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행정부가 전후 이라크 처리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무리 국제사회에 손을 벌려도 번번이 빈손이다. 9월23일 부시 대통령이 직접 뉴욕으로 가 유엔에 도움을 청했지만 차라리 안 가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독일 슈뢰더 총리와 함께 사진 한 장 찍은 것밖에 한 일이 없다.
그나마 슈뢰더 총리와의 회동도 뒤끝이 개운치 않다. “이견을 해소했다”고 둘러댄 부시와는 달리 슈뢰더는 “이견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잠깐 옆으로 치워뒀을 뿐이다”라고 바른 말을 해버렸다. 부시 참모들은 독일이 이라크 경찰 훈련요원을 지원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있지만, 부시와 슈뢰더 사이의 이견이 무엇이고 합의를 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전혀 들리는 바가 없다. 워싱턴은 부시가 슈뢰더와 화해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준 것만도 큰 성과라고 자위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전후 이라크 재건에 들어갈 돈과 이라크 주둔 미군 일부를 대신할 대체병력이다. 부시는 이틀이나 유엔에 머물며 손을 벌렸다. 하지만 협조를 구하거나 의논하려는 자세라기보다는, 매끄러운 외교용어를 사용했을 뿐 고자세였다. 빈손으로 워싱턴으로 돌아온 부시에게 미 언론은 부시의 유엔 연설 때 분위기가 ‘싸늘했다’ ‘얼음장 같았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9월26일 이라크에 나가 있는 유엔 요원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파병에 가장 긍정적인 나라 ‘한국’?
프랑스 독일 중국은 물론 인도와 터키, 심지어 파키스탄까지도 미국의 병력 파견 요구에 등을 돌리고 있다. 워싱턴이 재론하기 힘들 만큼 분위기가 냉랭하다.
워싱턴과 국제사회가 얼굴을 붉혀가며 서로 맞서 있는 전후 이라크 처리 문제의 핵심은 병력 파견 여부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점령과 통치에 정당성이 있는지 여부를 먼저 가리자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통치기간과 관련, 워싱턴은 지금까지 투명한 일정표를 제시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미국 단독으로 모든 이라크 관련 문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돈과 병력만 지원하라는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것이 세계 주요 국가들의 일치된 항변이다.
이라크전 자체나 전후 이라크 재건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국제사회의 재정 지원만을 요구한 부시의 유엔 연설은 결국 아무런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 채 회원국들의 반감만 부추기고 말았다.
“빠른 시일 안에 이라크의 주권을 돌려주어야 한다.”(리쨔오싱 중국 외교부장)
“이라크는 이라크인이 통치하기를 바란다.”(압둘라 굴 터키 외교장관)
“(이라크에 주권을 돌려주는) 시간표 짜기가 급선무다.”(알르비어 칠레 외무장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의 병력 파견 요청에 대해 아예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못박아버렸다. “국민 여론이 이라크에 병력을 보내는 것을 반대한다. 부시 대통령도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기간 장기화, 독단적인 전후 이라크 문제 처리 등 미국으로서는 공론화하면 할수록 대처하기 껄끄러운 근본적인 현안들을 들이댐으로써 파병이나 재정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못 붙이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이런 현안들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주로 파병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어 파병 시기와 병력 규모 등이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언론도 파병의 필요성을 앞장서서 역설해준다. 심지어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방한하기 전에 파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그러니 워싱턴으로서는 서울만큼 고마운 곳도 없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 대표가 워싱턴까지 와서 파병을 지지하겠다며 거들었다. 행정부 고위 각료들이 조기 파병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파병 시기까지 알아서 제시해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미국은 처음부터 한국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어렵게 보지 않았다. 백악관이 새로운 유엔결의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때는 9월 초다. 유엔결의안이 받아들여지면 인도, 파키스탄, 터키 같은 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기가 쉬워진다. 미 언론이 이 3국을 거론할 때 한국은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을 파병 요청 대상국에서 제외했기 때문이 아니라 손쉽게 파병 결정을 받아낼 수 있는 나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 파병을 요청한 시점은 7월 중순이라는 것이 워싱턴 군사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자 백악관 참모들은 부시 대통령이 파키스탄과 인도에는 병력 파견 요청을 하지도 않았다고 둘러댔다.
