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전경. [뉴시스]
정부의 이번 조치는 행복도시에 국회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집무실 설치가 확정된 이상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2004년 10월 당시 노무현 정부가 행정수도 이전을 앞세우며 법 제정을 추진했던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전례가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토연구원은 5월 31일 세종 국토연구원에서 열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기본·개발 계획 변경 공청회’에서 이런 내용(변경안)을 발표했다. 이는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의 용역 의뢰로 진행된 연구 결과다. 행복청은 변경안에 대해 6월 중 시민과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의 의견 청취 및 협의 등을 거쳐 9~10월 행복청 심의위원회 심의를 받은 뒤 10월 중 최종안을 확정할 방침이다.
17년 만에 실질적 행정수도로
정부가 행복도시 건설 방향을 정하는 최상위 계획인 ‘기본계획’을 바꾸기로 한 것은 2006년 7월 처음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수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내외 여건이 크게 달라졌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17년이 지나는 동안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친환경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 요구가 커졌고, 스마트도시나 탄소중립 실현이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는 것이다.여기에 2021년 10월 국회법이 개정돼 국회세종의사당이 설립될 근거가 마련된 데다, 지난해 6월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약칭 ‘행복도시법’)이 개정되면서 대통령 제2집무실을 설치하기로 한 것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최임락 행복청 차장은 공청회 개회사를 통해 “국회세종의사당, 대통령 제2집무실 등 국가 중추 시설을 계획적으로 설치하기 위해 행복도시 기본계획과 개발계획의 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행복도시의 문제점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현실적 이유도 있다. 최종 목표 시점인 2030년을 앞두고 대중교통 미비에 대한 들끓는 민원과 심각한 수준인 행복도시 내 상가 공실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이런 요구가 모두 반영된 변경안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행정수도로 바꾸겠다고 명시한 점이다. 연구용역을 주도한 국토연구원의 박정은 도시재생연구센터장은 “전체 기본계획의 목표 시점이 얼마 남지 않은 점을 감안해 도시 건설의 정책 목표나 이념은 그대로 유지했다”며 “다만 변화된 여건 등을 반영해 기본 방향을 수정하면서 행정중심복합도시를 ‘실질적 행정수도’로 바꾸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임락 행복청 차장도 “(변경안은) 현 행복도시가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넘어 실질적인 행정수도로 나아가기 위한 계획적인 기틀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 결정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박 센터장도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도 제4차 국토종합계획 등에서 이미 행복도시를 실질적인 행정수도로 인정하고 있어 이를 반영한 것”이라면서도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어 ‘실질적’이라는 표현을 앞세웠다”고 강조했다.
연구용역을 맡은 국토연구원은 변경안 마련을 위해 그동안 추진돼온 사업들에 대한 평가와 함께 최근 3년간 언론 보도나 민원게시판 등에서 언급된 세종시 관련 주요 키워드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도시 건설 이념을 ‘공생의 도시’에서 ‘세계로 도약하는 미래 도시’로 바꿨다.
중심부에 입법·행정·문화 집적 공간 배치
도시 건설의 4가지 기본 방향도 시대 환경에 맞게 수정했다. 우선 첫 번째로 복합형 행정·자족 도시는 ‘국토의 균형 발전을 선도하는 실질적인 행정수도’로 교체하기로 했다. 국가 균형 발전의 구심점으로서 광역도시권의 상생 발전과 질 좋은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다만 두 번째 ‘살기 좋은 인간 중심 도시’는 그대로 유지했다. 세 번째인 ‘쾌적한 친환경 도시’는 ‘쾌적한 탄소중립 도시’로 바꿨다. 현행 기본 방향이 에너지 저소비형 도시 조성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변경안은 기후위기에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했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인당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 등을 제시할 예정이다. 네 번째 ‘품격 높은 문화·정보 도시’는 ‘품격 높은 문화·스마트 도시’로 조정했다. 미래지향적인 첨단 정보·통신계획 도시(유비쿼터스)를 넘어 스마트시티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도시 구조 구상도 일부 바뀐다. 현재는 행복도시 주요 기관을 원형으로 배치한 환상형 구조다. 도시 기능 분산을 통해 민주적이고 균형 있는 도시를 형성하고, 균형 발전 등 분권화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디자인이다.변경안은 환상형 도시 구조를 유지하되, 중심부에 실질적인 행정수도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상징 공간이자 국가 운영을 책임질 입법·행정·문화 관련 시설이 밀집한 ‘열린공간’을 배치했다. 열린공간은 환상형 대중교통에 자전거도로 등으로 연결된다.
