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대거 발행한 벤처 프라이머리 CBO의 만기가 돌아오기 시작하는 내년 5월에도 코스닥 지수가 현재의 50대에 머물 경우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손실이 46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추경에서 프라이머리 CBO 예산으로 500억원만이라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기술신보측은 박봉수 이사장이 여야 예결위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작업을 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조차 프라이머리 CBO 예산을 기술신보에 배정하는 것에 난색을 표하면서 예결위 결정에 따르겠다는 유보적 입장을 밝혔고, 대다수 의원들이 기술신보의 벤처기업 지원정책 실패 등을 문제 삼으며 지원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기술신보가 이처럼 총력전을 펼치면서 추경의 일부라도 확보하기 위해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내년 5월부터 만기가 돌아오는 2조3000억원대 벤처 프라이머리 CBO의 보증손실을 메울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는 데 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벤처 프라이머리 CBO란 2001년 벤처기업 전환사채를 담보로 발행한 자산유동화 증권으로 기술신보의 전액 지급 보증을 통해 발행됐다.
코스닥 상황 따라 회수 규모 변동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손실 보전을 둘러싸고 정부와 업계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 6월 말 현재 기술신보가 지급보증한 프라이머리 CBO 발행금액 중 이미 2400억원대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2001년 당시 기술신보가 CBO 지급보증으로 인해 손실이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 배정받은 특별예산은 당시 보증금액 2조3000억원의 10%인 2300억원. 결국 6월 말을 기점으로 기술신보가 손실 보전 예산으로 배정받은 2300억원을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까먹어버린 셈이다. 이 돈은 정부가 세계은행(IBRD)과 아시아개발은행(ADB)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마련해준 자금이다.
무분별한 벤처 프라이머리 CBO 발행으로 인한 손실을 놓고 ‘퍼주기식’ 벤처지원정책의 결과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술신보측은 일부 주식 전환, 원금 조기 상환, CB(전환사채) 매각, 인수ㆍ합병(M&A) 등을 통해 자금을 회수할 방침이지만 자금 회수 규모는 결국 코스닥 시장 상황이 얼마나 개선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에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술신보 관계자는 “코스닥 지수가 80∼90 수준까지만 회복된다면 1000억원 안쪽에서 손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술신보 역시 만기 도래시 코스닥 지수가 올라주기를 기대하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애를 태우기는 마찬가지다. 기술신보 관계자조차 “비 오기만을 기다리는 천수답(天水畓)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손실 예상금액이 수천억원대에 이르고 이를 결국 정부 재정으로 메우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 보이자 이번에는 재경부와 기술신보 사이에서 책임 떠넘기기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재경부는 2001년 벤처기업들이 자금난을 겪을 당시 프라이머리 CBO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 방법을 제안하자 이를 반대했는데도 기술신보가 ‘판을 키우는’ 바람에 화를 자초했다는 입장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당시 이사장을 포함해 보증 규모를 크게 늘려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사람들의 책임을 어떤 형태로든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기술신보 이사장은 재경부 차관보 출신의 이근경 현 금융통화위원. 따라서 ‘우리는 반대했다’는 재경부의 해명과는 달리 적어도 재경부가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나섰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재경부와 책임 떠넘기기 공방도
반면 기술신보는 정부 지침에 따라간 것 뿐인데 손실이 났다고 해서 이제 와서 책임을 추궁당한다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기술신보 관계자는 “한마디로 열심히 일한 죄밖에는 없다”며 재경부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신보 역시 자신들이 벤처 프라이머리 CBO 규모를 크게 늘려 잡은 것은 인정하고 있다. 기술신보 관계자는 “CB의 주식전환을 통해 큰 이득을 봤을 때도 재경부가 ‘우리는 반대했다’고 했겠느냐”며 재경부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었다.
현재 기술신보측은 “정부가 ‘지금은 안 된다’, ‘일단 두고 보자’는 것을 보면 내년쯤 가면 뭔가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단 만기가 닥치기 시작하면 정부나 국회가 추경을 동원해서라도 막아주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1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 보증 예산을 일부 전용해서 막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부실 벤처기업 지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일반 기업들의 주머니를 털어서 해결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기술신보측은 일단 정부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나서서 예산 증액을 통해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이다. 이미 내년도 예산 편성 협의에 앞서 주무기관인 중소기업청(이하 중기청)을 통해 기획예산처에 프라이머리 CBO 손실을 감안한 예산 증액을 요청했으나 기획예산처가 난색을 표해 뜻을 이루지 못한 상태. 그러나 중기청 역시 결국은 ‘기술신보를 문 닫게 하지 않는 이상 어떤 형태로든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결국 재경부와 중기청, 기획예산처 3자가 모여 해결 방안의 물꼬를 터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더라도 기술신보의 기금 출연 규모를 늘려 손실을 메워넣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암시한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예결위원들은 무분별한 ‘퍼주기식’ 벤처지원정책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코스닥 시장에서 벤처기업 부실이 남긴 ‘지뢰’하나씩을 들고 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