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28

2024.02.23

‘유럽의 병자’에서 ‘경제 우등생’으로 부활한 그리스

금융 전문가 미초타키스 총리, 포퓰리즘 정책 폐기하고 강도 높은 구조개혁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2-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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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2월 12일(현지 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가 2월 12일(현지 시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동쪽으로 33㎞ 떨어진 스파타 비즈니스 파크. 이곳에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리스 첫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25년까지 10억 유로(약 1조4400억 원)를 투자해 8만5000㎡ 부지에 19.2MW(메가와트)급 데이터센터를 만들 예정이다. 아테네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도시인 테살로니키에선 제약사 화이자가 6억5000만 유로(약 9380억 원)를 투입해 디지털 혁신 연구 단지를 만들었다. 테살로니키는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의 고향이다.

    아마존, 베링거인겔하임, 폭스바겐, 시스코, JP모건, 메타 등 다국적 기업이 대거 그리스에 투자하고 있다. 그리스의 2022년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전년 대비 48% 증가한 79억2800만 유로(약 11조4420억 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76.8% 증가한 수치로, 통계를 공식 집계한 2002년 이래 최고치다.

    외국인직접투자 늘어나는 그리스

    투자 열기는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그리스의 지난 1년간 주식시장 성장률(2022년 4분기~2023년 3분기 기준, 물가 반영)은 43.8%에 달한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면서 그리스 경제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관광산업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만 1000만 명 넘는 관광객이 그리스를 찾아 210억 유로(약 30조3000억 원) 상당의 경제 효과가 발생했다. 2022년 기준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의 18.5%를 차지하는 관광산업이 살아나면서 경제도 좋아지고 있다.

    ‘유럽의 병자’라는 말을 들었던 그리스가 최근 부활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부도 사태로 3차례나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가 국가부채 감소와 외국 기업들의 투자 등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의 GDP 성장률은 2021년 8.4%, 2022년 5.9%를 기록했는데, 이는 EU 평균 GDP 성장률(2021년 5.4%, 2022년 3.5%)을 훨씬 웃돈다. EU 집행위원회는 그리스의 2023년 GDP 성장률이 2.2%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고, 이후로도 2024년 2.3%, 2025년 2.3% 등을 달성하면서 상승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출도 증가했다. 2021년 기준 그리스의 상품 수출 규모는 2010년과 비교해 90%나 늘었다. 같은 기간 유럽 전체 평균 수출 규모는 42% 성장하는 데 그쳤다.

    200%가 넘었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도 2022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인 171%로 떨어졌고, 2023년 160%까지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 경제 전문가들은 그리스 국가부채 비율이 2026년에는 이탈리아(144.4%)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리스는 2022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빌린 구제금융을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상환하기도 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는 지난해 10월 그리스 국가신용등급을 ‘투자 적격’으로 상향 조정했다. 13년 만에 ‘정크’ 딱지를 뗀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 연금기관과 대형 투자사가 그리스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매입할 수 있게 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근원물가상승률과 인플레이션 폭, GDP 성장률, 고용 증가율, 주식시장 성과 등 5가지 경제지표를 바탕으로 가장 탁월한 성과를 낸 ‘올해의 국가’로 그리스를 선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부실 국가의 대명사로 여겨지던 그리스의 놀라운 반전”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그리스가 그동안 심각한 경제난을 겪은 이유는 ‘복지 천국’으로 불릴 정도로 과도했던 포퓰리즘 때문이다. 좌파 성향으로 사회당을 이끈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1981~1996년 두 차례에 걸쳐 집권하며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국민이 원하면 뭐든지 다 해준다”며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실시했다. 재정적자에도 무상교육, 연금과 최저임금 인상, 무상의료 같은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복지 천국의 그림자

    그리스 국민이 2011년 6월 의회 앞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구제금융 제공 조건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키피디아]

    그리스 국민이 2011년 6월 의회 앞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구제금융 제공 조건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위키피디아]

