을 운영하면서 한전에 전력수급과 관련한 지시를 내린다.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전력거래소로 모든 전력계통 운영권이 넘어가 한전은 전력거래소의 지시 없인 이상고온이나 자연재해를 예견해도 발전회사에 발전량을 늘리거나 줄이라는 요청조차 할 수 없는 게 현행 체계의 폐단이다.
사정이 이러니 2006년 4월 제주도 전역에 2시간 30분 동안이나 정전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한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이미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예전엔 한전이 전력수급 계획을 직접 세우고 발전, 송전, 배전 및 운영, 판매까지 모두 책임지는 일관된 체계여서 광범위한 정전이 발생해도 30분 안에 전기 공급을 재개할 수 있었다. 사전에 TV나 라디오 등의 매체를 통해 정전 예고도 할 수 있었다. 그때와 지금 중 어느 쪽이 효율적인가.”
▼ 전력거래소가 전력수요 예측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보는 듯하다.
“전력거래소가 전력계통 운영을 해온 지 올해로 12년째지만 전력 현장 경험자가 많지 않다. 직원 절반 이상이 현장 경험이 없다. 한마디로 현장 감각을 잃은 조직이다. 9·15정전사태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한전과 전력거래소 간 인적 교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업무 협조체계에 단절이 생겨 위급상황 발생 시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해져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정전 당일인 9월 15일 오전부터 한전에 강제정전을 통보해온 시점까지 약 3시간 동안 전력예비량과 수급기능 붕괴 시의 조치 등에 대해 지경부도, 전력거래소도 한전에 명확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게다가 전력거래소는 지경부 퇴직 관료의 자리보전용 조직으로 전락했다. 사장, 임원 자리는 물론 홍보, 인사, 기획, 비서 등 관리조직이 엄청나게 늘었다.”
▼ 그렇지만 ‘전기’라고 하면 ‘한전’을 떠올리는 게 국민 정서다. 9·15정전사태 당시 국민은 물론, 대통령까지 전후사정을 모른 채 한전부터 탓했으니 직원들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겠다.
“정전사태 다음 날 이명박 대통령이 한전 본사를 찾아 정전사태에 대해 질책했다. 그래서 일이 더 커졌다. 아무튼 한전이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반대할 때부터 예고했던 문제가 지금 불거졌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전기에너지는 국가안보와도 직결된다.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 도발했을 때 전기공급이 차단돼 한동안 혼란이 컸지만, 한전 직원이 사선(死線)을 넘어가 복구작업에 최선을 다했다. 한전 직원은 늘 사명감과 자긍심을 갖고 일한다.”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정전사태가 벌어진 지난해 9월 15일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거래소 중앙급전소에서 직원들이 대응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 결국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한전이 여러 회사로 쪼개진 것이 대규모 정전(black out) 위험의 상존과 관련 있다는 건가.
“물론이다. 지금처럼 전력수급 관리체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된다면 9·15정전사태는 단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따라서 전력계통 운영 경험이 풍부한 한전이 전력거래소 대신 이 업무를 다시 맡아야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하다.”
▼ 그렇다면 대안은 전력노조가 그동안 주장해온 전력산업의 재통합인가.
“‘재(再)’자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 그냥 ‘통합’이라고 표현하겠다. 외환위기 직후 공기업 개혁의 일환으로 한전 조직이 분할된 것이 국민의 기대편익과 우리 전력산업의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됐나. 글로벌 경쟁에 나서려면 한전 조직을 통합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 5월 31일로 18대 국회는 종료된다. 앞으로 전력산업 통합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할 생각인가.
“어차피 입법기관은 국회다. 향후 여러 회의체를 통해 논의하겠지만 전력산업 통합이라는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은 개정안이 완전히 폐기된 것도 아니다. 어쨌든 목표는 개정안 통과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분들이 자기 조직의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고 ‘값싸고 질 좋은 전기의 안정적인 공급’을 바라는 국민을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전력산업 통합은 지난해 3월 열린 제19대 전력노조 위원장선거 당시 김 위원장이 내건 공약이다. 1986년 한전 입사 후 2002년 제16대 전력노조 위원장을 시작으로 임기 3년의 위원장직을 11년째 ‘장기집권’ 하는 그가 어떻게 전략산업 통합이라는 난제를 풀어낼지 주목된다. 그에게 전기는 누구나 함께 누려야 할 ‘인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