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 SPC그룹 파리바게뜨 렉싱턴에비뉴점. [사진 제공 · SPC그룹]
가맹사업 비중 월등, 수익 창출 경쟁력 확보
SPC그룹의 특허 토종효모와 토종유산균을 사용해 개발한 파리바게뜨 ‘상미종 생식빵’. [사진 제공 · SPC그룹]
물론 미국에서 케이크는 별스러운 음식이 아니다. 마트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음식이지만, 선물용은 대부분 럭셔리 베이커리나 호텔에서 판매하기 때문에 가격 면에서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에 반해 파리바게뜨 케이크는 맛과 품질, 디자인 모두 호텔급에 뒤지지 않으면서 가격은 절반밖에 안 돼 인기가 높다.
뉴욕에서 대기업 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최선화(45) 씨는 “한국에 있을 때는 한 집 건너 하나꼴로 파리바게뜨가 있어서 프랜차이즈 빵과 케이크가 으레 그 정도 퀄리티를 유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 와서야 파리바게뜨처럼 ‘가성비’ 좋은 빵집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다”며 “파리바게뜨가 해외에서 인정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커리 한류’를 이끌고 있는 SPC그룹 파리바게뜨는 2005년 미국에 처음 진출한 이래 동부와 서부에 걸쳐 100개 가까운 매장을 열었다. 이 중 27%만 직영이고 나머지 73%는 가맹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SPC 글로벌 가맹사업이 궤도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가맹사업 비중이 높아졌다는 건 해외 현지시장에서 브랜드가 확실히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더불어 가맹사업자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파리바게뜨는 미국 현지 주류 상권인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미드타운, 어퍼웨스트사이드, LA 다운타운 등에 매장을 열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라스베이거스, 애틀랜타, 보스턴을 비롯해 새로운 시장으로 꼽히는 신시내티 등에서 71개 가맹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프리미엄 아티잔 블링제리’ 원칙
프랑스의 파리바게뜨 생미셸점(왼쪽)과 중국에 세워진 SPC톈진공장. [사진 제공 · SPC그룹]
파리바게뜨는 2020년 6월 캐나다 법인을 설립하며 북미시장 확대에 신호탄을 쐈다. 캐나다는 미국 문화권 국가이지만 퀘벡 등 일부 지역이 범프랑스권인 만큼 파리바게뜨 글로벌 사업을 위한 핵심 지역으로 꼽힌다. 파리바게뜨는 미국에서 쌓아온 프랜차이즈 노하우를 활용해 올해 토론토, 퀘벡, 몬트리올, 밴쿠버 등 4대 거점을 중심으로 가맹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다.
파리바게뜨는 미식의 본고장인 프랑스에도 이미 진출했다. 2014년 7월 파리1구역에 파리 1호점(샤틀레점)을 연 데 이어 지난해 8월 2호점(생미셸점)을 오픈했다. 빵에 대한 프랑스인의 남다른 자부심 때문에 미국, 일본 등 제빵 선진국의 기업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우리 기업이 해낸 것이다. ‘생미셸(Saint-Michel)점’은 노트르담 성당을 비롯한 관광명소가 밀집해 있어 파리의 대표 먹거리 상권으로 꼽힌다. 생미셸 매장은 야외 테라스가 있는 파리바게뜨 특유의 ‘베이커리 카페’ 콘셉트로 꾸며졌다.
프랑스에서 단팥빵이나 슈크림빵, 소보로빵 등은 ‘코팡(KOPAN)’으로 불린다. ‘한국의 빵(Korean Pan)’이라는 뜻인데, 프랑스어로 ‘친구’라는 뜻의 ‘코팡(Copain)’과 발음이 같아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팡이라는 이름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직접 붙였다. 파리1호점 파리샤틀레점에서는 프랑스빵의 상징인 바게트가 하루 평균 700개 가까이 팔린다. 입맛 까다롭기로 유명한 프랑스인들에게 맛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평가된다.
이런 성공 배경에는 제빵 장인이 제품을 직접 만드는 ‘프리미엄 아티잔 불랑제리(Premium Artisan Boulangerie)’가 있다. 프랑스 매장은 파리 유명 호텔 출신 파티시에와 프랑스 요리학교 르꼬르동블루(Le Cordon Bleu) 교수 출신 셰프 등 현지 전문 인력을 채용했다. 원래 파리바게뜨는 매장에서 직접 빵을 굽는 베이크오프(bake off) 방식을 처음 도입해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켰는데, 글로벌 매장들도 한국에서 냉동컨테이너로 휴면생지를 공수 받아 매장에서 해동 후 2차 발효시켜 직접 굽는다. 최근 SPC그룹은 프랑스 사업 확대를 위해 프랑스 북서부 지역 노르망디에 제빵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 430개 매장 출점
지난해 SPC그룹은 해외 사업부를 강화하고 국가별 책임 경영을 도모하고자 글로벌 부문 인사 및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허진수 글로벌BU(Business Unit)장을 사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등 해외 사업에 고삐를 죄는 모습이다.SPC그룹의 글로벌 시장 개척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리바게뜨는 2004년 9월 중국 상하이에 첫 해외 매장을 열었다. 이후 미국, 베트남, 싱가포르, 프랑스 등 세계 주요 국가에 차례로 진출해 현재 총 430여 개 해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비중이 가장 큰 곳은 중국으로, 현재 중국 내 파리바게뜨 매장은 총 305개다. 2019년 4월 총 400억 원을 투자해 톈진시 ‘서청경제기술개발구’에 축구장 3개 면적 (2만800㎡)의 ‘SPC톈진공장’을 짓고 가맹사업 발판을 마련했다. SPC그룹의 12개 해외 생산시설 중 가장 규모가 큰 SPC톈진공장은 빵과 케이크뿐 아니라 가공채소, 소스류 등 390여 개 품목을 생산한다.