열린공간을 포함한 국가 중추 기능 입지 지역은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한다. 대상 지역은 중앙행정기관과 국립수목원 등 행복도시 내 국가 주요 시설이 입지하는 지역과 국책사업이 추진되는 곳이다. 행복도시의 기본계획과 개발계획을 일관성 있게 구현하고, 도시 완성 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가 이뤄지게 된다.
이런 기본 방향과 도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부문별 계획도 크게 바뀐다. 우선 주택용지가 늘어난다. 현재 개발계획상 주택용지는 전체 행복도시 예정 지역 면적의 17.9%로 책정돼 있다. 이를 20% 내외로 확대한다. 또 저밀-중저밀-중밀-고밀 등 4단계로 돼 있는 주거지 밀도 구분에 ‘중고밀 주거지’를 추가한다. 주거 쾌적성 확보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인구 50만 명을 수용하는 주택 20만 채 건립 목표는 유지한다. 이번 조치는 국회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제2집무실 등이 들어서면서 부족해진 택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주택용지 늘고, 상업·업무용지 줄어
교통계획도 달라진다. 현재는 국가기간교통망 수정계획(2000~2019)에 따라 주요 도시에서 2시간 내외로 접근 가능한 고속국도 위주의 광역교통망과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교통망, 환상형 대중교통 중심 도로를 주요 수단으로 하는 대중교통 체계를 갖추게 돼 있다.변경안은 광역교통망에 고속국도 이외에 제2차 국가기간교통망 계획(2021~2040)과 4차 국가철도망계획(2021~2030) 등을 반영해 고속철도 등과 연계된 교통계획을 제시했다. 또 도시교통과 대중교통망에 도심항공교통, 개인형 이동교통수단 등 미래형 교통시설을 연계한 도로 설계 및 운영 시스템을 설치한다.
높은 상가 공실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가·업무용지 비율을 줄였다. 현재 기본계획에는 상업·업무용지 비율이 전체 면적의 3%로 책정돼 있는데, 이를 2%로 낮춘다. 또 상업용지와 업무용지의 활용도 기존 틀에서 벗어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즉 필요에 따라 상업용지를 업무용지로 전용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문화 부문에도 변화가 있다. 우선 현행 기본계획 및 개발계획에선 종합대(대학원 포함) 2~3개를 유치하는 것으로 돼 있다. 변경안에서는 행복도시의 지속가능성과 성장동력을 위해 산업계·학계·연구계·관계가 한데 어우러진 클러스터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기로 하고, ‘공동캠퍼스’와 ‘복합캠퍼스’를 설치하기로 했다.
공동캠퍼스는 60만㎡ 규모로 조성되는 공간으로, 다수의 대학(대학원)과 연구기관이 교육·연구·자원시설 등을 공동으로 사용해 기관 간 융복합 교육 및 연구가 가능하다. 85만㎡ 규모로 조성되는 복합캠퍼스는 교육·산업·연구·주거 기능이 밀집된 융복합 캠퍼스 타운이다.
행복도시에서 도시의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는 지역에 배치하기로 했던 박물관과 미술관은 한곳에 밀집한 형태인 ‘국립박물관단지’(일명 ‘뮤지엄몰’)로 조성된다. 이곳에는 어린이박물관, 도시건축박물관, 디지털 문화유산센터, 국가기록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등 6곳이 들어선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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