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1일, 한국 노년층의 보편적 삶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서울 탑골공원은 여전히 도심 속에 떠 있는 ‘노인의 섬’이었다.
“노인문제 취재한다고 뭐 달라질 게 있겠어? 평소에 잔신경이나 좀 쓰지 않고서….”
기자에게 책망 섞인 한마디를 툭 던지며 한 70대 할아버지는 귀찮다는 듯 공원 정문 너머 젊은이들로 붐비는 종로거리로 눈길을 돌렸다. 새로운 세기가 오면 무언가 생활이 크게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어온 고령세대에게 과거와 다름없는 일상은 가혹한 ‘굴레’가 돼버린 것일까.
21세기 한국 노인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고령인구는 급증하는 반면 적절한 사회-국가적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절대 다수 노인들이 빈곤과 고독에 빠져 있는 것. 사회의 푸대접에 순치된 ‘은퇴자’들은 무력하고도 고통스러운 나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7월10일 통계청은 우리나라도 UN이 정한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돌입했음을 알렸다. 지난 7월1일을 기점으로 국내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337만1000명으로 전체 인구 4727만명의 7%를 넘어선 것. 특히 타 선진국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빨라 2022년엔 노령인구가 전인구의 14.3%를 차지하는 ‘고령사회’(Aged Society)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26년이 걸린 ‘세계 최대 노인대국’ 일본보다도 빠른 속도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 감소, 평균수명 증가에 따른 이같은 변화는 일면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 부합하는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사회적 고립, 건강 상실, 빈곤, 정서적 황폐화…. 고령화사회가 낳는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인문제를 ‘효’라는 전통적 가치규범으로 해결해야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퇴락한 건물에서 월소득 20만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빈곤층 노인이 절반 이상인 마당에 해체된 가족기능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댈 수 있겠는가. 이젠 주위 도움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노인들을 정부가 직접 수발해야 한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77)은 “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은 그만큼 사회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자식 노릇’을 해야 할 정부의 노인복지정책은 어떨까.
“한마디로 ‘립 서비스’에 가깝다. 실효성 있는 ‘액션’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대다수 노인들이 빈곤과 질병, 역할 상실, 고독이라는 4고(苦)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생활보호대상 노인을 포함한 저소득계층에만 치우치는 등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박소장의 말대로 정부의 노인복지정책은 과연 그 의지가 있는가 싶을 정도다. 보건복지부의 올해 노인복지예산은 2770억원. 고작 정부 일반회계예산의 0.32%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마저도 지난 98년부터 생활보호대상 노인과 저소득 노인들에게 지급되고 있는 경로연금 재원으로 2000억원(수혜인원 71만명)이 소요될 예정이어서 신규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노년층 한 달 평균 용돈인 10만원에도 못 미치는 3만∼5만원씩을 지급하기 위해 예산의 대부분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실질적인 소득 보장은커녕 최저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고령화사회에 대한 당국의 준비가 소홀했음을 입증하는 단적인 사례다.
더 심각한 것은 노년층의 건강문제다. 전체 노인의 80% 이상이 중풍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고 현재 27만여명인 치매 노인도 2020년엔 62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요양시설은 전국 24개에 불과하고 수용인원도 2400명으로 태부족인 실정. 이것도 무의탁 노인이나 생활보호대상 노인에 한정돼 있다. 가족이 있는 노인들은 아예 이런 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어 전액 자비를 들여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인격과 가족을 파괴하는 무서운 질환인 치매를 가정에서 해결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시가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 진료 및 요양을 위해 2003년까지 중랑구 망우동에 짓기로 한 서울시립 북부 노인전문 요양병원은 350억원의 예산을 제때 조달할지조차 불투명한 상태.
