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국토에 호수와 산림이 많고, 온천이 많아 사우나로 유명한 나라 핀란드. 산타클로스와 동화의 나라이자 백야의 오로라로도 유명하다. 우리나라처럼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국토에 수도인 헬싱키의 인구는 50만명이 채 못 된다.
핀란드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철이면 영하 40도나 되는 추위 때문에 술도 독한 것을 많이 먹는데, 특히 보드카가 유명하다. 핀란드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국가로 같은 북유럽 국가이면서도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
수도 헬싱키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이전 수도였던 투르쿠가 스웨덴 부근에 있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181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가까운 이곳으로 천도한 이래 수도와 무역항으로 번창해 왔다. 수많은 섬을 지나 배로 헬싱키 항구에 입안하면 시청과 대성당이 그 위용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도시에 일단 내려서면 지금까지 봐왔던 유럽의 풍경과는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남유럽에서 보이는 흰 벽이나 나란히 서 있는 벽돌집, 독일의 뾰족탑과 같은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대신 제정 러시아 시대의 네오-클래식한 건축물, 스웨덴 지배 시대의 잔유물들, 그리고 수준 높은 현대 건축물들이 각각의 시대를 주장하는 것처럼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핀란드는 스웨덴에 650여년, 러시아에 약 100년 동안 지배받았으며, 수많은 전쟁으로 국경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핀란드 고유의 민족혼을 잃지 않았고, 지배국이던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의 세력을 키워갈수록 그 혼은 더욱 강해지면서 독립 의지를 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1917년 독립을 이루었는데 이러한 역사가 이들 건축물이나 거리 곳곳에 그대로 서려 있다.
헬싱키는 오래 전 올림픽을 치른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시내 곳곳에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건축물이 많다. 헬싱키 역사(驛舍),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핀란디아홀, 핀란드 공과대학, 국민연금공단 등은 대표적인 북유럽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우리에게 특히 많이 알려진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의 작품들도 그렇지만, 수라 말라이넨의 암석교회는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알바 알토는 핀란드 50크로나 화폐에 그의 초상화가 그려질 정도로 국가에 많은 공헌을 했다.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보아도 건축가의 얼굴 초상이 화폐에 쓰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건축가의 얼굴이 화폐에 사용될 정도이니 그의 건축물이 어느 정도 유명한지 상상하고도 남을 정도다.
알바 알토가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그의 첫 부인이던 아이노 알토의 도움이 컸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평소 존경하던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프론트의 사무소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여의치 않자 한동안 이름없는 사무실에 들어가 일하기도 했다. 알토의 이름이 건축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뷔푸리라는 러시아 중소도시에 짓는 도서관 설계 공모에서 1등을 하면서부터다. 그 도서관의 외관이 자신이 존경해 왔던 군나르 아스프론트의 작품과 비슷하다 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그의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알토는 1898년 쿠오르탈에서 태어나 1976년 작고할 때까지 54년간 300여개의 건축작품을 남겼다.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데 로,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와 더불어 근대건축의 5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칭송될 만큼 그가 남긴 건축 문화유산은 세계적인 것으로 통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참으로 독창적이고 감성적인데, 핀란드의 자연환경이 그에게 확고한 자신감과 자유로운 감성, 다른 유명한 건축가들의 사조에 빠지지 않는 독자적인 주체성을 갖게 해주었다. 그만큼 지역적인 환경은 건축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알토는 핀란드의 전통적인 재료와 자연적인 감성을 그의 건축 세계에 잘 나타냄으로써 지역적이며 민족적인 특징을 표현한 한 시대의 거장이었다. 20세기의 주류를 이루는 국제주의 양식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알토의 초기 작품 세계는 중반에 접어들어 잠시 국제주의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민족적인 성향과 국제적인 경향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기 시작했다. 국제주의 양식을 통해 그의 지역주의적 건축 양식이 더욱 구체화되었던 것.
몹시 추운 겨울 날씨, 맑은 날이 그리 많지 않고 오후만 되어도 날이 저무는 어두컴컴한 기후들이 그의 민족적이고 자연적인 감성을 자극하여 건축에 절묘하게 조화되게 하고 자유로운 창작 의식을 발휘하는 데 한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알토는 “위대한 사상은 삶의 작은 부분에서 탄생한다” “위대한 사상은 대지로부터 용솟음쳐 나온다”고 말했다.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자연적인 재료와 기술적인 공법을 적절히 배합한 조화력을 인공적인 건축물에 무리없이 도입한 디테일과 공간 구성은 보는 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창조적 공간들이었다.
