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연극이 한 편 있다. 뒷골목 돌깡패로나 어울릴 듯한 단순 무식하고 물불 안가리는 과격형인데다가 또 나름대로는 정의의 ‘싸나이’이기를 갈망하는 건달 ‘비계’가 있다. 그리고 그의 ‘어깨’ 형님이자 국회의원인 대촌이 있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자 대촌은 비계의 정의심을 이용하여 위장테러를 꾸미고, 그 자신 민주주의의 적들과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투사로 활약해 돈 적게 들이고도 금배지를 달게 된다. 의원님 대촌의 사무실에서는 ‘한국매춘부총연합 티켓분과 사무국장’이 원색적인 로비를 벌인다. 이런 연극을 보고 있자면 당신은 좀 불만스럽지 않겠는가. 연극이 드러내는 정치의 이면이라는 것이 ‘풍자’라 하기엔 너무 뻔한 모습 아닌가.
연극 ‘돼지비계’(오태영 작, 박근형 연출)는 언뜻 보기에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어설픈 풍자극 같다. “민국당 창당은 사지선다에 익숙한 유권자를 위한 정치권의 배려”라는 식의 에둘러 가지 않고 정확히 치고빠지는 날렵한 풍자가 컴퓨터만 켜면 쏟아지는 이 시대에, 깡패 매춘부에 위장테러 사기극이 라는 설정은 좀 낯간지럽다.
웃기는 하지만 좀 찜찜한 채로 연극은 흘러 흘러 비계가 드디어 대촌의 사기극을 눈치챈다. 순진하고 무식한 비계는 이제 민주주의의 ‘진짜’ 적, 빨갱이를 응징하겠다며 총을 들고 판문점으로 향한다. 비계의 동생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낫다며 울면서 형의 길을 가로막는다. 비계는 울면서 방아쇠를 당기고 동생은 쓰러진다. 비계가 울고 있는 동안 쓰러졌던 동생의 영혼이 스르르 일어선다. 동생이 유령이 된 것인지, 아니면 앞서의 총성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환상이었다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이 붉은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며 암전한다.
희극은 생뚱맞을 정도로 갑작스레 비극으로 바뀌고 연극은 마지막까지 ‘정치풍자극’에 대한 나의(혹은 당신의) 기대를 배반한다. ‘정치’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면 당연히 이 나라의 정치판에 대해 비웃고 조롱하고, 그래서 속시원한 펀치 한방을 날려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기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풍자극에 대한 그같은 기대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정치판에 대한 지긋지긋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 혐오스러운 정치판에서 당신, 그리고 나는 과연 완전한 국외자인가 되물어본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판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맴돌고 있는 우리의 정치판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우리는 과연 ‘70년대 올드패션’ 같아 보이는 이 연극에 대해 ‘시대착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비록 친절한 태도로 묻고 있지는 않지만, 이 연극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내용은 바로 그것이다. 5월14일까지, 대학로극장(02-764-6052).
연극 ‘돼지비계’(오태영 작, 박근형 연출)는 언뜻 보기에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어설픈 풍자극 같다. “민국당 창당은 사지선다에 익숙한 유권자를 위한 정치권의 배려”라는 식의 에둘러 가지 않고 정확히 치고빠지는 날렵한 풍자가 컴퓨터만 켜면 쏟아지는 이 시대에, 깡패 매춘부에 위장테러 사기극이 라는 설정은 좀 낯간지럽다.
웃기는 하지만 좀 찜찜한 채로 연극은 흘러 흘러 비계가 드디어 대촌의 사기극을 눈치챈다. 순진하고 무식한 비계는 이제 민주주의의 ‘진짜’ 적, 빨갱이를 응징하겠다며 총을 들고 판문점으로 향한다. 비계의 동생은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낫다며 울면서 형의 길을 가로막는다. 비계는 울면서 방아쇠를 당기고 동생은 쓰러진다. 비계가 울고 있는 동안 쓰러졌던 동생의 영혼이 스르르 일어선다. 동생이 유령이 된 것인지, 아니면 앞서의 총성이 실제 일어난 일이 아니라 환상이었다는 것인지 궁금해 하는 사이 붉은 조명이 점차 어두워지며 암전한다.
희극은 생뚱맞을 정도로 갑작스레 비극으로 바뀌고 연극은 마지막까지 ‘정치풍자극’에 대한 나의(혹은 당신의) 기대를 배반한다. ‘정치’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면 당연히 이 나라의 정치판에 대해 비웃고 조롱하고, 그래서 속시원한 펀치 한방을 날려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기대 말이다.
그런데 과연 정치풍자극에 대한 그같은 기대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정치판에 대한 지긋지긋한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그 혐오스러운 정치판에서 당신, 그리고 나는 과연 완전한 국외자인가 되물어본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정치판을 용인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맴돌고 있는 우리의 정치판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우리는 과연 ‘70년대 올드패션’ 같아 보이는 이 연극에 대해 ‘시대착오’라고 말할 수 있는가.
비록 친절한 태도로 묻고 있지는 않지만, 이 연극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내용은 바로 그것이다. 5월14일까지, 대학로극장(02-764-6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