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쇠나무에서 수액을 받고 있다
고로쇠나무는 단풍나무의 하나로, 가을에 붉게 물든 잎이 곱다. 단풍나무 중에는 가장 크며, 고도가 높은 산의 계곡 중에서도 약간 습한 지역에서 군락을 이뤄 자란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생하는데, 지역에 따라 수종이 조금씩 다르다. 지리산은 지리산대로, 광양은 광양대로, 울릉도는 또 울릉도대로 자기 지역의 고로쇠물이 맛있다 자랑하지만, 맛은 비슷하다. 물을 섞지 않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봄철 나무에서 수액을 뽑는 일을 우리나라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단풍나뭇과 나무에서 수액을 채취하는 일은 북반구 전역에서 벌어진다. 특히 캐나다에서는 이 수액을 졸여 시럽으로 만들어 판다. 와플에 뿌리고 커피에 넣는 메이플 시럽이 그것이다.
일본에서는 대나무 수액을 마시기도 한다. 대나무 밑동을 잘라 비닐 등으로 감싸면 수액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마신다. 한국에서도 경남 등 일부 지방에서 예부터 대나무 물을 마셨다고 하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고로쇠 수액을 먹어왔던 것으로 보인다. 고로쇠의 어원이 골리수(骨利水)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 ‘뼈에 이로운 물’이 들어 있는 나무로 여긴 것으로 해석한다. 고로쇠 수액은 약간의 단맛이 있어 마시기 편하다. 민간에서는 칼슘과 마그네슘 등 미네랄이 풍부해 위장병, 폐병, 신경통, 관절염 등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 때문인지 이른 봄 나무의 수액을 신수(神水)라고도 불렀다. 생명을 일깨우는 물이란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고로쇠 수액이 나올 때면 계곡 아래에 진을 치고 며칠 동안 이 수액만 마시는 사람이 있다. 질병 치료가 목적일 텐데, 좋은 방법이 아니다. 고로쇠 수액은 자연에서 나오는 음료 정도이지 약은 아니다. 과학적 근거도 없는데 무슨 풍습이나 되는 것처럼 퍼뜨리는 것도 바르지 않다. 한 가지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면 탈이 나게 돼 있는 것이 인간의 몸이다. 건강 찾으려다 되레 잃을 수도 있다.
최근에는 고로쇠 수액을 장(醬)에 활용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간장과 된장을 담그면서 물 대신에 넣는다. 고로쇠 수액은 약간 단맛이 있어, 장맛이 풍부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엄나무 등을 넣고 졸여서 차로 내는 농가도 봤는데, 오랫동안 보관하면서 마시기에는 이 방법이 나아 보였다.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뚫는 일을 두고 나무에 해롭지 않은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나무의 구멍은 아주 작으며 얕다. 보통 한 나무에 2개 정도 구멍을 뚫는데, 수액 채취 후 관을 빼면 새 껍질이 돋아 거의 원상태로 돌아온다. 만약 수액 채취가 나무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면 자연보호에 관심 높은 캐나다에서 이를 내버려두겠는가. 또 메이플 시럽이 전 세계에 유통되도록 환경단체에서 내버려두겠는가. 봄이면 일부 사람이 “나무를 죽인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수액 채취 현장을 보고 나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고로쇠나무에 구멍을 내고 호스만 꽂으면 되는 일이다 싶은데, 실제 수액 채취 작업은 무척 힘들다. 지리산 뱀사골의 경우, 해발 800m 이상 고지대의 고로쇠나무에 일일이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한 뒤 그 수액이 밑으로 흘러 내려오게 하는 작업을 한겨울 내내 해야 한다. 겨울 산을 타면서 작업해야 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렇게 공들여 수액을 받는 기간은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다.
올해는 겨울이 길고 추위 끝자락도 길어 고로쇠 수액이 나오는 시기가 다소 늦어질 것이라고 한다. 추웠으니 수액이 더 달 것이라 예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