    대표 사례로 파판드레우 전 총리의 일자리 늘리기 정책이 있다. 그는 일자리 제공이라는 명목 아래 공무원을 무더기로 채용했고, 공무원 수가 85만 명까지 늘어났다. 노동가능인구 5명 중 1명꼴이었다. 이들이 받는 임금은 민간 평균보다 1.6배 많았고, 공무원의 월급 총액은 GDP의 절반을 넘었다. 또 다른 과잉 복지 사례로 연금을 꼽을 수 있다. 그리스 은퇴 세대의 연금은 소득대체율이 95%다. 직장을 다닐 때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결국 국가부채가 급증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해운·관광 등 주력 산업마저 직격탄을 맞아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다. 그리스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IMF와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3차례에 걸쳐 총 2890억 유로(약 416조5000억 원)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아 간신히 국가부도를 막았다.

    하지만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을 이끈 알렉시스 치프라스 전 총리는 나라가 빚더미에 앉았는데도 IMF 등의 구조조정과 긴축정책을 거부했다. 그는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등 유권자의 환심을 얻고자 포퓰리즘 정책을 계속 추진했다. 치프라스 전 총리는 독일·프랑스 등 채권국을 ‘약탈자’라고 비난하면서 긴축정책 요구를 거부했다. 결국 경제가 더욱 나빠지면서 시리자는 2019년 총선에서 패배했고, 치프라스 전 총리는 물러나야만 했다.

    그리스가 기사회생한 것은 당시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한 중도우파 성향의 신민주주의당(신민당)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가 추진한 정책 덕분이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경제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무상의료, 연금제도 등 포퓰리즘 정책을 대거 폐기하고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공무원 수를 대폭 감축한 것은 물론, 세금 인상, 공공 부문 임금 통제, 광범위한 민영화와 연금 삭감 등을 추진했다. 관료주의 타파와 부패 방지를 위한 국가투명성기구 설립 등 투자 환경도 국제 기준에 맞게 정비했다. 이외에도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현금영수증 제도를 도입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법인세율을 28%에서 24%로, 배당 소득세는 10%에서 5%로 인하했고, 50만 유로(약 7억2100만 원) 이상 부동산을 구입할 경우 EU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프로그램을 신설해 해외 자본 유치에도 나섰다. 그리스 경제에 대한 심폐소생에 성공한 신민당은 지난해 6월 총선에서 압승했고, 미초타키스 총리는 연임에 성공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말 그대로 그리스 경제의 구원투수라고 할 수 있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그의 부친은 1990∼1993년 총리를 지낸 콘스탄티노스 미초타키스다. 누나인 도라 바코야니스는 여성 최초로 아테네 시장을 지냈고 외교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2004년 의원으로 선출돼 정치에 입문했다. 2013∼2015년에는 행정개혁 담당 장관으로 재임했으며, 2016년 당대표에 선출됐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경제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실무 경험을 겸비한 금융 전문가다. 그리스 아테네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다시 사회학 학사를, 스탠퍼드대에서 국제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경영학 석사(MBA)학위까지 딴 뒤 영국 체이스은행과 글로벌 컨설팅업체 매킨지 등에서 일했다.

    “그리스, 유럽의 검은 양 아냐”

    미초타키스 총리는 집권 초기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자 신속한 봉쇄 조치와 감염자 추적, 성공적인 백신 접종 캠페인 등으로 유럽 다른 국가들에 비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이후 그는 그리스 경제를 회생시키려면 포퓰리즘 정책들을 과감히 폐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일부 국민의 저항에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시장경제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면서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 파고가 덮쳤음에도 그리스 경제는 순항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그리스를 유럽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2021년부터 5개년 중장기 경제성장 프로그램인 ‘그리스 2.0’ 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EU 회복기금 312억 유로(약 45조 원)를 포함해 총 589억 유로(약 85조 원)를 투자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린 전환 △디지털 전환 △고용 인재 개발 △민간투자 및 경제 전환 등 4개 부문을 축으로 총 68개 분야에서 106개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그리스는 더는 유럽의 ‘검은 양’(골칫덩어리)이 아니다”라면서 “그리스는 이제 유럽에서 가장 안정적인 국가로 거듭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던 그리스가 이제는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가 됐다”고 평가했다. ‘신화의 나라’로 불리던 그리스가 새로운 부활의 신화를 다시 쓰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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