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선홍빛 물감’ 손에 묻어날 듯](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6/04/28/200604280500039_2.jpg)
거제도에서 꽃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역시 동백꽃. 이미 정월달부터 꽃부리를 펼치기 시작했고 지금은 막 절정기를 지나려는 참이다. 그래도 선홍의 꽃빛은 여전히 염려(艶麗)할 뿐더러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다. 더욱이 거제도의 간선도로인 14번 국도와 옥포에서 바닷가를 따라 장목면까지 이어지는 58번 지방도, 그리고 해금강으로 들어가는 진입로 주변에는 동백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어 꽃멀미가 나도록 동백꽃을 감상할 수 있다. 사람의 손길을 많이 타서인지 저마다 수형(樹形)도 단정하고 꽃부리도 유난히 탐스럽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저절로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운 것과 달리 천연스런 아름다움은 좀 덜한 편이다.
천연의 동백숲을 보려면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지심도(只心島)로 들어가야 한다. 연중 기온이 따뜻한 제주도와 남해안 일대에는 동백숲도 흔하고 동백섬도 많지만, 지심도처럼 온 섬이 동백나무로 뒤덮인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동백섬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섬이기도 하다.
뭍에서 건너다 보이는 지심도는 커다란 숲 하나가 바다에 두둥실 떠 있는 것 같다. 너비 500m, 길이 1.5km 가량의 섬에는 후박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등이 37종에 이르고, 수목과 식물이 우거져 있는데 전체 면적의 60~70%는 동백나무가 차지한다. 더욱이 이곳의 동백숲은 지각없는 도채꾼들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덕에 등걸의 굵기가 팔뚝만한 것부터 한 아름이 넘는 것까지 아주 다양하다. 워낙 동백나무가 빼곡하다보니 소나무와 다른 상록수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지심도는 산책로도 아주 잘 연결돼 있다. 선착장과 마을 사이의 비탈진 시멘트길 말고는 대체로 평탄한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이 오솔길을 따라 두세 시간만 걸으면 섬 전체를 일주하면서 구석구석 둘러볼 수 있다. 붉은 꽃송이가 수북하게 깔린 동백숲 터널, 아름드리 나무들에 둘러싸인 아담한 학교와 농가, 한낮에도 어스레할 만큼 울울창창한 상록수림,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이렇듯 정감 어린 오솔길을 자분자분 걷다보면 별천지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한다.
지심도행 도선(渡船)이 들고나는 장승포항에서 다시 14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달린다. 장승포항에서 거제 해금강까지는 줄곧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70리 길.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세파에 찌들었던 마음이 한꺼번에 확 풀릴 만큼 시원스런 해안 드라이브 코스다. 꽃이 없는 철에도 아름답고 편안한 길이지만, 이맘때쯤부터서는 막 꽃망울처럼 터트리기 시작한 복사꽃 산벚꽃 유채꽃 진달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백꽃 ‘선홍빛 물감’ 손에 묻어날 듯](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6/04/28/200604280500039_1.jpg)
깊은 산중에서 자라는 산벚나무는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새 잎이 돋아날 즈음인 4월 중순경에 앞다투어 꽃을 피운다. 그래서 섬 지방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지만, 거제도는 제법 높은 산들이 많아서 산벚꽃도 흔한 편이다. 이 해안도로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고개를 한둘쯤 넘어서면 금세 산중에 다다르고, 거기에는 어김없이 산벚꽃이 피어 있다. 특히 노자산 기슭에 자리한 거제 자연휴양림(0558-632-2221) 주변의 산비탈과 골짜기에서 많이 눈에 띈다.
유채꽃은 거제도의 맨 남쪽을 이루는 남부면 일대에서 이따금씩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제주도같이 대규모 유채밭은 없고, 대개 길가와 바닷가의 작은 밭이나 언덕에서 조촐하게 피어 있는 광경만 볼 수 있다. 진달래는 어디서나 흔한 봄꽃이지만, 거제도의 수려한 바다 풍경과 어우러진 진달래는 느낌이 남다르다. 더욱이 거제도 해안의 진달래는 빠르면 3월말부터 개화하므로 뭍에서 4월 중순쯤에야 보는 진달래보다 훨씬 더 반갑다. 남부면에서도 가장 남쪽인 여차리의 해안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깎아지른 해안절벽에 매달린 채로 연분홍 꽃잎을 한껏 펼친 진달래를 구경할 수 있다. 이 해안도로는 남부면 다포마을에서 시작돼 여차마을과 무지개마을을 거쳐 면소재지인 저구리까지 이어지는데, 거제도는 물론이고 남해안 전체를 통틀어서 이보다 풍광 좋은 해안도로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길이 지나는 해안절벽 아래로는 눈이 시도록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고, 그 바다에는 병태도 매물도 가왕도 다포도 등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오롱조롱 떠 있다. 특히 까마득한 벼랑길에서 내려다보는 여차리 몽돌해변의 풍광이 압권이다.
거제도 남동부 해안의 꽃길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해금강과 외도를 빼놓을 수 없다. 그중 거제 해금강은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이름난 명승지다. 이창호씨 내외의 오랜 땀과 눈물로 새롭게 단장된 외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상공원으로 손색이 없다. 이곳 외도해상공원(0558-681-8430)은 700여 종의 수목들이 울창하고, 숲 사이사이에는 비너스가든 조각공원 등 13개의 테마 정원과 지중해풍의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머나먼 이국 땅의 어느 휴양지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