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0일 강우석 감독의 신작 ‘실미도’ 시사회가 서울 종로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기자 등 관계자 시사로는 드물게 2개 스크린에서 열렸음에도 돌아간 사람들이 생길 만큼 많은 이들이 몰려왔다. 그때까지 열린 한국영화 시사회 중 가장 열띤 분위기였다.
다소 냉소적 반응을 보인 영화평론가들과 기자들을 제외한다면 ‘대박’을 예견하기에 충분했다. ‘실미도’는 예상대로 한국영화 최다 스크린 개봉, 한국영화 최대 예매량, 개봉일 최대 흥행, 개봉 첫주 최대 흥행 등의 기록을 세우며 드디어 2월 둘째 주 1000만 유료 관객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00만 관객은 ‘친구’가 세운 한국영화 최고 관객 기록 818만명을 넘어선 경이적인 수다. 강우석 감독이 “입원 환자와 죄수 빼고 다 보지 않겠느냐”고 말할 때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은 영화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원 환자 죄수 빼고 다 보지 않겠느냐”
그리고 2월3일 열린 강제규 감독의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사회장. 서울 삼성동 코엑스 내 메가박스 4개관을 전세 낸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시사였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모인 한국영화 최초의 ‘월드 프리미어’였다. 영화가 끝나자 극장 안은 기립박수와 탄식,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배우 원빈과 공형진은 얼마나 울었는지 그로 인해 오랫동안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실미도’ 때 시큰둥했던 기자들도 “강제규 감독이 한국영화의 수준을 다시 또 한 단계 끌어올렸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사회 직후 상영관 수가 10개 남짓 늘어났고 강제규 감독과 장동건, 원빈은 아시아판 ‘뉴스위크’의 커버스토리로 결정이 되었다.
객관적으로 시사회 반응과 평가만을 비교한다면 ‘태극기 휘날리며’는 ‘실미도’의 1000만 관객수를 넘어설 듯 보였다. 실제로 이틀 후 개봉한 ‘태극기~’는 ‘실미도’가 세운 모든 기록을 가볍게 경신했다.(표 참조) 남은 건 1000만이란 숫자뿐이다. 영화사에서는 ‘네티즌들의 예상’을 빌려 조심스럽게 1200만명을 기대한다.
영화평론가 김경욱씨는 “이제 영화 자체로는 관객 반응을 예상하는 게 불가능하다. 서글프지만 한국영화에서 비평가의 역할은 없다”고 말한다.
‘실미도’와 ‘태극기~’의 흥행 파워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이뤄졌다. 가장 자주 언급되며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얘기는 “역사적 소재 자체가 500만은 동원했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간인 31명을 무인도에 가둬두고 비인간적인 훈련을 시켜 북파하려 했던 것, 이들이 무장한 채 서울까지 와서 자폭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알지 못했던 관객들에게 충격적이었다는 뜻이다. ‘실미도’의 “상황 자체가 엄청 영화적이지 않냐”는 강우석 감독은 이 역사적 사실을 영화의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가운데에 안기부가 정책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몰살시키려 했다는 허구를 집어넣어 감동을 증폭시켰다.
“불과 30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는 젊은 관객(오가원ㆍ30ㆍ영화사 직원)이나 “어렴풋이 신문에 났던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영화로 보니 참 끔찍했다”는 관객(어영자ㆍ60ㆍ주부)의 말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영화의 모든 것을 ‘실화’로 이해하고 있었다.
‘태극기~’도 영화의 시작과 끝에 한국전쟁과 그 50년 뒤에 있었던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발굴 사업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았다. 강제규 감독이 SF물을 준비하다 ‘태극기~’로 돌아선 계기가 한국전쟁 참전용사 유해발굴 사업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였다. 진태와 진석의 비극적 운명이라든지, 영화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인 두밀령 전투는 당연하지만 허구다.
한국영화에서 역사 속의 사건을 다루는 시도는 강우석 감독이나 강제규 감독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른 감독들처럼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특히 강우석 감독은 ‘자신이 안 해야 할 영화’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사상이나 이념 때문에 부담이 됐던 적은 없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오히려 편하다. ‘실미도’ 자체가 내게 왔을 때 반가웠던 건 얘기 자체가 말이 되기 때문이다.”(강우석 감독ㆍ‘실미도’ 제작발표회)
“전쟁이 경쟁력은 아니다. 인물과 드라마로 승부하겠다.”(강제규 감독ㆍ‘태극기 휘날리며’ 시사회 등)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를 끌어들이는 것은 강우석ㆍ강제규 두 감독이 영화적 리얼리티를 확실하게 획득하는 방식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 화려한 영상어법을 인정받았음에도 참패한 한국 블록버스터들의 공통점은 관객들로부터 “저게 말이 되냐”는 냉소에 먼저 부딪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 블록버스터의 아킬레스건이 ‘리얼리티’라는 점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알아냈다.