헬싱키에 있는 오타니에미 공과대학은 파이미오 요양원, M.I.T 베이커 하우스, 그리고 이마트라 교회와 함께 알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푸른 초원의 캠퍼스에 하늘을 향해 넓게 열려 있는 듯한 조형적인 미를 갖춘 이 건물은 알토의 말기 대표작으로 외부의 형태만 보더라도 그의 건축적 상상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내부의 둔탁해 보이는 기둥이나 기능적인 콘크리트 구조물들도 마치 자연의 나무결이 느껴지듯 적절하게 조형적으로 처리되고, 그것들은 내부 인테리어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감싸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계단 입구나 핸드 레일, 그리고 테이블에서도 알토의 가구 디자인 기법들이 잘 나타나 있어 목재를 다루는 그의 섬세함에 새삼 시선이 머물게 된다. 외부 전망과 채광을 확 끌어들이도록 넓고 깊게 구성된 연속의 수평 창들은 인공적인 조명들과 함께 복도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상쾌함과 쾌적한 기분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알토는 공과대학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기계적이고 기능적이며 구조적인 기억들을 배척하면서 오타니에미 공과대학 건물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했다.
알토의 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나 미스 반데 로(Mies van der Rohe)의 건축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가치다.
핀란드에는 호수와 더불어 암석도 많다. 그 암석들을 깨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듬어 조각공원을 만들고, 건축물 주변에 암석을 그대로 배치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하고 있다. 헬싱키의 시내 주거 지역에 있는 암석교회(Temppeliaukio Church) 역시 바윗덩어리 속에 내부 공간을 잘 꾸며놓은 건축물이다. 이 교회는 주택가 중앙에 자리한 쓸모없는 암석 바위산이었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잘 표현해주는 종교 건축물로 설계돼 대전환을 이룩해냈다. 단단한 바위를 파내 바닥을 고르게 한 다음 상부에 지붕과 천장을 만들어 바윗덩어리를 훌륭한 교회로 변모시킨 것이다.
수라 말라이넨이 설계한 이 암석교회는 외부에서 보면 마치 비행접시가 도시 주택단지 중앙에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다. 내부 공간은 거칠고 거대한 암석바위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더구나 암벽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그대로 둠으로써 내부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의 건조한 공기를 자연적으로 극복하도록 처리한 인간 정신의 지혜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핀란드는 북유럽 스칸디나비아반도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겨울철이면 영하 40도나 되는 추위 때문에 술도 독한 것을 많이 먹는데, 특히 보드카가 유명하다. 핀란드는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국가로 같은 북유럽 국가이면서도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
수도 헬싱키는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가 이전 수도였던 투르쿠가 스웨덴 부근에 있는 것을 싫어한 나머지 181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가까운 이곳으로 천도한 이래 수도와 무역항으로 번창해 왔다. 수많은 섬을 지나 배로 헬싱키 항구에 입안하면 시청과 대성당이 그 위용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 도시에 일단 내려서면 지금까지 봐왔던 유럽의 풍경과는 다른 인상을 받게 된다. 남유럽에서 보이는 흰 벽이나 나란히 서 있는 벽돌집, 독일의 뾰족탑과 같은 것은 거의 볼 수 없다. 대신 제정 러시아 시대의 네오-클래식한 건축물, 스웨덴 지배 시대의 잔유물들, 그리고 수준 높은 현대 건축물들이 각각의 시대를 주장하는 것처럼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핀란드는 스웨덴에 650여년, 러시아에 약 100년 동안 지배받았으며, 수많은 전쟁으로 국경도 여러 번 바뀌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핀란드 고유의 민족혼을 잃지 않았고, 지배국이던 러시아가 범슬라브주의의 세력을 키워갈수록 그 혼은 더욱 강해지면서 독립 의지를 다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1917년 독립을 이루었는데 이러한 역사가 이들 건축물이나 거리 곳곳에 그대로 서려 있다.
헬싱키는 오래 전 올림픽을 치른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시내 곳곳에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건축물이 많다. 헬싱키 역사(驛舍),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핀란디아홀, 핀란드 공과대학, 국민연금공단 등은 대표적인 북유럽 스타일의 건축물이다. 우리에게 특히 많이 알려진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의 작품들도 그렇지만, 수라 말라이넨의 암석교회는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이었다.
세계적인 건축가인 알바 알토는 핀란드 50크로나 화폐에 그의 초상화가 그려질 정도로 국가에 많은 공헌을 했다.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보아도 건축가의 얼굴 초상이 화폐에 쓰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건축가의 얼굴이 화폐에 사용될 정도이니 그의 건축물이 어느 정도 유명한지 상상하고도 남을 정도다.
