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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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법인들, “나 떨고 있니”

대우 계열사 소액주주들 “부실감사 책임져라” 손해배상 소송 계획

  • 입력2005-08-08 10: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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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계법인들, “나 떨고 있니”
    흑자기업 대우중공업은 98년에 자산이 부채보다 4조원 이상 많고 감사의견도 ‘적정’이었는데, 1년 만에 자본잠식에다 ‘의견 거절’이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으며, …무얼 믿고 투자해야 하는지 앞이 캄캄합니다.”

    대우중공업의 한 소액주주가 대우 계열사 소액주주 전용 사이트(www.antjuju.com)에 올린 글이다. 회계법인들이 회계감사를 제대로만 했다면 대우중공업에 투자해 낭패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노가 느껴진다. 이 투자자는 ‘다행히’ 금융감독원의 특별감리 결과 대우중공업, ㈜대우, 대우자동차 등 워크아웃에 들어간 대우 계열 12개사의 외부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들의 부실 감사 사실이 밝혀지면 이들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액주주 모임 대표들은 이미 올 2월 회계법인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문제에 대해 검토를 마치고 금감원 감리 결과가 발표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소액주주 모임 공동대표 신중석씨는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상의한 결과 소액주주들이 소송을 하면 100% 승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금감원 특별감리 결과가 발표되는 대로 소송에 착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 최근에는 “분식 규모가 큰 관련 회계법인에 대해 법인폐쇄 등의 조치를 내릴 것”이라는 금융감독원의 강경 방침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회계법인과 공인회계사들로서는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아자동차 부실감사에 대한 징계를 받고 결국은 해산된 청운회계법인의 예에서 보듯, 부실감사 사실이 밝혀지면 회계법인의 생명은 끝이고 공인회계사는 소송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특히 공인회계사들은 작년 가을 기아자동차 우리사주 조합원 7명이 청운회계법인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회계법인만을 상대해왔던 전례에서 벗어나 회계법인뿐 아니라 담당 회계사들까지 소송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 이 소송을 대리하는 고태관 변호사는 “부실감사 재발 방지를 위해 회계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의미에서 회계사들도 소송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정으로 인해 일부 회계사들은 소송에 대비해 이미 재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이전해놓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또 해외채권단이 소송에 가세할 경우 국내 회계법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공인회계사회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공인회계사회 유태우 기획부장은 “회계법인에 대한 중징계 방침이 흘러나오고 있어 걱정스럽다”며 “회계사들이 독립적인 지위에서 회계감사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재정경제부에 건의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회계사 윤리규정과 연수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특별 조사-감리 결과 대우 12개 계열사의 순자산 부족분은 42조9000억원. 이중 무려 23조원 안팎이 분식결산에 의해 부실 처리된 것으로 밝혀졌다. 가령 98년 말 ㈜대우가 가지고 있던 해외법인 지분을 대우자동차에 현물출자, 대우차 자본금을 98년 말 3546억7000만원에서 99년 6월 말 현재 4조5595억4800만원으로 증액한 과정도 금감원 감리 결과 완전한 숫자놀음이었음이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 감리대상이 된 대우 계열사의 97, 98 회계연도 회계감사를 맡았던 법인들은 모두 여섯 곳.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삼일을 비롯해 안진(2위) 산동(3위) 안건(4위) 영화회계법인(5위)과 청운회계법인 등이다(표 참조). 국내 ‘빅5’로 통하는 회계법인 모두 외부감사를 맡은 셈이어서 금감원 징계가 국내 회계법인에 미칠 파장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주시대상이 되는 곳은 말할 것도 없이 대우그룹의 주 감사인이던 산동회계법인. 회계분식 규모가 가장 큰 것으로 알려진 ㈜대우를 맡았기 때문이다. 반면 대우의 또 다른 주력 계열사인 대우자동차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건회계법인의 경우 대우차가 비상장이던 데다 해외채무가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안심하는 분위기. 또 삼일 역시 97년 쌍용자동차 감사시 손실을 3133억원이나 계상하게 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대우전자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은 98 회계연도 감사에 ‘한정’ 의견을 냈다는 점에서 크게 안도하고 있다. 안진회계법인 김주선 상무는 “당시 대우그룹의 위상으로 봐서 주력 계열사에 ‘적정’ 의견 외에는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 의견을 낸 것은 주주나 사회에 경고를 주자는 의도가 컸다”고 강조했다.

    일부 뜻있는 회계사들은 최근 사태에 대해 언젠가 한번은 꼭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말한다. 경력 10년차의 한 회계사는 “그동안 국내 회계사들도 ‘재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 신화를 믿고 재벌 계열사에 대해서는 분식회계를 알고도 눈감아온 게 사실이었다”며 “현재의 아픔을 계기로 과거와 철저히 단절해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핑계 없는 무덤은 없는 법. 대다수 공인회계사들은 금감원의 방침에 대해 ‘현실론’을 펴며 이의를 제기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 회계법인의 고위 임원은 “기업들은 회계법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회계법인은 기업과의 관계에서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감독 당국이 중징계 운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회계감사의 현실적 한계를 지적하는 회계사들도 있다. 산동회계법인 김연규 대표는 “금감원 대우 감리반이 분식회계를 밝혀낸 것은 금감원이 칼자루를 쥐고 있어 임직원들의 자백을 얻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회사의 최고경영진서부터 말단 사원까지 공모해 장부를 조작한 상황에 회계법인이 이를 밝혀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대우자동차 외부감사를 맡았던 안건회계법인 김윤회 전무는 한걸음 더 나아가 대우 임원들을 사기혐의로 고소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전무는 “금감원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징계를 내리거나 채권단이 회계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내면 대우차 임원들이 결과적으로 회계법인을 속인 셈이기 때문에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감독 당국도 대우 계열사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하는 회계사들도 있다. 95년부터 3년간 당시 증권감독원이 대우전자, ㈜대우, 대우통신 등에 대한 감리를 차례로 실시한 적이 있기 때문. 한 회계사는 “그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약자인 회계법인에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감원 주변에서 회계사들의 이런 반발과 지적 때문에 금감원의 대우 감리 결과 발표가 8월 말로 연기됐다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해외에 머물며 귀국을 거부하고 있는 김우중 전 회장으로부터 간접적인 진술서조차 받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부 전직 고위 임원이 “김우중 전 회장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며 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데다 회계사들도 금감원의 지적사항을 수긍하지 않고 있어 발표를 연기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대우감리반 안희성 팀장은 “감리반원 누구나 하루빨리 대우 감리업무에서 해방되고 싶어한다”며 “발표 연기는 조사가 미진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안팀장은 또 증권감독원 시절 대우 계열사 감리가 결과적으로 ‘엉터리’로 이뤄졌다는 지적에 대해 “윤리적인 책임은 인정한다”면서도 “전반적인 감독 책임과 감사인의 책임을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분식 자체가 허위인데 이를 발견하지 못하면 마땅히 책임져야 하며, 그걸 못하겠으면 감사인을 안 맡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에게 ‘잔인한 계절’이 다가오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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