더욱이 영화가 성공을 거둔 뒤 최근 정부가 실미도 부대의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영화 ‘실미도’는 엄청난 현실감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국방군에서 인민군으로, 다시 국방군 편을 오간 구두닦이 진태(장동건)의 삶이 그처럼 생생한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의 앞뒤에 교묘하게 설치함으로써 리얼리티에 대한 논란 자체를 없애버렸다. 여기서 “그게 말이 되냐”고 따질 사람은 없다. 있었던 일이니까.
“감독이 느끼는 사회적 의무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사회적 이슈를 잡아가면 관객과 대화하기 편해진다. 내 일 같고 옆집 일 같고 그렇지 않나.”(강우석 감독ㆍ‘시네 21’ 인터뷰)
에로물로 유명한 정인엽 감독의 연출부로 함께 충무로에 들어온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두 사람 모두 대학입시, 경찰과 권력층의 부조리, 남북관계 등 관객과 대화할 수 있는 소재를 끌어들여 영화적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은 결코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이 주는 부채감, 불편함이 그들의 영화에는 없다.
또한 매일 신문에 등장하는 사회문제는 관객들에게 쉽고 강하게 다가선다. 관객들은 머리 아프게 상상하거나 유추할 필요가 없다.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은 솔직하게 액면의 영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위 조절을 탁월하게 잘 해요.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연민, 동정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정도로만 비극적 현실을 조율한다는 점이 흥행의 비결이지요.”(최용배ㆍ영화제작ㆍ배급사 ‘청어람’ 대표)
특히 ‘실미도’와 ‘태극기~’가 우선 고려했던 시장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였다. ‘실미도’ 프로젝트는 투자대상을 찾던 콜롬비아 트라이스타가 몇 개의 한국영화 기획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영화였다(막판에 콜롬비아가 이를 뒤집었다). 또한 ‘태극기~’도 일본과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과 캐스팅을 했다. 공식 명칭이 ‘공군 2324전대 209파견대’인 실미도 부대와 ‘민족상잔’인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영화에서 살짝 들어내보자. 영화 ‘실미도’는 할리우드에서 나온 ‘록’ 등과 닮은 구조를 갖고 있고, ‘태극기~’는 흔히 신파라 평하는 일본 가족영화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두 감독은 외국의 젊은 영화 관객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한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이 ‘올인’했다. 처음부터 들어와야 하는 관객수가 분명했기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을 관객수에 도전하듯 찍었다”고 말한다. 사실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고, 극장과 스튜디오까지 그가 벌여놓은 사업은 눈덩이처럼 늘어난 상태였다.
‘단적비연수’ ‘베사메무초’를 제작해 흥행에 실패한 강제규 감독도 다급하긴 마찬가지였다. “‘태극기~’의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엎어진다”는 흉흉한 소문 속에 강제규 감독은 지난해 2월과 3월 겨울 전투신을 찍어 3분 분량의 편집본을 들고 칸에 갔고, 그곳에서 호평을 받음으로써 아슬아슬하게 투자자를 구할 수 있었다.
‘실미도’나 ‘태극기~’가 감동적 사건을 역사에서 빌려왔고, 재주 많은 감독들이 ‘올인’했다 해도 1000만, 1200만이란 숫자를 설명하진 못한다. 나머지 숫자는 영화 밖에서 온다. 남한에서 어린이와 노인, 환자와 죄수 빼고 ‘실미도’를 다 봤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루키 식으로 이야기하면 꽤 심각한 ‘문화적 화전민’ 현상이다.
“영화 자체로는 설명되지 않는 숫자죠. 전 국민이 똑같은 TV를 보고, 다음날 똑같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문화적 균질함·단일함이 현재 한국영화를 버텨주고 있어요. 최근 흥행작들에 한국적 ‘주먹싸움’ 장면이 꼭 들어가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죠.”(김혜준ㆍ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한국영화가 1000만명 시대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지만 시대적 진실에 맞선 영화들이 극장에서 단 하루라도 관객과 만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실미도’ 1000만명 시대를 환영하면서도 영화적 상상력과 다양성이란 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그나마 이런 문제를 제기하던 젊은 영화인들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제도권에서 활동함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혜준 사무국장은 “1000만 영화가 나오는가 하면, 예술영화 전용관인 ‘아트플러스 체인’도 설립됐다. 현재 한국영화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단계에 접어들었음은 틀림없다”고 말한다.
