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는 아직 베일에 싸인 배우다. 지금까지 그가 출연한 영화는 너무나 많다. ‘투캅스’(1993년)에서 경비 중인 경찰관으로 등장한 이래 ‘리베라메’ ‘비천무’ ‘반칙왕’ ‘바람의 전설’ ‘S 다이어리’ ‘간 큰 가족’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24편의 영화에서 단역과 조연을 했다. 공식적으로는 1973년생, 실제로는 1970년생으로 알려진 그는 데뷔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아직 대표작이 없다.
데뷔 13년 동안 24편 영화에서 단역·조연 출연
‘주유소 습격사건’의 철가방 역이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간 큰 가족’에서는 주연급으로 비중이 격상되었지만 대표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김수로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영화 속의 명연기가 아니라 TV 토크쇼를 통해서였다. 그가 출연하는 토크쇼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반드시 올라간다는 게 방송가의 정설이다.
그는 얼마 전 KBS TV의 ‘상상플러스’에 출연해 화제의 꼭짓점 댄스를 선보였다. 대학시절 자신을 꼭짓점으로 하여 피라미드형으로 춤을 추기 시작해 무려 100여명이 뒤에 늘어서서 함께 추었다는 전설을 김수로는 탁월한 입담으로 들려준 뒤 시범까지 보여주었다. 이날 김수로 출연분은 자체 시청률 최고인 30%를 기록했다.
좌중을 휘어잡는 그의 말솜씨를 보고 그것이 연기에도 반영됐을까 궁금해졌다면 ‘흡혈형사 나도열’을 보면 된다. 오랜 기다림 끝에 첫 주연을 맡은 김수로는 자신의 개인기를 영화에 쏟아부었다.
“단독 주연이라 처음에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촬영이 거듭될수록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어요.”
‘흡혈형사 나도열’은 코믹 영화다. 제목에 흡혈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다고 해서 호러를 생각하면 안 된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만들었던 이시명 감독의 두 번째 작품으로 현재까지 시사회 반응이나 예매율을 볼 때 흥행에 성공할 것으로 보인다.
“첫 주연은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웃기는 김수로가 아닌 재미있는 나도열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충분히 만족하실 겁니다.”
첫 기자시사회 날 김수로는 검은색 정장에 흡혈귀 느낌이 물씬 나는 자줏빛 와이셔츠와 검은색 실크 넥타이를 매고 나타났다. 김수로와 흡혈귀, 어울리지 않는가? 김수로의 다소 긴 얼굴은 흡혈귀 캐릭터 창출에 장점이 된다.
‘흡혈형사 나도열’
흡혈귀 나도열 형사는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는데 성적으로 흥분해야만 그런 힘이 나온다. ‘흡혈형사 나도열’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인은 이런 설정에서 나온다. 명백하게 선정적인 설정이다. 흡혈귀 영화가 갖고 있는 계급적 의미(즉,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의 피를 빤다)와 성적 의미(흡혈귀의 날카로운 송곳니는 남성 성기의 또 다른 변용이다)는 거세되어 있다. 그것은 오직 엉뚱한 상황을 유발시켜 웃음을 주려는 의도로 차용되고 있다.
“히어로 무비예요. 비리 형사로 출발하지만 흡혈모기에 물린 뒤 히어로가 돼가는 ‘나도열 형사, 뱀파이어 되기’입니다. 1년 반 정도 절권도를 배웠는데 이번 영화에 써먹고 싶었어요. 액션 장면은 히어로 무비답게 화끈하면서도 조금 코믹한 요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찍었습니다.”
다른 스타들과 달리 김수로에게는 안티가 없다. 그의 웃음이 거부감 없이 만인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인데, 이런 점에서 송강호를 닮았다. 연극무대에서 기초를 충실하게 닦은 뒤 스크린으로 진출한 송강호처럼, 서울예대 연극과를 나온 김수로는 연극 연기로 기초를 다졌다. 웃음 뒤에 눈물이 있다는 것도 두 사람의 닮은꼴 요인이다. 김수로의 재담을 들으며 웃다 보면 결국 눈물까지 흘리게 되지만 그의 웃음 에서는 오랜 무명시절을 거치면서도 반짝 스타가 되려고 성급하게 덜 여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김수로가 얼마나 노력하는 사람인가는 그가 출연한 TV 프로그램만 모니터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흡혈형사 나도열’ 홍보를 위해 ‘야심만만’ ‘상상플러스’ ‘해피투게더’ 등 많은 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했지만 그는 각각 다른 버전의 웃음을 선보였다. 똑같은 개인기를 두 번 보여주지 않는 것이다. 185cm, 75kg의 큰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탕한 기운은 대중을 즐겁게 한다.
5수 끝에 서울예대 입학 … 연극무대서 기초 닦아
경기도 안성에서 400평이 넘는 양계장과 과수원, 목장을 하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수로는 서울예대 연극과에 진학해 배우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고 묵묵히 준비하며 때를 기다렸다. 본명은 김상중. 금관가야국의 왕이며 김해 김씨의 시조에서 예명을 가져온 김수로는 93학번이다. 무려 5수를 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김수로는 순발력이 뛰어나고 상황 장악력이 탁월하다. 그의 애드리브는 절묘하게 상황과 어우러지면서 예기치 않은 시너지 효과를 가져온다. 그의 힘은 최민수식 마초 카리스마가 아니라 함께 출연한 배우들을 마음속 깊이 이해하는 데서 나온다는 점에서 훨씬 유효기간이 길고 뿌리가 깊다. 이제 문제는 그의 이런 장점이 어떻게 허구적 캐릭터와 잘 맞물리는가 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직까지 배우 김수로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을 별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흡혈형사 나도열’은 김수로를 위한, 김수로에 의한, 김수로의 영화다. 영화의 모든 힘이 김수로에서 시작해 김수로에서 끝난다. 지금까지의 김수로는 나도열이라는 캐릭터를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흡혈귀 김수로의 전설적 활약이 펼쳐지려면 그의 웃음이 일회용 웃음이 아니라,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부활의 메시지까지 함축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이 우리가 앞으로 김수로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김수로의 차기작은 그 자신 유괴범이면서 유괴당한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리는 김태윤 감독의 ‘먼데이 드라이브’다. 그리고 박계옥 감독의 ‘오늘의 운세’에서는 신은경과 함께 공연한다. 모두 주연이다. 코믹한 캐릭터가 아니라 정통 연기로 승부하는 영화여서 배우 김수로의 롱런을 알아볼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 같은 작품이다. 2006년, 김수로는 시험대 위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