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조업체 사장들은 “제조업으로 밥 벌어먹기가 죽기보다 더 어렵다”는 한탄을 입에 달고 산다. ‘산업 역군’이라는 훈장을 달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조업이 어느 틈에 ‘굴뚝산업’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는 기피 대상으로 전락했다. 요즘 중소 제조업체의 모습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다. 첨단 산업의 위세에 눌려 뒤편으로 밀려난 것도 서러운데 산업기능요원(병역특례)을 제외하면 사람 구하기조차 어려운 것. 한 제조업체 사장은 “일할 사람도 없는데 뭐하러 아직까지 붙들고 있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가 가장 서럽다”고 했다.
그러나 이처럼 제조업을 ‘죽은 산업’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제조업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이상원 신원에스앤티 대표(사진)가 바로 그런 사람. 그는 ‘기술보국’ ‘수출보국’이라는 옛 냄새 가득한 구호를 외치며 ‘굴뚝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는 이 시대의 산업역군이다. 그는 최근 고부가가치 기술을 통한 수출 증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꾸려나가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도리어 그는 “일할 사람이 없으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되는 것이고, 중국이 겁나면 중국보다 더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TOSS 상표 유럽·日 등서 호평
금형부품을 생산하는 신원에스앤티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수입에 의존해왔던 필수 부품인 가스스프링을 1999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부터. 가스스프링은 오일과 가스를 이용해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로 선박 의료기기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부품이다. 신원에스앤티는 가스스프링에 ‘토스(TOSS)’라는 독자 상표를 붙여 유럽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 수출했다. 스웨덴 미국 등에서 전량 수입되던 부품이 거꾸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 이대표는 “수입대체 효과가 300만 달러(약 360억원)에 이른다”면서 “현재 출시되고 있는 제품도 세계 최고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기술력을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표는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1990년 사업에 뛰어들었다. 직원 2명을 고용하고 무역회사를 세웠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가스스프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대표는 우선 미국에서 가스스프링을 들여와 판매했다. 애프터서비스를 구실로 미국에서 기술을 들여오겠다는 뜻이었다.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은 96년. 가스스프링 프로젝트는 순수 개발비만 5억원 이상 드는 모험이었다. 결국 이대표는 3년의 노력 끝에 가스스프링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꿈이던 수출보국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우수자본재 개발 공로로 이대표는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이대표의 경영이념 중 첫째는 ‘직원 사랑’이다. 그는 외환위기 시절 줄지어 부도나는 다른 업체들을 보면서도 직원들의 급여와 상여금을 인상해 사기를 높였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이대표에게 외환위기는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가스스프링 개발을 완료했을 무렵 외환위기 여파로 환율이 높아져 경쟁력을 더욱 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 이대표는 “회사가 세계적인 부품업체의 자리를 지켜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직원들의 회사 사랑이 필요하다”면서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헌신하길 바라기 전에 사장이 직원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에 방점을 찍은 것에서도 미뤄볼 수 있듯 이대표 역시 가장 어려운 점은 인력난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 이름을 신원교역에서 신원에스앤티로 바꾸는 등 젊은이들의 구미를 고려했음에도 현장 기술자 확보가 매우 어렵다”면서 청년실업자들의 대기업 선호 현상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제조업에서 희망을 발견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막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집을 짓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신원에스앤티 공장 입구엔 ‘제품에 혼을 넣자’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혼이 담긴 제품을 만들어 수출보국에 대들보가 되겠다”는 그의 다짐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그러나 이처럼 제조업을 ‘죽은 산업’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제조업 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선 이들 또한 적지 않다. 이상원 신원에스앤티 대표(사진)가 바로 그런 사람. 그는 ‘기술보국’ ‘수출보국’이라는 옛 냄새 가득한 구호를 외치며 ‘굴뚝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는 이 시대의 산업역군이다. 그는 최근 고부가가치 기술을 통한 수출 증대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꾸려나가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묻자 도리어 그는 “일할 사람이 없으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되는 것이고, 중국이 겁나면 중국보다 더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TOSS 상표 유럽·日 등서 호평
금형부품을 생산하는 신원에스앤티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수입에 의존해왔던 필수 부품인 가스스프링을 1999년 국내 최초로 개발하면서부터. 가스스프링은 오일과 가스를 이용해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로 선박 의료기기 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부품이다. 신원에스앤티는 가스스프링에 ‘토스(TOSS)’라는 독자 상표를 붙여 유럽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에 수출했다. 스웨덴 미국 등에서 전량 수입되던 부품이 거꾸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 이대표는 “수입대체 효과가 300만 달러(약 360억원)에 이른다”면서 “현재 출시되고 있는 제품도 세계 최고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기술력을 유지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표는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1990년 사업에 뛰어들었다. 직원 2명을 고용하고 무역회사를 세웠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가스스프링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대표는 우선 미국에서 가스스프링을 들여와 판매했다. 애프터서비스를 구실로 미국에서 기술을 들여오겠다는 뜻이었다. 본격적으로 기술 개발에 착수한 것은 96년. 가스스프링 프로젝트는 순수 개발비만 5억원 이상 드는 모험이었다. 결국 이대표는 3년의 노력 끝에 가스스프링 생산에 성공함으로써 꿈이던 수출보국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었다. 우수자본재 개발 공로로 이대표는 국무총리상을 받기도 했다.
이대표의 경영이념 중 첫째는 ‘직원 사랑’이다. 그는 외환위기 시절 줄지어 부도나는 다른 업체들을 보면서도 직원들의 급여와 상여금을 인상해 사기를 높였다고 한다. 되돌아보면 이대표에게 외환위기는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가스스프링 개발을 완료했을 무렵 외환위기 여파로 환율이 높아져 경쟁력을 더욱 쉽게 확보할 수 있었던 것. 이대표는 “회사가 세계적인 부품업체의 자리를 지켜나가려면 무엇보다도 직원들의 회사 사랑이 필요하다”면서 “직원들이 회사를 위해 헌신하길 바라기 전에 사장이 직원들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에 방점을 찍은 것에서도 미뤄볼 수 있듯 이대표 역시 가장 어려운 점은 인력난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 이름을 신원교역에서 신원에스앤티로 바꾸는 등 젊은이들의 구미를 고려했음에도 현장 기술자 확보가 매우 어렵다”면서 청년실업자들의 대기업 선호 현상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제조업에서 희망을 발견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막일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집을 짓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신원에스앤티 공장 입구엔 ‘제품에 혼을 넣자’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혼이 담긴 제품을 만들어 수출보국에 대들보가 되겠다”는 그의 다짐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