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건물 앞에 예금주 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몰려 있다. [뉴시스]
1983년 설립된 SVB는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 서부 밴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의 핵심 자금줄이었다.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및 총예금액은 각각 2090억 달러(약 275조1000억 원), 1754억 달러(약 230조880억 원)로 미국 은행업계 16위 규모다. SVB의 대표 금융상품은 스타트업에 특화된 ‘벤처 대출’이었다. 일반 은행의 대출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운 신생 벤처에 투자금 유치 규모에 따라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고객을 끌어 모았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과 VC의 절반 이상이 SVB 고객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그니처은행도 파산… 美 금융계 리스크 확대되나
SVB 파산의 주된 원인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고강도 긴축과 테크 업계의 자금난이다. 지난해 연준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되자 코로나19 팬데믹 국면에서 몸집을 불린 테크 기업들의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다. SVB는 저금리 기조와 IT업계 호황 속에 확보한 예금을 미 국채에 대규모 투자한 터였다. 당장 자금 융통을 위해 테크 업계에서 예금 인출 요구가 속출하자, SVB는 손실을 감수하고 국채 자산을 팔 수 밖에 없었다. SVB는 3월 8일(현지 시간) 장기 채권 210억 달러(27조 7800억원)어치를 매각해 18억 달러(약 2조3800억원)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SVB가 대규모 손실을 봤다는 소식에 주가는 60% 이상 폭락했고, 뱅크런 사태가 이어졌다.일각에선 디지털 기술 발달이 대형 은행의 초고속 파산에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08년 글로벌 위기만큼 금융 리스크가 크지 않았음에도, 스마트폰으로 빠른 예금 인출이 가능해져 ‘패닉’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스마트폰 뱅크런으로 비운 맞은 SVB’ 제하 기사에서 △IT업계에서 많이 쓰는 소셜미디어 ‘슬랙’을 통해 각 스타트업 경영자들이 SVB 리스크를 빠르게 공유해 ‘과민 반응’했고 △스마트폰 버튼만 몇 번 누르면 예금을 즉시 인출할 수 있는 IT 금융 환경을 이번 파산의 한 배경으로 짚었다.
SVB 붕괴 여파가 미국 금융계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3월 12일(현지 시간) 또 다른 미국 상업은행인 시그니처은행도 파산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시그니처은행은 총자산 1104억 달러(145조1649억 원)·총예금액 886억 달러(116조5000억 원)의 암호화폐 전문 은행이다. 미 재무부, 연준, FDIC 등 관계 당국은 공동 성명에서 “뉴욕 시그니처은행에 대해 (SVB와) 유사한 시스템상 위험성을 고려해 영업을 폐쇄했다”고 밝혔다. SVB 폐쇄 조치 당일 시그니처은행 주가는 20% 이상 폭락해 장중 한때 거리가 중단되기도 했다.
이복현 금감원장 “사태 예의주시”
이번 SVB 파산은 국내 금융시장에도 직간접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당장 국민연금도 적지 않은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은 SVB 모기업 ‘SVB파이낸셜그룹’ 주식을 10만795주(지난해 말 기준)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지분 가치는 약 300억 원으로 추산된다. SVB파이낸셜그룹 주가는 파산 가능성에 9일(현지 시간) 60% 폭락해 지난해 말 대비 반 토막 났고, 현재는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국내 금융 당국도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13일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미국 정부 및 감독당국이 SVB의 모든 예금자를 보호하기로 조치하면서 시스템 리스크로 확대될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유사한 영업구조를 갖는 미국 내 금융회사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등 당분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을 경계감을 갖고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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