중국 시장에서 파리바게뜨가 성공한 비결은 바로 ‘현지화’다. 신제품의 40% 이상을 중국 소비자를 겨냥한 현지화 제품으로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 사례로 몇 년 전 중국에서 히트를 친 티라미수 페이스트리 ‘짱짱바오’를 들 수 있다. ‘입이 더러워지는 빵’이라는 뜻의 짱짱바오는 페이스트리에 초코가루를 잔뜩 묻힌 제품으로, 손과 입 주변에 초코가루가 묻는 특징을 제품명으로 표현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파리바게뜨는 중국 지점에서만 짱짱바오를 선보였고 월 매출 7%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였다.
최근 파리바게뜨는 중국에서 위챗 플랫폼 ‘파리바게뜨 GO’를 통해 모바일 배송 서비스도 시작했다. 파리바게뜨 GO는 고객이 제품 검색 후 주문하면 배송해주는 애플리케이션(앱)이다. 당일 배송 시간도 고객이 직접 정할 수 있다. 해당 앱으로는 케이크 선주문 및 DIY(Do It Yourself) 예약도 가능하다. 케이크 크기와 단맛, 색상 등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커스터마이징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파리바게뜨 관계자는 “중국 내 소비 환경 변화에 맞춰 편리하고 합리적인 쇼핑을 위해 모바일 배송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는 동남아에서도 순항 중이다.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에라자야그룹과 합작법인(조인트벤처)을 설립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2개 매장을 오픈했다. 7번째 해외 진출국인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 최대 면적과 인구를 보유한 국가로, 동남아에서 사업 확대는 물론 향후 중동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가 될 것으로 SPC그룹 측은 보고 있다. SPC그룹은 또 지난해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현지 파트너사인 HSC그룹과 함께 파리바게뜨 캄보디아 1호점을 열었다. 지난해 4월에는 말레이시아 장관이 방한해 파리바게뜨 현지 진출 및 생산시설 건립 추진을 논의했고, 9월에는 싱가포르 오차드 지역에 파리바게뜨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했다.
허영인 회장, 신제품 테스트에 진심
허영인 SPC그룹 회장. [사진 제공 · SPC그룹]
SPC그룹의 기원은 해방을 맞은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 허창성 명예회장이 황해도 웅진에 문을 연 ‘상미당’이 시초였다. 이후 상미당은 서울 을지로4가로 터를 옮겼고, 1959년 서울 용산에 삼립제과공사(현 삼립식품)를 설립하면서 기업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1972년 삼립식품은 고급 케이크를 생산하기 위한 자회사로 한국인터내쇼날식품주식회사(옛 샤니)를 설립했는데, 창업자 2세인 허영인 회장은 1983년 당시 삼립식품의 10분의 1 규모에 불과한 샤니를 모회사로부터 독립시켜 제2의 창업을 이뤘다. 허 회장은 이후 기존 양산빵 사업 이외에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 등 프랜차이즈 형태의 새로운 사업을 도입하며 현 SPC그룹을 일궈냈다.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에서 토종효모로 만든 빵을 분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 SPC그룹]
SPC그룹은 식품 분야 원천기술 확보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2005년 서울대에 SPC식품생명공학연구소를 설립해 식품 분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 성과가 바로 토종효모 발굴이다. 10여 년간 1만 종 이상 한국 토종 미생물자원을 분리하고 균주 특성을 분석한 끝에 2016년 우리 고유 식품인 누룩과 김치에서 제빵에 적합한 효모와 유산균을 찾아냈다. 또한 이들을 조합해 제빵 발효종인 ’상미종‘을 개발, 상용화에도 성공했다. 이 토종효모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프랑스, 일본 등 4개국에 총 12건의 특허를 등록해 해외에서도 원천기술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동안 수입에만 의존해오던 제빵용 효모를 대체해 매년 70억 원 이상 수입 대체 효과도 보고 있다. SPC그룹은 미생물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과 노하우 축적으로 식품을 넘어 바이오로까지 사업을 확대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