미국이 원하는 유엔결의안 마감시간은 국제 이라크 지원국 회의가 열리는 10월23일 이전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언급하는 ‘파병 결정 마감시한’이란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다국적군 안 되면 주방위군 소집
펜타곤 역시 4~6주 안에 외국군 파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펜타곤 용어로는 ‘제3의 다국적군 사단’(이하 제3의 사단)이다. 이 ‘제3의 사단’ 투입 계획은 펜타곤의 이라크 주둔 미군 교체 계획에 따른 것이다. 펜타곤은 7월 이라크 주둔 미군을 12개월씩 근무하게 한다는 병력 교체안을 발표했다. 이때 이미 이라크의 미 101공수사단을 2004년 2월이나 3월에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제3의 사단’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 서 있었다. 영국군과 폴란드군 각 1개 사단이 이미 이라크에서 근무중이므로 새로 구성될 다국적군 사단은 ‘제3의 사단’이 되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미군 14만4000명과 영국군 1만4000명을 포함해 32개국에서 파견된 2만2000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펜타곤은 다국적군 총 병력 수를 1만~1만5000명 선으로 잡고 있으며, 다국적군이 파견되지 않을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9월24일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대규모의 다국적군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1만 또는 1만5000명쯤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국적군이 구성되지 않을 경우 펜타곤은 차선책으로 주 방위군과 예비군을 소집한다는 구상을 세워두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부시의 유엔 연설 이튿날 이렇게 썼다. ‘부시 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라크 주둔 미군을 곧 교체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경고도 나왔다. 주방위군에 의지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라크 문제로 국내 지지도가 이미 떨어진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정치 곡예를 하게 생겼다.’
민주당의 공세도 갈수록 거세진다. 민주당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호기다. 공화당 내에서조차 럼스펠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돈만 달라고 하지 말고 전후 이라크 복구 계획의 청사진도 제시하라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좀처럼 고개를 쳐들 줄 모르는 미 국내 경기도 부시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공화당 내 온건파의 목소리에도 점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어떻게 하든 이라크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그나마 슈뢰더 총리와의 회동도 뒤끝이 개운치 않다. “이견을 해소했다”고 둘러댄 부시와는 달리 슈뢰더는 “이견이 그대로 남아 있다. 잠깐 옆으로 치워뒀을 뿐이다”라고 바른 말을 해버렸다. 부시 참모들은 독일이 이라크 경찰 훈련요원을 지원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하고 있지만, 부시와 슈뢰더 사이의 이견이 무엇이고 합의를 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는 전혀 들리는 바가 없다. 워싱턴은 부시가 슈뢰더와 화해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준 것만도 큰 성과라고 자위한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전후 이라크 재건에 들어갈 돈과 이라크 주둔 미군 일부를 대신할 대체병력이다. 부시는 이틀이나 유엔에 머물며 손을 벌렸다. 하지만 협조를 구하거나 의논하려는 자세라기보다는, 매끄러운 외교용어를 사용했을 뿐 고자세였다. 빈손으로 워싱턴으로 돌아온 부시에게 미 언론은 부시의 유엔 연설 때 분위기가 ‘싸늘했다’ ‘얼음장 같았다’고 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9월26일 이라크에 나가 있는 유엔 요원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파병에 가장 긍정적인 나라 ‘한국’?
프랑스 독일 중국은 물론 인도와 터키, 심지어 파키스탄까지도 미국의 병력 파견 요구에 등을 돌리고 있다. 워싱턴이 재론하기 힘들 만큼 분위기가 냉랭하다.
워싱턴과 국제사회가 얼굴을 붉혀가며 서로 맞서 있는 전후 이라크 처리 문제의 핵심은 병력 파견 여부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이라크 점령과 통치에 정당성이 있는지 여부를 먼저 가리자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이라크 통치기간과 관련, 워싱턴은 지금까지 투명한 일정표를 제시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미국 단독으로 모든 이라크 관련 문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돈과 병력만 지원하라는 요구에는 응할 수 없다는 것이 세계 주요 국가들의 일치된 항변이다.
이라크전 자체나 전후 이라크 재건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국제사회의 재정 지원만을 요구한 부시의 유엔 연설은 결국 아무런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 채 회원국들의 반감만 부추기고 말았다.
