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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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와 빈곤 딛고 ‘붓’으로 제2 인생

만화집 ‘동승과 노스님’ 펴낸 동양화가 안태성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7-24 13: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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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각장애와 빈곤 딛고 ‘붓’으로 제2 인생
    ”부처가 되기 위해 참선하려고 왔습니다.”

    “참선은 앉아서 하는가, 서서 하는가?”

    “당연히 앉아서 합니다, 큰스님!”

    “그놈의 부처는 다리 병신인 모양이지? 앉아만 있게?”

    “….”



    풀밭에 앉아 다 해진 장삼을 깁고 있던 노스님이 부처가 되고 싶다는 젊은 제자의 말에 혼잣말하듯 중얼거린다. 시선은 계속 바느질감에 둔 채 툭 던진 한 마디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당장 부처가 될 수 있을 듯 의기양양하던 청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든다. 선(禪)이라는 주제를 동양화 기법으로 그린 만화집 ‘동승과 노스님’의 한 장면이다.

    이 책을 지은 이는 중견 동양화가 안태성씨(44). 그는 붓에 먹물과 수채 물감을 묻혀 그린 따뜻한 그림으로 인생을 살아가며 고민하게 되는 선과 악, 도(道)와 자기 수양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자연스레 풀어냈다.

    일하며 그림 공부 … 26살에 미대 입학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가 쏟아지던 날, 서울 신림동 안씨의 작업실을 찾았다. 안씨는 궂은 날씨에 먼 길을 찾아오는 기자 일행이 걱정된 듯 우산을 받쳐든 채 대문 앞에 나와 있었다. ‘동승과 노스님’ 속 스님들처럼 시원하게 밀어버린 그의 머리 위로 우산 속까지 들이친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자꾸 머리가 빠지는 게 신경 쓰여서 다 밀었어요. 어느새 이렇게 나이가 들었는지…” 하며 싱긋 웃는 그는 꾸밈없는 동승의 눈빛과 깨달음을 얻은 노스님의 여유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동승과 노스님’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한 꼬마가 “이소룡이나 최배달처럼 강해지고 싶어” 홀로 무술 수련을 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한창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혼자 남겨진 아이, 그래서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강해지고 싶은 소년.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오는 그 꼬마는 바로 안씨 자신이다. 안씨는 중학교를 채 마치기도 전에 부모님 두 분이 차례로 세상을 뜨면서 고아가 됐다. 선천적인 목 기형과 청력 이상이 있는 그에게 이후의 삶은 고독과 가난의 연속이었다.

    “날 때부터 목에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는데 거기서 뭔지 모를 물이 자꾸 흘러나왔어요. 친구들과 놀려고 하면 아이들이 ‘태성아, 네 목에서 이상한 물이 나와’ 하면서 저를 슬슬 피했죠. 목을 뒤로 젖히고 수건으로 진물을 닦아내면서 바라본 파란하늘과 흰구름만이 절 외면하지 않는 친구였어요.”

    청력도 점점 떨어져 갔다. 부모와 함께 살던 시절에는 그래도 조금은 들리던 소리가 점점 안 들리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던 공장에서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얻어맞기 일쑤였고, 야간 공업고등학교의 선생님과 동급생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해 멍하니 앉아 있는 그를 외면했다.

    청각장애와 빈곤 딛고 ‘붓’으로 제2 인생

    가난과 외로움을 이겨내고 화가로 우뚝 선 안태성씨의 작품 속에는 안씨와 묘하게 닮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안씨와 그가 낸 책 ‘동승과 노스님’(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밤낮으로 공부하랴 일하랴 몸이 많이 피곤할 때였지만 절대 새벽운동을 거르지 않았죠. 매일 아침이면 일찌감치 일어나서 뒷산으로 달려갔어요. 아무도 없는 소나무 숲 속에서 태권도를 수련하고 봉술을 익히다 보면 어느새 동이 트곤 했죠.” 그때 안씨의 꿈은 정말 최배달처럼 동전을 손가락으로 우그러뜨리는 것이었단다. 강해져서 누군가에게 얻어맞지 않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꿈꿀 수 없던 그 시절, 그는 곧잘 소나무 숲에 앉아서 한 방향으로 쓰러지는 솔잎을 보며 바람 소리를 ‘느끼곤’ 했다.

    ‘동승과 노스님’ 속에 담긴 깨달음의 이야기들은 이 고독과 아픔 속에서 안씨가 직접 길어 올린 생생한 삶의 결과물이다.

    안씨가 화가가 된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공장의 버려진 널빤지들을 모아 화판을 만들고 혼자 그림을 그리던 그를 지켜본 한 전도사가 그에게 광주 무등산의 그림 그리는 스님을 소개해준 것이다. 안씨의 남다른 재주를 알아본 이 스님은 그에게 “너 같은 사람은 꼭 서울에 올라가 미대에 가야 한다”고 격려해줬다. 물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안씨는 짐을 꾸려 혼자 서울에 올라왔다. 공장을 전전하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화실에 다니는 고된 생활이었지만 안씨는 그때서야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데생이라는 걸 해본 게 그때가 처음이에요. 그 전에는 검은 곳을 표현하려면 연필로 진하게 칠한 후 손으로 문질렀거든요. 선을 살려서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공식을 처음 배웠죠. 너무 재미있었어요.”

    일곱 살 때부터 그림만 그리면 주위사람들이 돈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했다는 안씨의 재주는 서울에서 빛을 발했고, 그는 드디어 홍익대 미대 동양화과에 합격했다. 서울에 올라온 지 1년째 되던 1984년, 그가 26살 때의 일이다.

    그는 간판쟁이, 방범대원 등을 해 돈을 벌며 대학 시절 이미 동아미술제와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에서 입선을 할 만큼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그런 그에게 다가와준 사람이 부인 이재순씨(36)다. 그 자신도 미전에 입선하는 등 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씨는 안씨의 표현대로라면 ‘보잘것없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던’ 안씨에게 무한대의 배려와 애정을 쏟아 부었다. 애써 외면하고 피하려던 그에게 책을 사주고, 물감을 사주고, 매일 밥을 사 먹이고, 차비까지 쥐어준 것이다.

    안씨는 이씨를 감히 ‘기적을 일궈낸 여자’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처음으로 ‘돈까스’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고, 보청기를 사주며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으며,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든든한 힘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롭던 시절, 혼자 동서양의 고전을 읽으며 쌓아놓은 안씨의 박학다식함과 모진 세파에도 잃지 않은 순수함은 이씨에게 분명 매력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씨는 “다른 세상에서 유배돼 온 것 같은 안씨의 ‘외계인다운’ 순수함에 끌렸다”고 고백했다.

    이씨의 배려와 사랑 속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청강문화산업대의 교수로 자리잡은 안씨가 지금까지 자신의 삶 속에서 느낀 깨달음을 동양화 속에 풀어낸 책이 바로 ‘동승과 노스님’이다. 그의 책에는 고단했던 그의 삶과 그래도 버리지 않은 사람에 대한 믿음, 그 안에서 길어올린 청명함의 힘이 가득 담겨 있다.

    긴 인터뷰를 마치고 그의 작업실을 나설 때 비는 어느새 멎어 있었다. 그리고 찬란한 햇살 사이로 빛나는 가로수 잎이 눈에 들어왔다. 모진 시련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순결함. 안씨의 삶은 바로 그 가로수 잎처럼 맑았다.



    사람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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