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1일. 현대그룹의 ‘시무식’이나 다름없었던 금강산 투어가 봉래호 선상에서 열리고 있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했던 현대 관계자들이나 기자들은 모두 정몽헌회장의 새로운 면모를 보았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들과 모인 자리에서 정몽헌회장은 테이블에 놓인 주스잔을 물리치고 즉석에서 맥주파티를 열었다는 것.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등 평소의 신중하고 치밀한 스타일과는 달리 이날 정몽헌회장의 모습은 ‘자신감’ 그 자체였다고 당시 정회장을 지켜본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었다.
신년 벽두 정몽헌회장이 다소 파격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까지 보여주었던 자신감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말을 통해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드라마 끝에 현대호(號)의 선장 자리를 물려받은 정몽헌회장의 배포와 뚝심이 바로 그러한 자신감의 실체였던 것이다. 동생으로부터 ‘판정패’를 당한 정몽구회장에게 늘 따라다니는 ‘우직함’이나 ‘터프함’이라는 수식어와 달리 ‘신중함’ 또는 ‘소심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몽헌회장은 이미 ‘포스트 왕회장’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e-비즈니스로 이미지 변화 모색
현대 대권 파동의 한복판으로 떠오르기 이전만 해도 주변에 알려진 정몽헌회장의 스타일은 소탈한 이미 지에 머물러 있었다. 대북 사업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이끌면서도 과시적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드러내지 않는 행보를 즐겨왔다. 정몽헌회장에게 ‘아버지의 그늘에서만 살아왔다’는 비아냥거림이 따랐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 파동의 와중에서 정몽헌회장이 때로는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을 통해, 때로는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을 통해 원격조종한 흔적들을 보면 그가 세간의 이런 인식에서 빠르게 변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정몽헌회장이 당장 ‘하면 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현대식 오너십을 밀어붙일 것 같지는 않다. 현대건설이나 전자측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정몽헌회장이 과거 몽구회장처럼 일반 직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몽헌회장이 직접 참석하는 행사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측에서는 현대의 인사 파문에 대해 ‘금융 제재’까지 들고 나오면서 예상보다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몽헌회장으로서는 ‘현대에서나 있을 법한’ 인사 파동의 여진을 최소화하는 데 우선 초점을 맞춰야 할 형편이다. 차분하게 이미지 변신에 주력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동안의 형제간 싸움 과정에서 몽헌회장의 ‘입’으로 활동해온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은 현대 경영자협의회에서 몽헌회장의 ‘승계’가 최종 확인된 이후 가진 간담회에서 “정몽헌회장이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e-business, 벤처기업 투자 등 종합적인 그룹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의 인사 번복과 재번복 파동 이전에 예정됐던 정몽헌회장의 기자회견을 일주일 연기하는 대신 일종의 ‘취임식’ 형태로 기자회견을 갖겠다는 몽헌회장측의 계산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3월27일 경영자협의회의 대권 추인 결정 직후, 예정된 기자회견을 일주일 늦추고 난 정몽헌회장은 자신을 대신한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끝내고 나서 10분쯤 시차를 두어 12층 집무실 입구를 막고 서 있던 사진기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뒤 전용 엘리베이터로 계동 사옥을 빠져나갔다. 이날 정몽헌회장 특유의 ‘껑충한’ 걸음걸이는 평소보다도 보폭이 훨씬 커보였다.
신년 벽두 정몽헌회장이 다소 파격적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면서까지 보여주었던 자신감의 실체가 드러나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주말을 통해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드라마 끝에 현대호(號)의 선장 자리를 물려받은 정몽헌회장의 배포와 뚝심이 바로 그러한 자신감의 실체였던 것이다. 동생으로부터 ‘판정패’를 당한 정몽구회장에게 늘 따라다니는 ‘우직함’이나 ‘터프함’이라는 수식어와 달리 ‘신중함’ 또는 ‘소심함’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몽헌회장은 이미 ‘포스트 왕회장’ 시대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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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권 파동의 한복판으로 떠오르기 이전만 해도 주변에 알려진 정몽헌회장의 스타일은 소탈한 이미 지에 머물러 있었다. 대북 사업이라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이끌면서도 과시적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드러내지 않는 행보를 즐겨왔다. 정몽헌회장에게 ‘아버지의 그늘에서만 살아왔다’는 비아냥거림이 따랐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인사 파동의 와중에서 정몽헌회장이 때로는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을 통해, 때로는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을 통해 원격조종한 흔적들을 보면 그가 세간의 이런 인식에서 빠르게 변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정몽헌회장이 당장 ‘하면 된다’는 것으로 요약되는 현대식 오너십을 밀어붙일 것 같지는 않다. 현대건설이나 전자측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정몽헌회장이 과거 몽구회장처럼 일반 직원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몽헌회장이 직접 참석하는 행사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측에서는 현대의 인사 파문에 대해 ‘금융 제재’까지 들고 나오면서 예상보다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몽헌회장으로서는 ‘현대에서나 있을 법한’ 인사 파동의 여진을 최소화하는 데 우선 초점을 맞춰야 할 형편이다. 차분하게 이미지 변신에 주력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그동안의 형제간 싸움 과정에서 몽헌회장의 ‘입’으로 활동해온 김재수 구조조정본부장은 현대 경영자협의회에서 몽헌회장의 ‘승계’가 최종 확인된 이후 가진 간담회에서 “정몽헌회장이 이번 사태를 수습하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e-business, 벤처기업 투자 등 종합적인 그룹의 입장을 정리해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말의 인사 번복과 재번복 파동 이전에 예정됐던 정몽헌회장의 기자회견을 일주일 연기하는 대신 일종의 ‘취임식’ 형태로 기자회견을 갖겠다는 몽헌회장측의 계산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3월27일 경영자협의회의 대권 추인 결정 직후, 예정된 기자회견을 일주일 늦추고 난 정몽헌회장은 자신을 대신한 김재수 구조조정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끝내고 나서 10분쯤 시차를 두어 12층 집무실 입구를 막고 서 있던 사진기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뒤 전용 엘리베이터로 계동 사옥을 빠져나갔다. 이날 정몽헌회장 특유의 ‘껑충한’ 걸음걸이는 평소보다도 보폭이 훨씬 커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