구직을 통해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인들의 욕구는 상상 이상이다. 한국 노인의 전화가 지난 한해 동안 접수된 전화상담사례 2175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취업문제로 인한 상담이 노인복지시설, 고독과 소외감 등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 중심의 변화지향적 사회경쟁체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노년층의 일자리는 욕구에 비해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 대한노인회가 노년층 재취업 알선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전국 70개 고령자취업알선센터를 통해 지난해 취업한 노인은 모두 16만7000여명. 그나마 장기취업으로 분류되는 1개월 이상의 취업은 1만3000여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취로사업이나 농촌 일손 돕기, 유휴지 개간 등 단기간의 취업에 머물렀다.
고령 주부들의 구직을 돕고 있는 대한주부클럽연합회에도 60세 이상 여성 노인들의 구직신청이 한 달 평균 20건 정도 접수되고 있지만 이들을 고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한노인회 이재수 운영국장은 “희망자는 많지만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구직 신청자의 10% 가량만 일자리를 얻는 형편”이라며 “예전의 취업이 단순히 ‘용돈벌이’ 목적이었다면 요즘 노인들의 취업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먹고 사는 문제는 절박하다”고 털어놨다.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정부는 그동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때늦은 감이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세계 노인의 해’였던 지난해 1월 ‘21세기 고령사회를 대비한 노인보건복지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정부가 노인복지 사상 처음으로 마련한 계획이다.
2003년까지 경로연금 지급대상을 전체 노인의 35%인 85만명으로 늘리고 취업알선센터를 90개로 확충하는 한편, 요양시설과 병원도 대폭 확충하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골자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계획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예산지원이 언제 이뤄질지 여전히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 계획은 있으나 확고한 정책의지는 실종된 셈이다.
“솔직히 우리도 애로사항이 많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의료보험 등 현역 세대 중심의 복지정책으로 인해 고령자에 대한 대책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이 직접 체감하는 복지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이준근 노인복지 과장(52)은 “현재 2010년까지의 계획은 ‘새천년 복지비전 2010’이란 이름으로 나름대로 세워두고 있다”고 밝혔다. 뒤집어보면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2010년 이후나,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2022년 이후의 장기계획은 전혀 수립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구조적으로 사회의 핵심 생산집단에서 배제돼 있는 노년층의 생계는 젊은 세대의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령화의 심화는 부양연령층(15∼64세)이 감당해야 할 노인의 수를 더 많아지게 해 부양 비용을 크게 증가시킨다. 올해 부양연령층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년층은 10명 수준이지만 2030년엔 29.7명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적어도 생산연령인구 3, 4명이 무조건 1명 이상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연금 사정은 어떨까. 최소한 국민연금에서 전면적으로 노령연금이 지급되는 2008년은 돼야 노인들의 생계를 보장할 정도의 연금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7월14일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현재 체제로 운영될 경우 오는 2049년에 기금이 완전 바닥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연금 혜택을 보지 못하는 기존 노인들의 소득보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모자라는 비용은 결국 세금 등 사회적 비용 부담의 추가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고령화사회의 부작용들은 과연 해결 불가능한 난제일까.
“사실상 뚜렷한 답이 없다. 엄청난 재원을 확보하고 연금제도가 잘 발달된 외국과 단순 비교하기도 곤란하다. 전통사회에서 봉양을 잘 받아온 기존 노년층과 연금생활이 보편화될 미래의 노년층 사이에서 고령화사회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현재의 노년층에 관한 사안에 대해 그때그때 적절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노인복지팀장은 “장기적으론 외국의 경우처럼 민간 차원의 복지시설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앞으로의 노인문제에 대처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해법은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고령화사회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짚어봐야 할 21세기의 화두가 됐다. 누구나 늙으면 노인이 된다. 아무도 노인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투자했듯 젊은 세대도 그들에게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것이 자식세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노년의 하루 해는 유난히 길기만 하다.
“노인문제 취재한다고 뭐 달라질 게 있겠어? 평소에 잔신경이나 좀 쓰지 않고서….”
기자에게 책망 섞인 한마디를 툭 던지며 한 70대 할아버지는 귀찮다는 듯 공원 정문 너머 젊은이들로 붐비는 종로거리로 눈길을 돌렸다. 새로운 세기가 오면 무언가 생활이 크게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어온 고령세대에게 과거와 다름없는 일상은 가혹한 ‘굴레’가 돼버린 것일까.
