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로서의 삶은 어떨까? 1970년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TV 드라마인 ‘600만불의 사나이’의 주인공 스티브 오스틴과 여성 사이보그인 제이미 소머즈를 한 번이라도 꿈꾼 적이 있다면 빨리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스티브 맨 교수는 ‘입는 컴퓨터’ 기술의 선구자로 꼽힌다. 그는 ‘WearComp(Wearable Computer)’와 ‘WearCam(eyetap camera and reality mediator)’을 개발한 인물로 ‘사이버 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사이보그 생활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매일 ‘입는 컴퓨터’를 입고 생활하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대부터 사이보그에 관심을 갖고 ‘입는 컴퓨터’를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1991년 미국 MIT에서 공부하면서 ‘입는 컴퓨터’ 프로젝트의 씨앗을 뿌렸는데, 당시 그는 직접 개발한 비전(Vision)시스템을 갖춘 고글을 쓰고 통신용 안테나가 달린 무거운 컴퓨터를 짊어진 특이한 차림으로 캠퍼스를 누볐다. 이때부터 10년이 넘도록 그는 ‘입는 컴퓨터’를 착용한 채 생활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입는 장비들의 무게가 줄어들고 거추장스러운 장치들이 사라져 행동하기 편해졌다는 게 그의 위안이자 자랑거리다.

맨 교수는 1994년 사이보그로서의 생활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기 시작했다. 그가 머리에 쓰고 있는 비전시스템을 통해 매일 보고 듣는 모든 시청각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웹사이트를 방문한 이들로 하여금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볼 수 있게 했다.

웹사이트 방문자는 인터넷을 통해 맨 교수와 직접 대화하면서 그의 경험을 간접체험했고, 맨 교수는 수많은 방문자와 경험을 공유했다. 2년 뒤 방문자가 3만명을 넘어서자 맨 교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머릿속에 상주해 머리가 복잡해서 쉴 여유가 없다”며 인터넷 중계를 중단했다. 결국 타인이 자신의 머릿속으로 침투하여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인한 사이보그의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를 증명한 셈이다.



맨 교수 ‘사이보그 인권운동’ 시작

이듬해 박사 학위를 딴 그는 고향인 캐나다로 돌아와 토론토의 한 나이트클럽을 사들인 뒤 ‘입는 컴퓨터 설계연구소’로 사용하고 있다.

맨 교수는 결국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캐나다의 피터 린치 감독이 2001년 발표한 ‘사이버 맨’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에 출연한 것이다. 이 영화는 반은 사람 반은 기계인, 자칭 사이보그인 주인공을 통해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사이버 스페이스(Cyber Space)’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과학소설 작가인 윌리엄 깁슨과 나누는 대화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새로운 차원에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또 맨 교수가 직접 개발한 Eye-tap 카메라를 통해 억눌린 인간의 내면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면서 인간이 기술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다.

그는 이 자전적인 내용의 영화를 계기로 사이보그 인권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특히 외부 네트워크에서 사이보그에 접속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을 부추긴다. 맨 교수는 눈을 대신하는 비전시스템과 인조 피부 혹은 괴상한 옷처럼 보이는 컴퓨터 장치를 입고 24시간 동안 생활하면서 겪는 불편과 각종 차별을 해결하기 위해 사이보그 인권운동을 벌인다고 말한다. 사이보그 장치를 걸치고 사는 괴짜가 겪는 개인적인 고민거리가 인권운동 차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맨 교수에 따르면 단지 ‘입는 컴퓨터’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식당이나 백화점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은 매일 겪는 사소한 사건일 뿐이다. 그가 사이보그 인권운동에 헌신하게 된 보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은 지난해 초 캐나다의 한 공항에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늘 입고 다니던 각종 컴퓨터와 특수 헬멧을 강제로 벗기는 과정에서 컴퓨터가 망가지고 몸에 상처까지 입은 것이다. 맨 교수는 캐나다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손상된 컴퓨터를 교체할 비용을 요구했다.

맨 교수는 사이보그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해 최근 과학자, 예술가, 철학자 등 지식인 계층을 대상으로 ‘디코니즘(Deconism)’이라는 새로운 차원의 문화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디코니즘’은 영어의 ‘분리’를 뜻하는 접두사 ‘de’와 ‘결합’을 뜻하는 접두사 ‘con’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로, 각종 사회현상을 바이오 정치학(bio-politics)의 차원에서 해석한다는 의미다. 맨 교수는 토론토에 ‘디코니즘’이라는 이름의 갤러리를 열어 각종 모임을 주재하고 있다.

맨 교수는 2000년 ‘디코니즘’을 주제로 ‘DECONference 2000(DECO

N1)’을 개최한 데 이어, 올해엔 지난 8월14, 15일 이틀간 ‘BYOB(Bring Your Own Brain)’라는 슬로건 아래 ‘DECONversation & DECONcert’를 주제로 한 행사를 기획했다.

‘DECONversation을 주제로 한 행사 첫째 날, 맨 교수가 다른 토론자 2명과 함께 몰입형(immersive) 멀티미디어 공간에서 뇌파를 통해 인간과 사이보그, 그리고 사이버 장치의 관계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일반 영화는 영화감독이 일부러 촬영하지 않는 한 화면에 보이지 않는 방향의 장면은 볼 수 없지만, ‘몰입형 영화’는 관객이 원하는 방향의 장면을 볼 수 있도록 모든 각도에서 촬영한 영화다.

주작권(主作權) 보호 각종 캠페인

둘째 날의 주제는 ‘DECONcert’. 청중이 뇌파를 통해 주변환경을 설정하고 음악을 연주하는 일종의 행위음악회였다. 이날 행사에는 브라이든 베어드 같은 재즈 연주가들이 참가해 사이보그 청중과 뇌파로 상호교감하는 집단의식(Deconsciousness)을 통해 새로운 재즈를 탄생시켰다.

‘Subjectright’는 ‘Copyright(저작권)’에서 빌려온 개념으로, 맨 교수가 만든 용어다. 굳이 번역하자면 ‘주작권(主作權)’ 정도가 될 것 같다. 주작권이란 데이터 속에 표현된 주체가 그 데이터에 대해 갖는 권리를 뜻하는데, 넓게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데이터에 표현되고 싶지 않은 프라이버시’를 가리킨다. 초상권이 영상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면, 주작권은 모든 종류의 데이터를 대상으로 한다.

맨 교수는 저작권을 ‘(C)’로 표기하는 것처럼, 주작권을 ‘(S)’로 표기하고, 그 저작물에 반드시 ‘Subjectright(S) by OOO’(데이터 속에 있는 사람의 이름)라고 명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경우 사진에 찍히는 모든 사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10년 넘게 사이보그로 살면서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당했다고 판단해 ‘Subject-right’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또한 ‘세계주작권재단(World Subjectright Foundation)’을 설립하고, 그 설립일인 12월24일을 ‘세계 주작권의 날(World Subjectrights Day)’로 정해 각종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맨 교수는 그의 저작물에 반드시 ‘Copyleft, right, and center ⓒ by ‘Steven Mann’이라고 쓴다. 도대체 저작권을 보호하자는 건지, 개방하자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 땅에서 사이보그로 살기 위해 겪는 고통이 안타깝고 그 몸부림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역시 초능력을 가진 스티브 오스틴과 제이미 소머즈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땅에서 사이보그로 살려면 해결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