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군의 주력 전투기 수호이(Su)-35가 비행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4.5세대 전투기 도입하는 이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지난해 7월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아야톨라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와 대화하고 있다. [크렘린궁]
Su-35는 러시아의 주력 전투기다. 옛 주력기였던 Su-27의 레이더, 항전 장비, 엔진 등을 전면 교체해 만들었다. Su-35는 4세대 전투기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사이인 4.5세대 전투기로 분류되며, 2014년부터 러시아군에 본격 도입됐다. 최고속도는 마하 2.35(약 2800㎞/h), 항속거리는 3600㎞, 전투 반경은 1600㎞로 고속·고고도 비행 능력을 갖췄다. 30㎜ 기관포와 12기의 공대공·공대지미사일을 장착하고 있으며, AS-17 초음속 대함미사일도 탑재됐다.
북한과 공군력에서 별 차이가 없는 이란이 러시아로부터 Su-35 전투기를 비롯해 Mi-28 공격 헬리콥터, 야크(Yak)-130 고등훈련기를 대거 도입한다. Mi-28은 러시아군에서 카모프(Ka)-52와 함께 운용되는 주력 기종으로 러시아어로 ‘노치노이 아호트니크’(밤의 사냥꾼)라 부를 정도로 야간 작전 능력이 탁월하다. Yak-130은 러시아가 L-39 알바트로스 훈련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한 쌍발 엔진 탑재 차세대 고등훈련기다.
야간 작전 능력이 탁월해 ‘밤의 사냥꾼’으로 불리는 러시아 공격 헬리콥터 Mi-28. [러시아 국방부]
주목할 점은 이란과 러시아의 무기 거래는 이란이 러시아에 자폭 드론과 단거리탄도미사일 등을 제공한 데 따른 ‘대가’라는 것이다. 이란은 러시아에 샤헤드-136이라는 자폭 드론을 최소 1000대 공급한 것으로 추정된다. 샤헤드-136은 길이 3.5m, 날개폭 2.5m, 이륙중량 200㎏에 오토바이용 엔진을 사용해 가격이 저렴하다. 동체가 가볍고 연료 탑재량이 많아 2000㎞까지 비행할 수 있다.
러시아는 이란의 기술 제공으로 샤헤드-136을 ‘게란(Geran)-2’라는 이름으로 국산화해 제조 공장 2곳을 건설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란으로부터 사거리 300∼700㎞인 ‘파테-110’과 ‘졸파가르’ 단거리탄도미사일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투기 주문량 24대 추정
이란은 군사강국이지만 공군력은 그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동 지역의 경쟁국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물론, 적대국 이스라엘에 비해서도 훨씬 열세이기 때문이다. 이란은 그동안 공군력을 강화하고자 총력을 기울여왔지만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제재 조치로 번번이 실패했다. 이란 공군은 1979년 이슬람혁명 전 미국으로부터 구입한 전투기를 사용했고, 주력기는 F-14다. 이란은 1990년대 러시아로부터 MiG-29 전투기를 도입한 적은 있지만 미국 등 서방의 강력한 제재 조치로 더는 전투기를 수입하지 못했다. 이란은 2018년 자체 제작한 ‘코우사르’라는 전투기를 선보였는데,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이 1960년대 개발해 동맹국에 공급한 F-5 전투기를 베낀 것으로 보고 있다.이란이 러시아로부터 Su-35 전투기를 도입하면 공군 전력이 상당히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이란이 러시아제 전투기와 헬기, 훈련기를 도입할 경우 사우디와 이스라엘에 비해 열세인 공군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이 러시아로부터 Su-35 전투기를 몇 대 도입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가 이집트에 수출하기로 했던 24대쯤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는 지난해 Su-35 24대를 러시아에 주문했다가 취소한 바 있다.