21세기 한국 노인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고령인구는 급증하는 반면 적절한 사회-국가적 대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절대 다수 노인들이 빈곤과 고독에 빠져 있는 것. 사회의 푸대접에 순치된 ‘은퇴자’들은 무력하고도 고통스러운 나날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이에 발맞추기라도 하듯 7월10일 통계청은 우리나라도 UN이 정한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돌입했음을 알렸다. 지난 7월1일을 기점으로 국내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337만1000명으로 전체 인구 4727만명의 7%를 넘어선 것. 특히 타 선진국에 비해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빨라 2022년엔 노령인구가 전인구의 14.3%를 차지하는 ‘고령사회’(Aged Society)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는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넘어가는 데 26년이 걸린 ‘세계 최대 노인대국’ 일본보다도 빠른 속도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급속하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출산율 감소, 평균수명 증가에 따른 이같은 변화는 일면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구에 부합하는 ‘축복’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사회적 고립, 건강 상실, 빈곤, 정서적 황폐화…. 고령화사회가 낳는 부작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노인문제를 ‘효’라는 전통적 가치규범으로 해결해야 할 시기는 이미 지났다. 퇴락한 건물에서 월소득 20만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빈곤층 노인이 절반 이상인 마당에 해체된 가족기능에 더 이상 무엇을 기댈 수 있겠는가. 이젠 주위 도움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노인들을 정부가 직접 수발해야 한다.”
한국노인문제연구소 박재간 소장(77)은 “고령화사회로의 진입은 그만큼 사회경제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자식 노릇’을 해야 할 정부의 노인복지정책은 어떨까.
“한마디로 ‘립 서비스’에 가깝다. 실효성 있는 ‘액션’이 거의 없다는 말이다. 대다수 노인들이 빈곤과 질병, 역할 상실, 고독이라는 4고(苦)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 정책은 생활보호대상 노인을 포함한 저소득계층에만 치우치는 등 지나치게 제한적이다. 사실상 손을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박소장의 말대로 정부의 노인복지정책은 과연 그 의지가 있는가 싶을 정도다. 보건복지부의 올해 노인복지예산은 2770억원. 고작 정부 일반회계예산의 0.32%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마저도 지난 98년부터 생활보호대상 노인과 저소득 노인들에게 지급되고 있는 경로연금 재원으로 2000억원(수혜인원 71만명)이 소요될 예정이어서 신규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노년층 한 달 평균 용돈인 10만원에도 못 미치는 3만∼5만원씩을 지급하기 위해 예산의 대부분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이러니 실질적인 소득 보장은커녕 최저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벅차다. 고령화사회에 대한 당국의 준비가 소홀했음을 입증하는 단적인 사례다.
더 심각한 것은 노년층의 건강문제다. 전체 노인의 80% 이상이 중풍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고 현재 27만여명인 치매 노인도 2020년엔 62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요양시설은 전국 24개에 불과하고 수용인원도 2400명으로 태부족인 실정. 이것도 무의탁 노인이나 생활보호대상 노인에 한정돼 있다. 가족이 있는 노인들은 아예 이런 시설을 이용할 수도 없어 전액 자비를 들여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인격과 가족을 파괴하는 무서운 질환인 치매를 가정에서 해결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서울시가 치매 등 노인성 질환자 진료 및 요양을 위해 2003년까지 중랑구 망우동에 짓기로 한 서울시립 북부 노인전문 요양병원은 350억원의 예산을 제때 조달할지조차 불투명한 상태.