‘실미도’의 1000만 숫자를 영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1000만 한국영화 관객 시대의 진실과 허구는 ‘태극기~’의 결과가 보여줄 것이다. 두 영화가 많은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영화 제작자들의 바람처럼 ‘실미도’는 평생 처음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또다시 ‘태극기’의 깃발 아래 모을 수 있을까.
다소 냉소적 반응을 보인 영화평론가들과 기자들을 제외한다면 ‘대박’을 예견하기에 충분했다. ‘실미도’는 예상대로 한국영화 최다 스크린 개봉, 한국영화 최대 예매량, 개봉일 최대 흥행, 개봉 첫주 최대 흥행 등의 기록을 세우며 드디어 2월 둘째 주 1000만 유료 관객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00만 관객은 ‘친구’가 세운 한국영화 최고 관객 기록 818만명을 넘어선 경이적인 수다. 강우석 감독이 “입원 환자와 죄수 빼고 다 보지 않겠느냐”고 말할 때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은 영화사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원 환자 죄수 빼고 다 보지 않겠느냐”
그리고 2월3일 열린 강제규 감독의 신작 ‘태극기 휘날리며’의 시사회장. 서울 삼성동 코엑스 내 메가박스 4개관을 전세 낸 한국영화 사상 최대 규모의 시사였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영화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모인 한국영화 최초의 ‘월드 프리미어’였다. 영화가 끝나자 극장 안은 기립박수와 탄식, 흐느낌으로 가득 찼다. 배우 원빈과 공형진은 얼마나 울었는지 그로 인해 오랫동안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실미도’ 때 시큰둥했던 기자들도 “강제규 감독이 한국영화의 수준을 다시 또 한 단계 끌어올렸다”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시사회 직후 상영관 수가 10개 남짓 늘어났고 강제규 감독과 장동건, 원빈은 아시아판 ‘뉴스위크’의 커버스토리로 결정이 되었다.
실미도 영화 장면(왼쪽). ‘태극기~’ 영화 장면
영화평론가 김경욱씨는 “이제 영화 자체로는 관객 반응을 예상하는 게 불가능하다. 서글프지만 한국영화에서 비평가의 역할은 없다”고 말한다.
‘실미도’와 ‘태극기~’의 흥행 파워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이뤄졌다. 가장 자주 언급되며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얘기는 “역사적 소재 자체가 500만은 동원했다”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간인 31명을 무인도에 가둬두고 비인간적인 훈련을 시켜 북파하려 했던 것, 이들이 무장한 채 서울까지 와서 자폭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알지 못했던 관객들에게 충격적이었다는 뜻이다. ‘실미도’의 “상황 자체가 엄청 영화적이지 않냐”는 강우석 감독은 이 역사적 사실을 영화의 처음과 끝에 배치하고 가운데에 안기부가 정책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몰살시키려 했다는 허구를 집어넣어 감동을 증폭시켰다.
“불과 30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는 젊은 관객(오가원ㆍ30ㆍ영화사 직원)이나 “어렴풋이 신문에 났던 사건으로 기억하는데, 영화로 보니 참 끔찍했다”는 관객(어영자ㆍ60ㆍ주부)의 말은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영화의 모든 것을 ‘실화’로 이해하고 있었다.
한 개봉 영화관.
한국영화에서 역사 속의 사건을 다루는 시도는 강우석 감독이나 강제규 감독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다른 감독들처럼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현실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특히 강우석 감독은 ‘자신이 안 해야 할 영화’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한다.
“사상이나 이념 때문에 부담이 됐던 적은 없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이 오히려 편하다. ‘실미도’ 자체가 내게 왔을 때 반가웠던 건 얘기 자체가 말이 되기 때문이다.”(강우석 감독ㆍ‘실미도’ 제작발표회)
“전쟁이 경쟁력은 아니다. 인물과 드라마로 승부하겠다.”(강제규 감독ㆍ‘태극기 휘날리며’ 시사회 등)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를 끌어들이는 것은 강우석ㆍ강제규 두 감독이 영화적 리얼리티를 확실하게 획득하는 방식이다.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 화려한 영상어법을 인정받았음에도 참패한 한국 블록버스터들의 공통점은 관객들로부터 “저게 말이 되냐”는 냉소에 먼저 부딪혔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한국 블록버스터의 아킬레스건이 ‘리얼리티’라는 점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도 알아냈다.
더욱이 영화가 성공을 거둔 뒤 최근 정부가 실미도 부대의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영화 ‘실미도’는 엄청난 현실감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국방군에서 인민군으로, 다시 국방군 편을 오간 구두닦이 진태(장동건)의 삶이 그처럼 생생한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의 앞뒤에 교묘하게 설치함으로써 리얼리티에 대한 논란 자체를 없애버렸다. 여기서 “그게 말이 되냐”고 따질 사람은 없다. 있었던 일이니까.
