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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7.5% 상승했다(그래프 참조). 이는 1982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주식 및 채권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지난 100년간 데이터를 살펴보면 인플레이션이 가장 심했던 시기는 1970년대다. 1960년대 초반 소비자물가지수는 1% 수준을 유지했으나 1965년부터 상승해 1980년 3월 14.8%를 기록한다.
인플레이션에 강했던 금과 신흥국 주식
그중 인플레이션율이 급격히 상승한 기간은 1972년 6월~1974년 12월과 1976년 12월~1980년 3월 두 차례다. 이 기간 자산 가격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1972년 6월~1974년 12월에는 미국 대형주 지수(S&P500)가 -36.0% 하락했다. 당시 인플레이션율 24.5%를 감안하면 주식의 실질가치 하락은 -60.5%였다. 그렇다면 채권 투자자는 어땠을까. 같은 기간 미국 국채(10년 만기)에 투자했다면 2년 6개월간 14.1% 명목수익률을 보였다. 하지만 역시 물가상승률(24.5%)을 반영하면 실질수익률은 -10.4%다. 또 이 기간 신흥국 주식은 20.3% 상승했으나 이 역시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실질수익률은 -4.1%로 하락한다.두 번째 기간인 1976년 12월~1980년 3월에는 어땠을까. 3년 3개월 동안 미국 대형주 지수는 -5.0% 하락했다. 당시 인플레이션율이 37.2%였으므로 주식의 실질가치 하락은 -42.2%에 이른다. 같은 기간 미국 국채는 -1.7% 명목수익률을 보였고,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면 실질수익률은 -38.9%였다. 미국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한 이들에게는 매우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기간 신흥국 주식은 120.0% 상승률을 보였다. 물가상승분을 반영해도 실질수익률이 82.9%나 된다.
미국 물가보다 더 가격이 상승한 자산이 또 있다. 바로 금이다. 1972년 6월~1974년 12월 금 가격은 196.1% 상승했다. 당시 인플레이션율 24.5%를 감안하더라도 실질가치가 171.6%나 상승한 것이다. 1976년 12월~1980년 3월에는 금 가격이 더 크게 올랐다. 267.7% 상승했으며, 실질수익률도 230.5%였다. 주식이나 국채만 보유한 투자자에게는 놀라운 수익률이다.
물가 안정되면 손실 커지는 금
그렇다면 40년 만에 가장 높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고 있는 이 시점에는 어떤 자산에 투자해야 할까. 과거 금이 가장 많이 올랐으니 금 투자에 올인해야 할까. 현 인플레이션이 과거처럼 지속될 것으로 확신한다면 가능한 결정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 안에 인플레이션이 안정화된다면 어떻게 될까.첫 번째 물가 안정화 시기인 1974년 12월~1976년 12월에는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가 12.3%에서 4.9%로 하락했다. 2년 동안 물가는 12.5% 올랐다. 이 기간 미국주식(미국 대형주)은 56.7% 상승했고 실질수익률은 44.2%였다. 미국 국채 역시 26.3% 상승했고 실질수익률은 13.8%였다. 신흥국 주식도 30.2% 상승했으며 실질수익률은 17.7%였다. 반면 금은 -26.8% 하락해 실질수익률이 -39.4%였다.
두 번째 물가 안정화 시기인 1980년 3월~1983년 7월에는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가 14.7%에서 2.5%까지 하락했다. 이 기간 물가는 24.6% 올랐지만 미국주식은 59.2% 상승해 실질수익률이 34.6%나 됐다. 미국 국채는 75.0%나 올라 실질수익률이 50.4%였다. 반면 금은 -14.7% 하락해 실질수익률이 -39.3%였다.
앞으로 전개될 시장 모습을 예측하고 최적 타이밍을 찾아내 매매하는 것을 ‘마켓 타이밍’이라고 한다. 마켓 타이밍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물가가 오르기 전 주식과 채권을 금으로 갈아타 큰 수익을 챙기고, 물가가 하락하는 시점에는 금을 전부 매도한 뒤 주식, 채권을 매수하면 전 세계 부를 거머쥘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무도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역시 자산배분 투자가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자산배분이란 단어 그대로 자산을 적절히 배분하는 것을 말한다. ‘적절히’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화하면 ‘상관관계가 낮은’이라고 할 수 있다. 자산배분 투자법 중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것은 영구 포트폴리오다. 필자가 쓴 ‘마법의 돈 굴리기’에 소개한 내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영구 포트폴리오(The Permanent Portfolio) 투자전략은 오백 년의 역사를 가진다. 당시 최고의 부자로 알려진 독일의 금융업자 제이콥 퓨거(1459~1525)가 이 투자전략을 처음으로 문서화했다. 이 전략은 직관적이고 간단하다. 모든 경제 상황을 동시에 대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경제상황은 물가상승(인플레이션), 물가하락(디플레이션), 호황, 불황 4가지를 말한다.
오늘날 ‘영구 포트폴리오의 아버지’로 손꼽히는 해리 브라운(1933~2006)은 이 포트폴리오 개발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1981년 그의 책에서 자산별로 25%씩 투자하는 모델을 공개했다. 4개 자산그룹은 금, 미국주식(S&P500인덱스), 미국 국채(30년 만기), 현금이었다. 금은 물가상승에 대비(헤지)한 것이고, 주식은 호황을 대비한 것이다. 국채는 물가하락에 대한 대비이고, 현금은 불황에 대비한 것이다. 그는 매년 자산을 재분배할 것을 추천했다.”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로 연 12% 수익
필자는 해리 브라운의 영구 포트폴리오에 신흥국 주식을 추가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주식과 신흥국 주식의 상관관계가 낮기 때문이다. 미국주식, 신흥국 주식, 금, 미국 국채, 현금성 자산(단기채권)을 포트폴리오에 포함시킨다. 자산군별로 비중을 25%씩 할당하고, 주식에 할당된 25%를 미국주식과 신흥국 주식에 각각 12.5%씩 배분한다. 이 자산배분 포트폴리오 성과는 어땠을까.
‘표’를 통해 분석 기간 자산배분 포트폴리오가 안정적 성과를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약 10년 동안 연수익률 12%로 물가상승률 이상 성과를 냈다. 변동성은 9%로 미국 국채 수준의 낮은 변동성을 보였으며, 최대 낙폭은 13%로 비교 자산 가운데 가장 낮았다. 손실 최장 기간은 24개월로 미국주식 90개월에 비해 훨씬 짧다. 위험 대비 수익 지표인 샤프 비율 역시 0.39로 가장 준수하다.
인플레이션 시기 시장은 예측하기 어렵고 변동성은 커졌다. 투자 방향성을 정하기 힘들다면 자산배분 투자로 안정적이면서 나쁘지 않은 성과를 기대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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