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도박중독 청소년의 글이다. 자신을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밝힌 이 학생은 “사설도박에 빠져서 방금도 5만 원을 잃었다.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는 이처럼 도박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의 목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초등 때부터 ‘돈내기 게임’ 노출, 도박 저연령화
동아일보가 주최하고 서울시교육청, 서울올림픽기념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 주관한 ‘2023 사행산업 건전화·중독치유 포럼’이 11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왼쪽에서 네 번째부터 오균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위원장,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홍복 KSPO 경륜경정총괄본부장 등 주요 참석자들. [박해윤 기자]
이처럼 갈수록 심각해지는 청소년 도박중독 문제 해법을 마련하고자 각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동아일보가 주최하고 서울시교육청, 국민체육진흥공단(KSPO)이 주관한 ‘2023 사행산업 건전화·중독치유 포럼’ 현장에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 서울경찰청, 예치원, 김윤덕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더불어민주당) 등이 후원한 이번 포럼은 11월 30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청소년 도박중독 예방과 사행산업 건전화 방안 모색’을 주제로 한 이 행사에는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홍복 KSPO 경륜경정총괄본부장, 오균 사감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학생 도박은 자금 마련을 위한 2차 범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며 “실제로 학교 현장에선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학교 폭력이 발생하기도 하는 만큼 우리 사회가 해결 방안을 함께 만들어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023 사행산업 건전화·중독치유 포럼’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이어진 전문가 토론은 2개 세션으로 구분해 진행됐다. 1부에서 ‘청소년 도박 예방교육’에 대해 집중 토론하고, 2부에서는 ‘국내 사행산업 운영 실태와 건전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보영 예치원 중앙센터장과 권선중 한국침례신학대 교수가 1부 발표를, 전영민 마음고요심리상담센터 원장(전 강원랜드 중독관리센터장)과 윤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형사정책연구본부장이 2부 발표를 각각 맡았다. 1부 토론자로는 유승희 국민대 교수, 하동진 서울경찰청 여성안전과 아동청소년계장, 조영석 서울 미성중학교 교사가 나섰다. 2부 토론에는 서원석 경희대 교수, 서용석 사감위 전문위원, 정철락 KSPO 경륜경정사업본부장이 참여했다. 포럼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또래 집단 통해 ‘놀이’처럼 퍼지는 도박
‘2023 사행산업 건전화·중독치유 포럼’ 1부 발표자와 토론자들이 청소년 도박중독 예방 교육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보영 한국도박문제예방치유원 중앙센터장, 권선중 한국침례신학대 교수, 유승희 국민대 교수, 하동진 서울경찰청 아동청소년 계장, 조영석 서울 미성중 교사. [박해윤 기자]
정 센터장에 따르면 어릴수록 방법이 단순하고 결과가 빨리 나오며, 결과적으로 중독성이 높은 도박을 선호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예치원 이용 청소년 대상 조사 결과 고등학생이 주로 하는 도박은 ‘불법온라인카지노’(39.8%), ‘불법스포츠도박’(32.7%)으로 나타났다. 중학생도 선호도 순위는 같았다. 문제는 ‘불법온라인카지노’를 즐기는 비율이 69.9%로 ‘불법스포츠도박’(17.2%) 등 다른 유형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정 센터장은 “불법온라인카지노는 도박 가운데서도 중독 위험이 특히 크다”며 “도박 접촉 연령과 중독 연령이 모두 낮아지는 추세인 만큼 초등학생 시기부터 예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권선중 한국침례신학대 교수는 “청소년 도박을 일시적, 국내적 문제로 보면 안 된다”는 당부로 주제발표를 시작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북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 해외 각지에서 진행된 연구를 보면 모두 청소년의 도박문제 유병률이 성인보다 높게 나타난다”며 “인터넷을 통해 국제적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고, 관련 시장이 크게 확대되고 있으며 게임 등과 융합하는 현상까지 나타나는 만큼 청소년 도박 중독 문제는 날로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청소년은 발달 특성상 성인에 비해 심리적·신체적으로 불안정해 도박에 노출될 경우 심각한 중독단계로 빠르게 진행할 수 있다”며 “도박 예방교육을 고도화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중장기적인 노력이 필수”라고 밝혔다.
권 교수는 최근 미디어에서 청소년기의 주식 투자 성공 사례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청소년 상당수가 ‘투자’를 위해 돈을 빌리고, ‘잭팟’을 꿈꾸면서 단기 수익률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경제관련 교과목 안에 사행심 관리 전략 등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행법상 청소년의 도박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복권 등 합법 사행사업도 하면 안 된다. 만 14세를 넘은 청소년의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 이 때문에 포럼 현장에서는 “경찰이 좀 더 적극적으로 단속하면 청소년 도박 확산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하동진 서울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은 “서울경찰청은 청소년 도박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10월 ‘긴급 스쿨벨’을 발령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학교전담경찰관(SPO)을 통해 단속과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상황”이라며 “앞으로도 예치원과 협업해 청소년들이 도박에 중독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불법 사행산업 근절, 건전베팅 가이드 정립 필요
사행산업 운영 실태와 건전화 방안에 대해 논의한 ‘2023 사행산업 건전화·중독치유 포럼’ 2부 현장 모습. 왼쪽부터 서용석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전문위원, 윤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본부장, 전영민 마음고요심리상담센터 원장, 서원석 경희대 교수, 정철락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사업본부장. [박해윤 기자]
윤지영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형사정책연구본부장은 현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오픈채팅방 등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불법 사행산업이 확산하고, 불법 홀덤펍과 사행성 PC방 등도 성행하는 현상을 지적하며 “사감위뿐 아니라 법무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와 경찰청,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련 기관이 모두 힘을 합쳐 총력 대응해야 할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정철락 KSPO 경륜경정사업본부장은 “KSPO의 경우 게임에 소득의 3.4% 이상을 지불하면 안 된다고 안내하는 ‘건전베팅가이드’를 제정해 이용하고 있다”며 “합법 사행산업을 여가로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토론 과정에서는 “불법 사행산업의 성행을 막으려면 단속과 더불어 합법 사행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내 불법도박 규모는 지난해 기준 102조 7000억 원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 매출(98조 4600억원)보다도 크다. 합법 사행산업(약 23조 원)의 4.4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2019년 81조5000억 원 수준이던 시장 규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유행 시기를 거치며 크게 커졌다고 지적한다. 합법 사행산업장이 운영을 중단한 사이 불법 도박이 기승을 부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들은 더욱 쉽게 도박에 노출되고 있다. 오균 사감위원장은 “불법도박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청소년의 도박 또한 증가한다”며 “청소년기는 진로 탐색, 가치관 형성 등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기인만큼, 우리 청소년들이 이때 도박에 빠져 인생 전반에 큰 피해를 입지 않도록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