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GM-148 재블린 대전차미사일. [뉴시스]
현궁 대전차미사일. [사진 제공 · 국방부]
러시아 전차 격파 ‘인증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황이 전해지는 이번 전쟁. 우크라이나군 장병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러시아군 전차와 장갑차량을 격파하는 영상을 찍어 SNS에 올리고 있다. 대전차미사일로 러시아군 기갑전력을 파괴하고 ‘인증샷’을 찍는 식이다. 마치 방송 스튜디오처럼 미리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리다 적 전차가 다가오면 미사일을 쏴 파괴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우크라이나군 수뇌부는 러시아와 전력 차이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차와 전차, 장갑차와 장갑차가 맞붙는 정면 대결을 피하고 게릴라전을 택한 것이다. 우크라이나 측은 개전과 동시에 전국 각지 도로 이정표를 모두 제거해 러시아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갈림길이나 사거리에서 우왕좌왕하는 러시아군에게 기습 공격을 가한 뒤 사라지는 전술을 택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지역별로 지형지물에 익숙한 현지 예비역과 현역을 적절히 섞어 분대 단위 매복조로 편성하는 식이다. 또한 이들에게 옛 소련제 RPG-7이나 우크라이나산 스키프(Skif)는 물론, 서방 세계가 지원해준 재블린(Javelin), NLAW(Next generation Light Armour Weapon) 등 대량의 대전차 무기를 지급했다.
물론 러시아 측도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미사일을 의식해 그 나름 대비를 했다. 러시아군은 대전차미사일을 막고자 전차 외부에 증가장갑을 덕지덕지 붙였다. 특히 전차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톱어택(top-attack)’ 방식의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전차 위에 강철로 된 구조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의 이러한 준비는 실전에서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의 대비책을 돌파한 주인공은 바로 ‘세인트 재블린(Saint Javelin)’이다.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미국산 대전차미사일 FGM-148 재블린 휴대용 대전차미사일의 별명이다. 재블린은 러시아군 최신 전차들을 족집게처럼 파괴해 침공의 예봉을 꺾은 우크라이나군의 방어선 사수에 일등공신이다. 러시아군은 개전 사흘 만에 재블린 공격으로 100대 이상 전차를 잃었다. 이에 러시아군은 개활지와 풀숲, 파괴된 건물 잔해, 고속도로 옆 배수로 등 곳곳에 매복한 재블린 사수를 잡고자 공격 헬기와 보병, 장갑차를 증파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휴대용 지대공미사일과 재블린에 큰 타격을 입었다.
레이시온·록히드마틴 주가↑
미국은 1980년대 구형 M47 ‘드래건’ 대전차미사일을 대체하고자 재블린을 개발했다. 1996년 실전 배치 후 지금까지 미군의 소대급 주력 대전차화기로 운용되고 있다. 보병이 어깨에 멘 상태로 발사할 수 있지만 미사일과 발사유닛 전체 중량이 30㎏에 육박하기 때문에 주로 차량으로 옮겨 사용한다.재블린의 큰 강점은 간단한 운용법과 높은 신뢰성이다. 발사유닛과 미사일 컨테이너를 결합해 발사유닛의 전원을 켜고 조준경으로 표적을 조준한 뒤 시커(seeker) 냉각 후 발사하면 된다. 발사된 미사일은 스스로 표적을 추적한다. 사수는 발사 후 안전한 위치로 대피하면 그만이다. 보통 대전차 로켓무기는 발사 직후 발사기 후방에서 엄청난 화염이 발생해 사수 위치가 쉽게 노출된다. 재블린은 고압 압축 공기로 미사일을 밀어낸 뒤 일정 거리 이상 날아간 다음 로켓 모터가 점화된다. 발사 위치를 적에게 쉽게 들키지 않을 수 있고 건물 안에서도 발사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다루기 쉬운 재블린의 위력은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재블린 미사일은 전방 탄두(precursor)와 주탄두(main warhead) 등 2개 탄두로 구성된다. 전방 탄두가 표적의 외부 증가장갑을 파괴하면 주탄두가 주장갑을 관통하는 방식이다. 이런 이중 탄두 구조 덕분에 재블린은 균질압연강판(RHA) 기준으로 최대 900㎜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 재블린은 표적과 거리가 가까울 때는 표적의 측면을 직격하는 공격 방식을 쓴다. 다만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됐다면 톱어택도 가능하다. 