“감독이 느끼는 사회적 의무 그런 건 절대 아니다. 사회적 이슈를 잡아가면 관객과 대화하기 편해진다. 내 일 같고 옆집 일 같고 그렇지 않나.”(강우석 감독ㆍ‘시네 21’ 인터뷰)
에로물로 유명한 정인엽 감독의 연출부로 함께 충무로에 들어온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두 사람 모두 대학입시, 경찰과 권력층의 부조리, 남북관계 등 관객과 대화할 수 있는 소재를 끌어들여 영화적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은 결코 관객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초록물고기’나 ‘박하사탕’이 주는 부채감, 불편함이 그들의 영화에는 없다.
또한 매일 신문에 등장하는 사회문제는 관객들에게 쉽고 강하게 다가선다. 관객들은 머리 아프게 상상하거나 유추할 필요가 없다.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은 솔직하게 액면의 영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수위 조절을 탁월하게 잘 해요. 억울한 사람들에 대한 사람들의 연민, 동정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정도로만 비극적 현실을 조율한다는 점이 흥행의 비결이지요.”(최용배ㆍ영화제작ㆍ배급사 ‘청어람’ 대표)
특히 ‘실미도’와 ‘태극기~’가 우선 고려했던 시장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였다. ‘실미도’ 프로젝트는 투자대상을 찾던 콜롬비아 트라이스타가 몇 개의 한국영화 기획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한 영화였다(막판에 콜롬비아가 이를 뒤집었다). 또한 ‘태극기~’도 일본과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기획과 캐스팅을 했다. 공식 명칭이 ‘공군 2324전대 209파견대’인 실미도 부대와 ‘민족상잔’인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영화에서 살짝 들어내보자. 영화 ‘실미도’는 할리우드에서 나온 ‘록’ 등과 닮은 구조를 갖고 있고, ‘태극기~’는 흔히 신파라 평하는 일본 가족영화와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두 감독은 외국의 젊은 영화 관객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한 것이다.
영화계 관계자들은 “강우석ㆍ강제규 감독이 ‘올인’했다. 처음부터 들어와야 하는 관객수가 분명했기 때문에 한 장면 한 장면을 관객수에 도전하듯 찍었다”고 말한다. 사실 강우석 감독은 ‘공공의 적’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고, 극장과 스튜디오까지 그가 벌여놓은 사업은 눈덩이처럼 늘어난 상태였다.
‘단적비연수’ ‘베사메무초’를 제작해 흥행에 실패한 강제규 감독도 다급하긴 마찬가지였다. “‘태극기~’의 제작비를 구하지 못해 엎어진다”는 흉흉한 소문 속에 강제규 감독은 지난해 2월과 3월 겨울 전투신을 찍어 3분 분량의 편집본을 들고 칸에 갔고, 그곳에서 호평을 받음으로써 아슬아슬하게 투자자를 구할 수 있었다.
‘실미도’나 ‘태극기~’가 감동적 사건을 역사에서 빌려왔고, 재주 많은 감독들이 ‘올인’했다 해도 1000만, 1200만이란 숫자를 설명하진 못한다. 나머지 숫자는 영화 밖에서 온다. 남한에서 어린이와 노인, 환자와 죄수 빼고 ‘실미도’를 다 봤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하루키 식으로 이야기하면 꽤 심각한 ‘문화적 화전민’ 현상이다.
“영화 자체로는 설명되지 않는 숫자죠. 전 국민이 똑같은 TV를 보고, 다음날 똑같은 대화를 나눠야 하는 문화적 균질함·단일함이 현재 한국영화를 버텨주고 있어요. 최근 흥행작들에 한국적 ‘주먹싸움’ 장면이 꼭 들어가는 것도 그런 점 때문이죠.”(김혜준ㆍ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한국영화가 1000만명 시대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지만 시대적 진실에 맞선 영화들이 극장에서 단 하루라도 관객과 만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실미도’ 1000만명 시대를 환영하면서도 영화적 상상력과 다양성이란 점에서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그나마 이런 문제를 제기하던 젊은 영화인들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제도권에서 활동함에 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됐다는 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혜준 사무국장은 “1000만 영화가 나오는가 하면, 예술영화 전용관인 ‘아트플러스 체인’도 설립됐다. 현재 한국영화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단계에 접어들었음은 틀림없다”고 말한다.
‘실미도’의 1000만 숫자를 영화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1000만 한국영화 관객 시대의 진실과 허구는 ‘태극기~’의 결과가 보여줄 것이다. 두 영화가 많은 점에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영화 제작자들의 바람처럼 ‘실미도’는 평생 처음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또다시 ‘태극기’의 깃발 아래 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