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극초음속 비행체 싱쿵-2호.(왼쪽) 중국 극초음속 비행체 DF-ZF(WU-14). [參考消息]
이 UFO의 비밀은 3개월여 만에 풀렸다. 중국항천과기집단공사 산하 공기동력기술연구원(CAAA)이 8월 3일 극초음속 비행체 싱쿵(星空)-2호의 첫 시험발사가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 싱쿵-2호는 산시성 타이위안 위성발사장에서 발사돼 고도 3만m에서 400초간 마하 5.5 속도로 날다 마하 6을 기록했다. 싱쿵-2호는 발사되고 10분 만에 본체가 회전 비행한 뒤 덮개와 추진기를 분리했다. 이후 비행체 단독 비행을 시작해 탄도 회전 등 동작을 시험하고 예정된 낙하지점에 진입했다.
공기 충격파를 이용하는 비행체
특히 싱쿵-2호는 날개가 아니라 비행 중 발생하는 충격파를 양력(揚力)으로 사용하는 ‘웨이브라이더(waverider)’라는 첨단기술을 선보였다. 중국 인민해방군 로켓군 출신의 탄도미사일 전문가 쑹중핑은 “웨이브라이더는 대기를 날면서 고속 활공을 위해 극초음속 비행에 의한 공기 충격파를 이용하는 비행체”라며 “시험발사 성공 발표를 볼 때 이미 극초음속 비행체의 무기화를 실현한 것으로 예측된다”고 평가했다. 극초음속 비행체(hypersonic vehicle)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발사된 후 우주 공간에서 분리되지만, 초고속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활공하기 때문에 현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로는 요격이 불가능하다.미국은 중국의 극초음속 비행체 시험발사 성공 소식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로버트 워크 전 미국 국방차관은 “중국이 추월하는 지금은 미국에겐 ‘스푸트니크 모멘트(Sputnik Moment)’라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푸트니크 모멘트’란 1957년 옛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미국이 큰 충격을 받은 데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 존 하이튼 미국 전략사령부 사령관은 8월 7일 앨라배마주 헌츠빌에서 열린 우주·미사일 방어 심포지엄에서 “미국이 현재 방어할 수 없는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 매진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의 친구가 될 수 없다”며 “우리는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군부에서 핵무기, 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담당하는 책임자가 중국과 러시아의 극초음속 무기를 방어할 수 없음을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마이클 그리핀 미국 국방차관도 3월 “중국은 지난 10년간 미국보다 20배나 많은 극초음속 무기를 시험했다”며 “중국이 극초음속 무기체계를 실전배치하면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은 큰 위협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리 해리스 전 미국 태평양군사령부 사령관(현 주한대사)도 2월 의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극초음속 무기 개발에서 우리를 추월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극초음속 비행체는 마하 5~10 속도로 지구 전역을 30분 안에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로, 최첨단 차세대 무기다. 속도가 너무 빨라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MD체계를 뚫고 목표를 타격할 수 있는 ‘꿈의 신무기’다.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속도다. 최소 마하 5는 돼야 한다. 시속 6120km에 해당하는 마하 5는 서울과 부산을 4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속도다. 비행체가 공기 중에서 비행할 때 마하 1을 넘으면 초음속, 마하 5를 넘으면 극초음속이라고 규정한다. 극초음속 무기와 관련해 미국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속도가 엄청나 적이 발사한 사실을 알아도 대응할 시간이 부족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MD체계가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이다. 극초음속 무기는 탄도미사일보다 낮거나 높은 고도로 날아간다. 원격 조종으로 수시로 궤도를 바꿀 수도 있다. 미국 랜드연구소는 예측 불허의 궤도로 날아오기 때문에 타격되기 전까지는 진짜 타깃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고 분석했다.
원래 미국은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의 선두주자였다. 미국은 2013년 5월 태평양 상공에서 B-52 전략폭격기 날개 하단부에 탑재한 X-51A라는 극초음속 비행체를 웨이브라이더 기술을 적용해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X-51A는 고도 1만8000m에서 마하 5.1 속도로 날아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인천까지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는 웨이브라이더 기술을 항공기가 아니라 미사일에 접목하는 연구에 집중해왔다.
美, 내년 관련 예산 2배 이상 늘려
러시아 Mig-31 전투기에 장착된 극초음속 탄도미사일 킨잘, 미국 극초음속 비행체 X-51A, 미국 록히드마틴이 개발 중인 극초음속 무기의 개념도. (왼쪽부터) [러시아 국방부, 미 공군, 록히드마틴]
중국도 2014년부터 2017년까지 7차례에 걸쳐 극초음속 비행체 DF-ZF(미국 국방부는 WU-14로 명명)의 시험비행을 실시했고, 2020년 본격 생산할 계획이다. 중국은 또 ‘항모 킬러’로 불리는 DF-17 극초음속 미사일도 개발 중이다. 중국 극초음속 비행체들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미국 정부는 대규모 예산을 편성하는 등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2019 회계연도 국방예산에서 극초음속 무기 연구에 2018 회계연도보다 136%나 늘어난 2억5700만 달러(약 2875억5730만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 공군은 8월 세계 최대 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과 4억8000만 달러 규모의 극초음속 공중발사무기(ARRW)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 공군은 4월에도 록히드마틴과 9억2800만 달러 규모의 극초음속 재래식 타격무기(HCSW) 개발 계약을 맺었다. 록히드마틴은 두 건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을 2021년 11월까지 끝낼 예정이다.
미국 공군이 4개월 만에 두 건의 극초음속 무기 개발 사업을 발주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극초음속 무기 실전배치가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새뮤얼 그리브스 미국 미사일방어국(MDA) 국장은 “극초음속 무기가 적들의 무기고에 추가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지적했다.
아무튼 미·중·러 3국이 극초음속 비행체 개발 경쟁을 벌이면서 미래 전략무기 군비 경쟁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