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전 세계 증시가 급락하며 1987년 ‘검은 월요일’을 재현했다. [GETTYIMAGES]
엔 캐리 트레이드가 핵심 원인?
전 세계 증시가 급작스러운 충격을 받은 데는 여러 요소가 중첩해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무엇이 주된 원인인지에 대한 의견과 해석이 분분하다. 그중 가장 많은 지목을 받은 원인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의 고금리·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기법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일본 저금리 통화정책을 활용한 투자법으로, 미국 빅테크 주식 등 유력 투자처에 그 물량이 대거 유입돼 있다. 정확한 액수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독일 도이체방크 추산에 따르면 전체 규모는 약 20조 달러(2경7500조 원)에 육박한다. 그러다 최근 일본은행(BOJ)이 2008년 12월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인 0.25%로 기준금리를 인상(기존 0.1%)했고,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이뤄지면서 각국 증시에 풀려 있던 엔화 기반 유동성이 급격히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년간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 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전략이 해제되면서 글로벌 자산시장에 파장이 일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핵심은 “왜 이토록 빠르게 엔화를 거둬들이려 하는지”다. 기준금리 0.25%는 일본 기준으로는 1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2022년 이래 고금리 기조를 이어온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는 여전히 낮은 축에 속한다. 엔화를 빌려 투자하는 게 더는 좋은 선택지가 아니게 된 점이 이번 사태의 ‘진짜’ 원인인 셈이다.
진원지는 돌고 돌아 미국이다. 8월 2일(현지 시간) 7월 실업률 발표 이후 미국에서는 갑작스럽게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7월 실업률이 4.3%를 기록하며 3개월 평균치가 지난 1년 중 최저치보다 0.53%p 높아졌고, 그것이 실업률과 경기침체의 상관관계를 정의한 ‘샴의 법칙(Sham Rule)’(실업률 3개월 이동평균-직전 12개월 내 3개월 이동평균 최저치 > 0.5%p 기록 시 경기침체)을 건드렸다. 샴의 법칙은 1950년 이후 발생한 경기침체 11번 중 10번을 예측했기에 금리인하기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고조했다. 위험자산 선호가 크게 감소하며 전 세계 증시에서 투매 움직임이 나타났다. 즉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미국발(發) 증시 불안에 따른 대규모 매도의 부분집합이자 연쇄 반응인 것이다.
실적 없는 AI 기술주부터 때렸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증시에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영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엔화 자금조달 비용은 싼 편이기에 그것을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 “미국의 부진한 실업률, 제조업지수 탓에 불거진 경기침체 우려가 ‘패닉셀’ 추동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매도세는 ‘인공지능(AI) 거품론’과 만나 파급력을 키웠다. 한국, 미국, 대만 등 증시에서 기술주 비중이 큰 나라의 주가지수가 유독 휘청거렸다는 공통점도 있다. 석 교수는 “경기침체 공포감이 가장 먼저 때린 것은 빅테크주, 반도체주였다”며 “그간 주가 상승폭이 엄청났던 데 비해 2분기 저조한 수익성 지표를 나타내 시장에 불신과 회의감이 커진 상황에서 경기침체 우려까지 나오자 먼저 타격을 받는 약한 고리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 예가 30%대 낙폭을 기록한 인텔이다. 인텔은 지난해 AI 열풍을 타고 주가가 1년간 90% 이상 상승했다. 그러다 올해 AI 기술주에 대한 날카로운 검증이 이어지자 하락세를 나타냈고, 최근 2분기 실적 쇼크와 경기침체 우려가 겹치며 주가가 붕괴했다. 7월 실업률이 발표된 8월 2일 26.06%, 검은 월요일이던 8월 5일 6.38% 급락하며 주가는 12년 전인 2012년 말 수준으로 돌아갔다. 인텔은 미국의 ‘자국 산업 육성’ 수혜를 받는다는 장점 외에는 실적,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반도체주에 뒤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인텔처럼 AI 붐에 무임승차하던 주식일수록 이번 폭락장에서 더 센 회초리를 맞았다는 뜻이다.
한 번 고개를 든 경기침체 및 AI 기술주에 대한 우려는 월가의 진화 작업에도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경기침체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여럿 나오고, 샴의 법칙을 고안한 이코노미스트조차 “아직 경기침체로 보기 어려우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긴급 금리인하도 불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증시는 여전히 약세다. S&P500 지수는 8월 6일 1.04% 상승하며 전날 하락 분을 일부 만회했다가 7일 0.77% 다시 내렸다. 7일 일본은행이 9월 금리인상 철회를 시사한 영향 또한 희석됐다. 신이치 우치다 일본은행 부총재는 이날 “국내외 금융자본시장 상황이 극도로 불안정해 당분간 현 수준의 통화 완화 기조를 안정적으로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내년까지 하락” vs “다시 뛸 것”
이번 폭락장이 언제쯤 바닥을 다지고 다시 제 궤도에 올라설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과거 사례에서 폭락 직전 수준을 회복하기까지 걸린 기간이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폭락장과 가장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1987년 검은 월요일의 경우 하루 만에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20% 이상 내린 뒤 2~3개월간 약세장이 이어졌다. 전고점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2년가량 소요됐다.
전문가들은 일정 기간 증시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데 의견을 함께하면서도 장기적으로 “증시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쪽과 “기술주 실적 발표, 유동성 공급으로 반등이 나올 것”이라는 쪽으로 전망이 나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경기침체에 진입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호황을 누리던 경기가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시그널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면서 “그동안 쌓인 장기 고금리 영향으로 경기지표가 지속적으로 둔화돼 내년까지는 증시가 우하향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장우석 유에스스탁 부사장은 “증시에 공포를 조장하는 요인은 많지만 구제할 요인이 부족해 이번 폭락이 나타난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대 중후반을 기록하고 있고 기업들 실적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태다. 엔비디아가 이달 2분기 실적으로 분위기를 반전하고 (연준이) 9월 금리를 0.25%p 내리면 ‘옥석’으로 판명 난 기술주 중심으로 증시가 다시 한 번 힘을 받을 것이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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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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