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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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들었다 칼 맞은 ‘兵風포청천’

  • 입력2006-04-13 14: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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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들었다 칼 맞은 ‘兵風포청천’
    검찰과 국방부의 병역비리 합동수사반이 발족된 2월8일. 대검 수뇌부는 수사팀 선정의 기준에 대해 설명하면서 모두가 ‘군필’임을 강조했다. 군에 다녀오지 않은 검사가 어떻게 병역비리를 수사하겠느냐는 당연한 논리였다.

    실제로 합수본부장이 된 이승구 당시 대검 중수부1과장은 검사로서는 특이하게 사시 합격 전 사병으로 복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본인 스스로가 병역비리의 피해자라며 “병역비리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해 왔다.

    병역비리 합수반은 누구에게도 꿀릴 것이 없다는 당당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한 달 보름 뒤인 3월24일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대검에서 합수반 수사 지휘권을 넘겨받은 임휘윤 서울지검장 둘째 아들의 병역 면제 시비였다. 이날 오전 한나라당이 문제를 제기하자 서울지검 기자실에는 ‘임지검장도 신(神)이었느냐’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돌았다.

    이틀 전인 22일 임지검장이 소환에 불응한 정치인 아들에 대해 강경방침을 발표하면서 “유전(有錢)면제 무전(無錢)입대, 현역은 어둠의 자식, 보충역은 사람의 아들, 면제는 신의 아들이라는 말까지 있다” 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임지검장은 적지 않은 곤욕을 치렀다. 24일 오후 4시 임지검장은 기자들의 면담신청을 받아들인 자리에서 ‘하늘’에 맹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내가 떳떳하지 못하다면 어떻게 수사를 지휘하겠나. 우리 둘째 아이를 본 사람은 다 안다. 너무 비대해서 본인이나 나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아들에게 ‘고시에 안붙어도 좋으니 살이나 빼라’고 한 적도 있다.”

    임지검장의 아들은 신검을 받을 당시인 93년 103kg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지금은 80kg인지에 대해서 임지검장은 끝내 ‘가정사’까지 거론해야 했다. 임지검장의 해명.

    “98년 8월에 신문광고를 보고 을지로에 있는 한 한의원에 갔다. 배에다 침을 꽂고 전자파를 통과시켜 살을 빼는 요법이다. 아내와 두 아들, 며느리 모두 비만한 편이라 함께 갔다. 나는 2, 3kg 빠졌고 작은 아들은 4, 5kg 빠졌다. 그 후 둘째 아들은 ‘전쟁하듯’ 살을 뺐다.”

    임지검장의 이같은 ‘진솔한’ 해명으로 사건은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병역비리를 둘러싼 검찰과 한나라당의 밀고 밀리는 싸움의 절정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합수반이 3월16일 ‘정치인 자제 31명 총선전 소환’방침을 공개하자 한나라당은 ‘검찰이 이번 수사를 선거에 이용하려 한다’고 ‘맞불작전’을 폈고 20일 한나라당이 이우재의원 아들 소환을 먼저 공개하면서 여론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임지검장이 22일 ‘강경방침’을 밝히며 기자회견을 한 것은 이에 대한 ‘맞불 공세’인 셈. 23일 의원 아들 6명이 소환에 응하면서 임지검장의 강공은 성공을 거둔 듯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들 문제가 거론되면서 임지검장은 하루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는 희비를 겪어야만 했다.

    이같은 공방에 대해 일부 검사들은 “정치공방이나 임지검장 아들 문제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수사의 성과”라고 말하며 걱정하고 있다.

    지금은 대다수 국민이 총선과 관계없이 병역비리를 뿌리뽑으라며 검찰을 지지하고 있지만 수사 결과 정치인의 비리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으면 ‘안될 일을 가지고 선거전에 난리를 피웠다’는 비난이 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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