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뉴욕에는 성공한 유태인들만 사는 것이 아니다. 뉴욕의 한 귀퉁이에는 도시의 화려함을 외면한 채 탈무드의 계율을 지키며 신비주의를 신봉하는 정통파 유태인인 ‘하시드’(Hasid)들이 있다. 뉴욕은 50만명 이상의 하시드들이 살고 있는 세계 최대의 하시드 거주지이기도 하다. 뉴욕 거리를 걷다보면 곧잘 마주치는 검은 중절모를 쓰고 검은 옷을 입은 유태인들이 바로 하시드들이다. 이들은 이슬람교를 방불케 하는 엄격한 계율 속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뤄 살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최첨단의 도시 뉴욕에서….
최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브루클린의 유태인 구역 보로 파크의 ‘이루브(Eruv) 논쟁’은 하시드들에게 계율이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를 실감케 해주는 사건이다. ‘이루브’는 유태인들이 안식일 중에 꼭 필요한 노동만을 할 수 있도록 허락된 일종의 정화구역을 뜻한다. 18세기에나 있음 직한 사건인 보로 파크의 이루브 논쟁은 표면상으로는 이루브의 적법성을 둘러싼 문제다. 그러나 논쟁의 근저에는 현재의 사회와 점차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계율을 지키려는 하시드들의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유태인들의 안식일(Sabbath)은 금요일 일몰부터 시작되어 토요일 일몰에 끝난다. 탈무드는 안식일 동안에는 어떠한 종류의 노동도 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안식일에는 차를 운전하거나 빵을 사면 안되는 것은 물론이고 가방을 들고 거리를 걸어서도 안된다. 심지어 휠체어를 밀거나 아기를 안고 다닐 수도 없다. 이제는 사문화되다시피 한 계율이지만 말 그대로 ‘정통파’인 하시드들은 여기에 철저하게 복종한다. 그들이 안식일에 하는 일이란 오직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일뿐이다.
그러나 가족 중 휠체어에 탄 장애인이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좀 복잡해진다. 탈무드의 계율을 따르자니 예배당에 가야만 하고 예배당에 가기 위해 휠체어를 밀고 나서면 계율을 어긴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시드 장애인들은 토요일에만 휠체어를 밀어줄 사람을 임시로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인건비 비싼 뉴욕에서 주말인 토요일마다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적잖은 경제적 부담일 수밖에 없다.
보로 파크에 사는 한 유태인은 장애인인 아들과 함께 예배당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랍비 카임 카츠에게 호소했다. 카츠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의 예배당 근처에 ‘이루브’를 선포했다. 정화구역인 이루브 안에서는 노동을 해도 안식일의 계율에 어긋나지 않는다. 이루브를 선포한 지난해 10월 이후로 카츠는 매주 금요일 아침마다 가로수의 가지치기하는 무개차에 올라타고 예배당 근처 225블록의 거리에 전깃줄을 매듯 낚싯줄을 둘러친다. 낚싯줄에는 정화된 구역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리본이 달려 있다.
이루브의 탄생을 가장 기뻐하는 사람들은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다. 보로 파크의 하시드 가정엔 보통 대여섯 명의 자녀가 있다. 안식일에 아기를 안거나 유모차를 밀고 거리로 나설 수 없는 어머니들은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하루종일 집안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에 미칠 것 같던’ 여성들이 이루브 안에서나마 제한적인 자유를 맛보게 된 것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랍비들이 브루클린 안에 이루브를 만드는 것이 ‘계율을 어기는 일’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카츠가 처음 이루브를 만든 이래로 보로 파크의 하시드들은 이루브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양분되었다. 마침내 유태인들의 명절인 ‘하누카’(성전 헌당 기념일)에 반 이루브파들은 이루브 안에 대형 스피커를 설치했다. 스피커에서는 “이곳은 더 이상 이루브가 아니다. 하시드들은 안식일의 계율을 지켜라”라는 내용의 이디시어 방송이 종일 흘러나왔다. 반면 이미 이루브의 편리함을 맛본 유태인들은 이루브를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하다. 그들은 “이루브의 정화능력은 여전하다”는 내용의 전화 핫라인을 개설해 맞서고 있다.
이루브를 반대하는 랍비들은 ‘60만명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는 곳에는 이루브를 만들 수 없다’는 탈무드의 내용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60만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올라갈 때 그를 따르던 성인 남자들의 수다. 물론 뉴욕의 인구는 60만명의 열 배가 넘는다. 랍비 사울 비크는 보로 파크의 이루브에 대해 “안식일의 신성함을 더럽히는 일”이라며 “계율을 지키는 데 희생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루브는 안식일을 보통의 주말처럼 타락시킬 것”이라고 질타했다.
보로 파크에 이루브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랍비들은 한결같이 ‘안식일의 신성함’을 내세우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는 듯 하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전근대적인 계율에 복종하며 살기에는 너무도 많은 유혹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여성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계율을 어길 시험에 처하느니 아예 집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겠는가. “이루브는 안식일에 대한 부정이다. 만약 안식일에 신용카드로 물건을 사면 그것은 이미 안식일이 아니다”는 한 랍비의 토로는 차라리 솔직하게 들린다.
탈무드의 유명한 격언 중에는 ‘아무리 좋은 쇠사슬이라도 고리 하나가 끊어지면 못쓴다’는 말이 있다. 유태인들이 사소한 계율이라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계율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유태인들의 정통성을 지켜온 보루인 셈이다. 그러나 아기의 유모차도 밀지 못하고, 이웃에 살고 있는 노모에게 음식 한 접시도 가져다주지 못하는 안식일이 더 이상 안식의 날일 수 있을까. 계율은 이미 족쇄로 변한 지 오래다. 유태인들의 말처럼 ‘유태인으로 죽는 것은 쉬워도 유태인으로 사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