표적을 향해 날아가다 160m 상공까지 솟구친 뒤 수직에 가깝게 표적 머리 위로 내리꽂는 공격 방식이다. 전차의 경우 대부분 상부 장갑판이 가장 얇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재블린이 현존하는 세계 최강의 보병 휴대용 대전차미사일로 평가받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된 우크라이나에서 재블린 미사일이 맹활약하자 개발사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와 록히드마틴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두 자릿수 주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강 기갑부대라는 러시아 전차군단을 막아낸 재블린에 각국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한국에도 ‘재블린 효과’를 보는 기업이 있다. 바로 ‘한국판 재블린’을 만드는 LIG넥스원과 한화다. LIG넥스원과 한화는 현재 우리 군과 중동 여러 바이어에게 AT-1K ‘현궁(晛弓·Raybolt)’ 대전차미사일을 공급하고 있는 기업이다. LIG넥스원은 미사일을, 한화는 발사유닛을 생산하고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일각에선 현궁을 재블린의 아류작 정도로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이내 세계 방산 시장에서 재블린보다 뛰어난 성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정평이 났다.
현궁이 처음 해외 바이어로부터 주목받은 계기는 2015년 시작된 예멘 내전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해 이집트, 요르단,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등이 구성한 연합군은 예멘 후티 반군과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연합군 측은 후티 반군의 전차, 차량, 진지를 공격하는 데 재블린 미사일 덕을 톡톡히 봤다. 이 과정에서 사우디군은 150발의 재블린 미사일 재고를 전부 써버렸다. 사우디는 자국군과 연합군에 대량 보급하기 위해 재블린 미사일 1만5000발을 주문했지만 미국 상원이 수출을 승인하지 않아 곤란해졌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현궁이다.
현궁은 유도 방식이나 탄두 위력, 사거리 면에서 재블린과 비슷하나 성능을 하나씩 뜯어보면 더 우수하다(표 참조). 재블린 미사일은 표적 조준을 위한 적외선 CCD(Charge Coupled Device) 냉각에 약 30초 시간이 필요하다. 얼핏 짧은 시간 같지만 전장에선 그렇지 않다. 사수가 무거운 미사일 발사기를 어깨에 메고 최소 30초 이상을 조준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사이 적 전차에 위치를 들키면 임무 완수는커녕 사수 생명조차 보장할 수 없다.
대전차미사일 시장 폭발적 확대 조짐
반면 현궁은 비냉각식 적외선 CCD와 가시광선 카메라를 채택했다. 그 덕에 주야간을 막론하고 신속한 조준과 발사가 가능하다. 현궁이 중동에서 ‘대박’을 터뜨린 원동력이다. 사우디군은 현궁 운용 영상을 SNS에 공개하며 ‘South Korea ATGM’, 즉 ‘한국산 대전차미사일’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다. 현궁이 얼마나 위력적이고 뛰어난 성능을 갖췄는지 ‘인증 영상’도 대거 공개했다. 사우디가 주도하는 연합군은 현궁으로 적 전차는 물론, 장갑차와 일반 차량, 기관총 진지, 벙커, 심지어 빠르게 질주하는 군용 오토바이까지 격파해 가공할 명중률과 위력을 자랑했다. 재블린의 3분의 1에 불과한 가격도 상당한 경쟁력이다.이처럼 현궁은 중동지역에서 명성을 떨쳤지만 세계 시장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대전차미사일 수요가 그리 많지 않고 재블린이라는 브랜드가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보병 휴대용 대전차미사일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주역인 재블린은 물론, 그보다 우수하면서 가격은 저렴한 현궁이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다. 최근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동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보병 휴대용 대전차미사일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세인트 재블린 신화에 이어 현궁이 새로운 방산 수출 대박을 터뜨릴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