구직을 통해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인들의 욕구는 상상 이상이다. 한국 노인의 전화가 지난 한해 동안 접수된 전화상담사례 2175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취업문제로 인한 상담이 노인복지시설, 고독과 소외감 등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세대 중심의 변화지향적 사회경쟁체제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는 노년층의 일자리는 욕구에 비해 지나치게 제한돼 있다. 대한노인회가 노년층 재취업 알선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전국 70개 고령자취업알선센터를 통해 지난해 취업한 노인은 모두 16만7000여명. 그나마 장기취업으로 분류되는 1개월 이상의 취업은 1만3000여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취로사업이나 농촌 일손 돕기, 유휴지 개간 등 단기간의 취업에 머물렀다.
고령 주부들의 구직을 돕고 있는 대한주부클럽연합회에도 60세 이상 여성 노인들의 구직신청이 한 달 평균 20건 정도 접수되고 있지만 이들을 고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한노인회 이재수 운영국장은 “희망자는 많지만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구직 신청자의 10% 가량만 일자리를 얻는 형편”이라며 “예전의 취업이 단순히 ‘용돈벌이’ 목적이었다면 요즘 노인들의 취업은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만큼 이들의 먹고 사는 문제는 절박하다”고 털어놨다.
고령화사회에 대비해 정부는 그동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을까.
때늦은 감이 있지만 보건복지부는 ‘세계 노인의 해’였던 지난해 1월 ‘21세기 고령사회를 대비한 노인보건복지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했다. 정부가 노인복지 사상 처음으로 마련한 계획이다.
2003년까지 경로연금 지급대상을 전체 노인의 35%인 85만명으로 늘리고 취업알선센터를 90개로 확충하는 한편, 요양시설과 병원도 대폭 확충하겠다는 것이 이 계획의 골자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계획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예산지원이 언제 이뤄질지 여전히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 계획은 있으나 확고한 정책의지는 실종된 셈이다.
“솔직히 우리도 애로사항이 많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의료보험 등 현역 세대 중심의 복지정책으로 인해 고령자에 대한 대책은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노인들이 직접 체감하는 복지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 이준근 노인복지 과장(52)은 “현재 2010년까지의 계획은 ‘새천년 복지비전 2010’이란 이름으로 나름대로 세워두고 있다”고 밝혔다. 뒤집어보면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2010년 이후나, 고령사회에 진입하는 2022년 이후의 장기계획은 전혀 수립돼 있지 않다는 얘기다.
구조적으로 사회의 핵심 생산집단에서 배제돼 있는 노년층의 생계는 젊은 세대의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고령화의 심화는 부양연령층(15∼64세)이 감당해야 할 노인의 수를 더 많아지게 해 부양 비용을 크게 증가시킨다. 올해 부양연령층 100명이 부양해야 할 노년층은 10명 수준이지만 2030년엔 29.7명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적어도 생산연령인구 3, 4명이 무조건 1명 이상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것이다.
연금 사정은 어떨까. 최소한 국민연금에서 전면적으로 노령연금이 지급되는 2008년은 돼야 노인들의 생계를 보장할 정도의 연금이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7월14일 발표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현재 체제로 운영될 경우 오는 2049년에 기금이 완전 바닥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민연금 혜택을 보지 못하는 기존 노인들의 소득보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모자라는 비용은 결국 세금 등 사회적 비용 부담의 추가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고령화사회의 부작용들은 과연 해결 불가능한 난제일까.
“사실상 뚜렷한 답이 없다. 엄청난 재원을 확보하고 연금제도가 잘 발달된 외국과 단순 비교하기도 곤란하다. 전통사회에서 봉양을 잘 받아온 기존 노년층과 연금생활이 보편화될 미래의 노년층 사이에서 고령화사회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현재의 노년층에 관한 사안에 대해 그때그때 적절히 대응할 수밖에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정경희 노인복지팀장은 “장기적으론 외국의 경우처럼 민간 차원의 복지시설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결국 앞으로의 노인문제에 대처할 가장 중요한 사회적 해법은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제 고령화사회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짚어봐야 할 21세기의 화두가 됐다. 누구나 늙으면 노인이 된다. 아무도 노인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투자했듯 젊은 세대도 그들에게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그것이 자식세대의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노년의 하루 해는 유난히 길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