미국 안보 전문매체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Su-35 전투기는 독보적인 기동성과 뛰어난 폭탄 탑재 물량 등을 갖췄다”고 높이 평가했다. 물론 Su-35는 스텔스 기능이 없어 미국의 5세대 다목적 스텔스 전투기 F-35에 비해 성능이 다소 떨어진다. 그럼에도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Su-35 24대를 도입해 남중국해 및 대만 순찰 등에 운용하고 있다. Su-35 역시 공중전을 비롯해 폭격 등 다목적 기능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란군은 러시아로부터 도입하는 Su-35 일부를 이스파한의 공군 제8전술기지에 배치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파한에는 우라늄염이라는 우라늄 원석 농축액을 6불화우라늄 가스로 만드는 우라늄 재처리 시설이 있고, 인근 나탄즈에는 핵폭탄 제조용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 수 있는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
이란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을 상당히 앞서고 있고, 이미 우크라이나와 전쟁에서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사용 중이다. 킨잘 미사일의 최대 속도는 마하 12(약 1만4600㎞/h)이며 사거리는 2000㎞다. 이란은 11월 21일 자체 개발한 극초음속 미사일 ‘파타흐-1호’의 시험발사에 성공했다며 이 미사일이 목표를 타격하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파타흐-1호는 마하 13∼15 속도로 날아가 1400㎞ 거리에 있는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 고체연료를 사용하며, 대기권 밖에서도 궤도 변경이 가능하고, 스텔스 기능도 있다.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이란 혁명수비대 우주군 사령관은 “이 미사일은 현존하는 어떠한 방공 시스템으로도 요격할 수 없다”며 “이런 기술을 가진 국가는 이란을 포함해 전 세계에 4개국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이 미사일의 사거리를 2000㎞로 늘릴 계획이다. 이란은 앞서 6월 6일에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이란은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장면을 공개하지 않았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극초음속 미사일과 위성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이란에 제공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러시아는 이란의 미사일 개발과 위성 정보 수집 능력 등을 지원한다”며 “러시아와 이란의 군사협력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과 러시아의 노골적인 군사협력은 미국 등 서방 국가에도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란과 러시아의 드라마틱한 협력 관계가 서방 진영에 새로운 위협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이란은 앞으로 군사협력을 비롯해 경제 등 각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나갈 전망이다. 실제로 양국은 최근 남북 국제교통회랑의 일부인 철도망 건설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16억 달러(약 2조1000억 원) 규모인 이 사업은 이란 카스피해 연안 도시 라슈트에서 아제르바이잔 국경 도시 아스타라까지 162㎞ 구간을 철도로 연결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 구간이 완성되면 러시아 발트해 항구와 이란 남부 인도양이 연결돼 중요한 무역로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양국의 전방위적인 협력이 중동 지역은 물론, 국제질서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란 다음은 북한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더 나아가 러시아가 공군력 강화를 원하는 북한에도 전투기를 지원할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을 공급한 대가로 Su-35를 도입했다. 북한 역시 러시아에 포탄 등 각종 무기를 대량 공급한 만큼, 그 대가로 Su-35 전투기를 지원받을 수 있다. 미국 백악관은 북한이 컨테이너 1000개 분량의 포탄 등을 러시아에 제공한 사실을 위성사진과 함께 공개하고, 양국의 불법적 군사협력을 비판한 바 있다.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러시아에서 비행 조종과 부품 정비 위탁교육을 받을 대상자를 선발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전투기 또는 관련 부품을 북한에 제공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북한은 1988년 옛 소련과 합작으로 평북 구성시에 MiG-29 조립 생산 공장을 건설해. 부품을 가져다 조립하는 방식으로 전투기를 만들었다. 1993년 4월 김일성 주석 생일을 기념해 첫 2대를 만들었고, 이어 총 20대를 조립 생산했다. 이 가운데 몇 대가 추락해 현재 10여 대가 운용되고 있다. 하지만 소련 붕괴 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면서 MiG-29 부품 조달에 애를 먹고 있으며, 부품 돌려막기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에 MiG-29 부품을 공급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