“빠른 시일 안에 이라크의 주권을 돌려주어야 한다.”(리쨔오싱 중국 외교부장)
“이라크는 이라크인이 통치하기를 바란다.”(압둘라 굴 터키 외교장관)
“(이라크에 주권을 돌려주는) 시간표 짜기가 급선무다.”(알르비어 칠레 외무장관)
파키스탄의 무샤라프 대통령은 미국의 병력 파견 요청에 대해 아예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못박아버렸다. “국민 여론이 이라크에 병력을 보내는 것을 반대한다. 부시 대통령도 이 점을 이해하고 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기간 장기화, 독단적인 전후 이라크 문제 처리 등 미국으로서는 공론화하면 할수록 대처하기 껄끄러운 근본적인 현안들을 들이댐으로써 파병이나 재정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못 붙이게 만드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전혀 딴판이다. 이런 현안들이 문제가 되기보다는 주로 파병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어 파병 시기와 병력 규모 등이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다. 언론도 파병의 필요성을 앞장서서 역설해준다. 심지어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방한하기 전에 파병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그러니 워싱턴으로서는 서울만큼 고마운 곳도 없다.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야당 대표가 워싱턴까지 와서 파병을 지지하겠다며 거들었다. 행정부 고위 각료들이 조기 파병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파병 시기까지 알아서 제시해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미국은 처음부터 한국의 이라크 파병 문제를 어렵게 보지 않았다. 백악관이 새로운 유엔결의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때는 9월 초다. 유엔결의안이 받아들여지면 인도, 파키스탄, 터키 같은 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기가 쉬워진다. 미 언론이 이 3국을 거론할 때 한국은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한국을 파병 요청 대상국에서 제외했기 때문이 아니라 손쉽게 파병 결정을 받아낼 수 있는 나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 파병을 요청한 시점은 7월 중순이라는 것이 워싱턴 군사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러자 백악관 참모들은 부시 대통령이 파키스탄과 인도에는 병력 파견 요청을 하지도 않았다고 둘러댔다.
미국이 원하는 유엔결의안 마감시간은 국제 이라크 지원국 회의가 열리는 10월23일 이전이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언급하는 ‘파병 결정 마감시한’이란 것도 바로 이 시점이다.
다국적군 안 되면 주방위군 소집
펜타곤 역시 4~6주 안에 외국군 파병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펜타곤 용어로는 ‘제3의 다국적군 사단’(이하 제3의 사단)이다. 이 ‘제3의 사단’ 투입 계획은 펜타곤의 이라크 주둔 미군 교체 계획에 따른 것이다. 펜타곤은 7월 이라크 주둔 미군을 12개월씩 근무하게 한다는 병력 교체안을 발표했다. 이때 이미 이라크의 미 101공수사단을 2004년 2월이나 3월에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제3의 사단’으로 대체한다는 계획이 서 있었다. 영국군과 폴란드군 각 1개 사단이 이미 이라크에서 근무중이므로 새로 구성될 다국적군 사단은 ‘제3의 사단’이 되는 것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미군 14만4000명과 영국군 1만4000명을 포함해 32개국에서 파견된 2만2000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펜타곤은 다국적군 총 병력 수를 1만~1만5000명 선으로 잡고 있으며, 다국적군이 파견되지 않을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9월24일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대규모의 다국적군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껏해야 1만 또는 1만5000명쯤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국적군이 구성되지 않을 경우 펜타곤은 차선책으로 주 방위군과 예비군을 소집한다는 구상을 세워두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부시의 유엔 연설 이튿날 이렇게 썼다. ‘부시 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라크 주둔 미군을 곧 교체해야 한다는 국방부의 경고도 나왔다. 주방위군에 의지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라크 문제로 국내 지지도가 이미 떨어진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정치 곡예를 하게 생겼다.’
민주당의 공세도 갈수록 거세진다. 민주당으로서는 놓칠 수 없는 호기다. 공화당 내에서조차 럼스펠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돈만 달라고 하지 말고 전후 이라크 복구 계획의 청사진도 제시하라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1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좀처럼 고개를 쳐들 줄 모르는 미 국내 경기도 부시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공화당 내 온건파의 목소리에도 점점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부시 행정부로서는 어떻게 하든 이라크 문제를 조속히 매듭짓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