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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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중동, 고민하는 이스라엘

대량살상무기 포기 등 국제사회 압박 거세져 … 언론도 정부 결단 촉구 ‘선택의 기로’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4-02-12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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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변하는 중동, 고민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오른쪽)는 중동질서 개편에 대한 국제사회의 요구에 현재까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새해 들어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지역의 정세변화가 심상치 않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생포, 리비아의 WMD(대량살상무기) 포기선언, 이란의 핵사찰 수용, 시리아의 이스라엘과의 조건 없는 평화협상 재개요구 등 오랜 기간이 걸려야 가능한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났다. 변화의 동인은 물론 이라크 전쟁에서 보여준 미국의 일방적인 무력이었지만, 변화의 방향이 중동지역의 군사긴장 완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지역의 평화정착을 알리는 새로운 질서로의 개편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지금의 분위기에 대해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냈지만 이러한 변화의 대열에 동참하라는 안팎의 요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이다.

    앞서 언급한 일련의 변화들은 ‘중동지역의 WMD 안전지대화’라는 논의를 불러일으켰고 이스라엘이 이러한 논의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게 고민의 주요 이유다.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이 리비아와 이란의 조처를 따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고, IAEA(국제원자력기구)·NPT(핵확산 금지조약) 같은 국제기구 또한 이에 동조하고 나섰다.

    핵무기에 관한 한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그 존재 여부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NPT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IAEA의 핵사찰도 받지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에 핵무기가 없을 것이라고 믿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발견되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의심만으로 풍비박산이 난 이라크와 비교하면 대단한 특혜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특혜는 1969년, 당시 이스라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와 미국 대통령 닉슨 사이에 맺어진 비밀조약에 기인한다. 이 비밀조약에서 닉슨은 이스라엘이 핵실험을 통해 핵개발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이스라엘이 먼저 중동지역에 핵무기를 소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세워 NPT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묵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러한 든든한 ‘후원자’ 덕분에 그동안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감시를 피해 자유로이 핵개발을 할 수 있었고, 끊임없는 핵사찰 요구에 당당히(?) 불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힘 앞에 주변국들 무장해제

    핵에 관한 한 이스라엘의 입장은 단호하다. 핵을 전쟁억제 전략과 국가생존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네 차례의 전쟁을 치른 적대국이었던 이집트와의 평화협정이 가능했던 것도, 1991년 걸프전 당시 사담 후세인이 이스라엘을 향해 생화학 미사일을 발사하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믿는다. 실제로 만일 이스라엘과 남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다른 아랍국들의 비난을 무릅쓰면서까지 아랍국 중 가장 먼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1978년)했으리라고 보기 힘들다.



    따라서 적어도 이스라엘 내에서는 핵 포기에 대한 주장은 나오지 않는다. 설령 주장이 있다 하더라도 결코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좌파성향의 언론이나 평화주의자들도 이를 인정한다. 중동지역의 WMD 안전지대화 논의가 물위로 떠오른 뒤 이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는 언론도 ‘핵에 관한 한 현재 정책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WMD가 핵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생화학무기 및 이를 운반하는 장거리 미사일 또한 이에 포함된다. 이들 무기를 금지하는 국제조약 가입 현황을 보면 이스라엘이 중동지역의 WMD 안전지대화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CWC(화학무기 금지조약)는 화학무기의 개발 및 생산을 금지하는 국제조약이다. 이에 가입한 나라는 화학무기의 파기 및 과거 개발기록을 제출해야 하고 화학물질 생산시설을 국제사회에 개방해 정기·특별 사찰에 응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1993년 이 조약에 서명한 상태지만 그 비준을 거부하고 있다. 1972년 조인된 생물무기 금지조약에는 서명도 하지 않았다.

    급변하는 중동, 고민하는 이스라엘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포기를 선언한 리비아의 가다피 대통령(왼쪽)과 이스라엘과의 조건 없는 평화협상 재개를 요구한 시리아의 바샤르 대통령.

    이스라엘의 방어전략에서 생화학무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 않다. 이스라엘 언론은 이 점을 들어 지금이 이러한 국제조약을 비준해야 할 시기라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이 화학무기 금지조약의 비준을 꺼리는 이유는 비준할 경우 핵무기, 생화학무기, 장거리 미사일의 개발에 사용될 여지가 있는 화학물질의 생산에 대한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내 화학산업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고, 과학기술 연구에 필요한 물질의 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이스라엘의 일간지 ‘하아레츠’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이른바 ‘공급국’을 이용하면 된다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들 물질을 공급할 수 있는 나라는 NPT에 가입한 핵개발 위험이 없는 나라들이다. 이 조약을 비준하지 않은 다른 중동국가로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있다. 두 나라 모두 대량의 화학무기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집트는 이를 실전에서 사용한 적도 있다. 이들 국가는 조약 비준 요구에 대해 “이스라엘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화학무기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스라엘이 핵을 비롯한 WMD로 무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가진 화학무기는 최소한의 방어무기라는 논리다.

    국제조약 가입할까 ‘관심거리’

    생물무기는 이스라엘의 방어전략 개념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분야로 평가된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상임연구원이자 ‘이스라엘과 폭탄(Israel and the Bomb)’의 저자인 아브네르 코헨은 하아레츠의 기고문에서 중동지역의 일련의 변화에 대해 “WMD의 전쟁 억제력으로서의 가치가 감소되고 있다”고 평가하며, 이스라엘은 ‘선언적인 의미’에 불과한 생물무기를 포기하고 중동지역의 변화 대열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급변하는 중동, 고민하는 이스라엘

    지난해 12월13일 미군에게 생포되고 있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전면적 핵실험 금지 조약기구(CTBTO)는 이스라엘이 가입했으나 비준하지 않은 또 다른 국제조약이다. 지구 어느 곳에서의 핵실험도 금지할 목적으로 1996년 조인된 이 조약에는 177개국이 가입해 있지만 강제력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조약에 가입한 나라 중 미국을 비롯한 12개 국가가 이의 비준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이 비준을 하면 동조한다는 입장이고, 이집트 역시 이스라엘이 비준해야 할 수 있다는 쪽이다. 이스라엘 핵 프로그램의 책임기관으로 CTBTO와의 연락 책임을 맡고 있는 이스라엘 핵에너지위원회(IAEC)의 공식입장은 “이스라엘이 대다수 아랍국가 및 이란과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비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비밀조약에 의해 과거에도 핵실험을 실행한 적이 없고, 미래에도 하지 않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하아레츠’의 주장에 따르면 CTBTO를 비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집트나 시리아 같은 아랍국가가 자국의 생화학무기를 이스라엘의 생화학무기와 맞바꾸려는 의사는 전혀 없어 보인다. 그들이 생화학무기를 내놓는 조건은 이스라엘의 핵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생화학무기 금지조약을 비준하더라도 이집트나 시리아가 그 뒤를 따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아레츠를 비롯한 이스라엘 언론들이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는,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치가 강제되기 전에 이러한 국제조약들에 가입해 변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야 앞으로 전개될 중동질서 개편 논의에서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샤론 내각은 이러한 안팎의 요구에 현재까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금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흐름에 끌려갈 것이냐, 아니면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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