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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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 영혼 바친 지독한 ‘제주도 사랑’

  • 입력2004-02-13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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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남자 영혼 바친 지독한  ‘제주도 사랑’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죽고 싶다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희망의 끈을 나는 놓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 밖의 세계를 나는 믿는다.”

    5년 전 불치병인 루게릭병에 걸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힘들어서 말도 잘 하지 못하는 사진작가 김영갑씨(47). 한때 75kg의 건장한 체격을 유지했던 그는 지금 43kg에 불과하다. 의사로부터 3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위태로우나마 강인한 생명력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했을 때 써뒀던 글들과 구술정리를 통해 제주도 생활 20여년을 정리한 산문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휴먼 앤 북스 펴냄)를 펴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가 제주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여년 전. 서울에 주소지를 정해두고 사진을 찍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닐 때 우연히 섬 풍경에 반해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제주도에 정착하게 됐다. 그러나 제주도는 그에게 황홀경을 보여준 대신 절대 빈곤과 절대 고독의 삶을 안겨줬다. 궁핍하고 불편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사진작업에 대한 그의 열정은 결코 식지 않았다. 필름이 떨어지면 막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필름을 샀다. 그렇게 해서 제주 풍광을 담은 필름이 20여만 장.

    “어느 날부턴가 사진을 찍을 때면 셔터를 누르는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이유 없이 허리에 통증이 왔습니다. 나중에는 카메라를 들지도, 걷지도, 먹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정확한 발병원인도 치료법도 모르는 불치병에 걸린 것이다. 미친 듯이 찍어대던 사진도 더 이상 찍을 수 없게 되었고, 한라산을 오르내리던 튼튼한 다리도 말을 듣지 않았다. 충격에 휩싸인 그는 마지막 희망을 불사른다. 폐교를 임대해 자신이 찍었던 사진을 전시하는 갤러리를 만들고자 했다. 생명처럼 소중히 했던 작품들을 세상 떠나기 전에 실컷 걸어두고 보고 싶었던 것.



    그의 시도를 주변에서는 모두 미친 짓이라며 말렸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결국 희망을 이뤘다. 2002년 여름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성산읍 삼달리 소재 www.dumoak.co.kr)의 문을 연 것이다. 불편한 몸으로 일궈놓은 이 아름다운 갤러리는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제주도의 명물이 돼가고 있다.

    그가 그 갤러리에 내걸고자 했던 사진은 대부분 눈부시게 아름다운 자연풍광이다. 또 외로움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다. 이 산문집에는 그가 파노라마식으로 포착한 제주도의 황홀경 수십 점과 무수히 일었다 사라진 마음속의 광풍과 비바람, 고통을 이겨낸 달관한 영혼의 속삭임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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