알바 알토가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것은 그의 첫 부인이던 아이노 알토의 도움이 컸다. 그는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평소 존경하던 스웨덴 건축가 군나르 아스프론트의 사무소에서 일하기를 원했지만 여의치 않자 한동안 이름없는 사무실에 들어가 일하기도 했다. 알토의 이름이 건축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뷔푸리라는 러시아 중소도시에 짓는 도서관 설계 공모에서 1등을 하면서부터다. 그 도서관의 외관이 자신이 존경해 왔던 군나르 아스프론트의 작품과 비슷하다 하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결국 그의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알토는 1898년 쿠오르탈에서 태어나 1976년 작고할 때까지 54년간 300여개의 건축작품을 남겼다.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 미스 반데 로,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와 더불어 근대건축의 5대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칭송될 만큼 그가 남긴 건축 문화유산은 세계적인 것으로 통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참으로 독창적이고 감성적인데, 핀란드의 자연환경이 그에게 확고한 자신감과 자유로운 감성, 다른 유명한 건축가들의 사조에 빠지지 않는 독자적인 주체성을 갖게 해주었다. 그만큼 지역적인 환경은 건축가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알토는 핀란드의 전통적인 재료와 자연적인 감성을 그의 건축 세계에 잘 나타냄으로써 지역적이며 민족적인 특징을 표현한 한 시대의 거장이었다. 20세기의 주류를 이루는 국제주의 양식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했던 알토의 초기 작품 세계는 중반에 접어들어 잠시 국제주의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민족적인 성향과 국제적인 경향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기 시작했다. 국제주의 양식을 통해 그의 지역주의적 건축 양식이 더욱 구체화되었던 것.
몹시 추운 겨울 날씨, 맑은 날이 그리 많지 않고 오후만 되어도 날이 저무는 어두컴컴한 기후들이 그의 민족적이고 자연적인 감성을 자극하여 건축에 절묘하게 조화되게 하고 자유로운 창작 의식을 발휘하는 데 한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알토는 “위대한 사상은 삶의 작은 부분에서 탄생한다” “위대한 사상은 대지로부터 용솟음쳐 나온다”고 말했다.
어려운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자연적인 재료와 기술적인 공법을 적절히 배합한 조화력을 인공적인 건축물에 무리없이 도입한 디테일과 공간 구성은 보는 이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아름다운 창조적 공간들이었다.
헬싱키에 있는 오타니에미 공과대학은 파이미오 요양원, M.I.T 베이커 하우스, 그리고 이마트라 교회와 함께 알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푸른 초원의 캠퍼스에 하늘을 향해 넓게 열려 있는 듯한 조형적인 미를 갖춘 이 건물은 알토의 말기 대표작으로 외부의 형태만 보더라도 그의 건축적 상상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내부의 둔탁해 보이는 기둥이나 기능적인 콘크리트 구조물들도 마치 자연의 나무결이 느껴지듯 적절하게 조형적으로 처리되고, 그것들은 내부 인테리어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감싸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계단 입구나 핸드 레일, 그리고 테이블에서도 알토의 가구 디자인 기법들이 잘 나타나 있어 목재를 다루는 그의 섬세함에 새삼 시선이 머물게 된다. 외부 전망과 채광을 확 끌어들이도록 넓고 깊게 구성된 연속의 수평 창들은 인공적인 조명들과 함께 복도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상쾌함과 쾌적한 기분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알토는 공과대학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기계적이고 기능적이며 구조적인 기억들을 배척하면서 오타니에미 공과대학 건물을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선사했다.
알토의 공간에서는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나 미스 반데 로(Mies van der Rohe)의 건축에서는 거의 느낄 수 없는 가치다.
핀란드에는 호수와 더불어 암석도 많다. 그 암석들을 깨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듬어 조각공원을 만들고, 건축물 주변에 암석을 그대로 배치해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하고 있다. 헬싱키의 시내 주거 지역에 있는 암석교회(Temppeliaukio Church) 역시 바윗덩어리 속에 내부 공간을 잘 꾸며놓은 건축물이다. 이 교회는 주택가 중앙에 자리한 쓸모없는 암석 바위산이었는데 자연과의 조화를 잘 표현해주는 종교 건축물로 설계돼 대전환을 이룩해냈다. 단단한 바위를 파내 바닥을 고르게 한 다음 상부에 지붕과 천장을 만들어 바윗덩어리를 훌륭한 교회로 변모시킨 것이다.
수라 말라이넨이 설계한 이 암석교회는 외부에서 보면 마치 비행접시가 도시 주택단지 중앙에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이다. 내부 공간은 거칠고 거대한 암석바위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줌으로써 자연과의 조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 더구나 암벽 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그대로 둠으로써 내부 습도를 조절하는 장치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의 건조한 공기를 자연적으로 극복하도록 처리한 인간 정신의 지혜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