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앤드미가 제공하는 가계 및 혈통 정보 서비스. [23앤드미 홈페이지]
D2C(Direct To Consumer: 소비자 직접 판매) 형태의 유전자 검사 사업은 미국에서 먼저 활성화됐다. 23앤드미(23andMe), 앤세스트리(Ancestry), 패밀리트리디엔에이(FamilyTree DNA) 등 여러 기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서비스 진행 절차와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고객이 DNA 검사 키트를 배송 받아 침이나 입속 세포를 채취해 업체로 보내면 몇 주 후 가계, 혈통 정보 및 유전적으로 발병 가능성이 높은 질병 정보 등을 제공한다.
미국에서 이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는 23앤드미다. 2006년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이 회사는 현재까지 DNA 검사 키트를 1100만 개 이상 판매했고, 1190만 고객의 DNA 데이터를 쌓아올렸다. 지난해 기준 매출 규모는 3억550만 달러(약 3635억 원)다. 올해 6월 영국 버진그룹의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VG 애퀴지션과 합병해 나스닥에 상장됐다.
뇌종양 치료제 임상시험 중
23앤드미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당뇨를 비롯한 여러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알려준다. [23앤드미 홈페이지]
23앤드미 매출의 81%는 유전자 검사 키트 판매에서 나온다. 고객은 가계, 혈통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99달러)와 이에 더해 유전적으로 발병 가능성이 높은 질병 등 건강 관련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199달러) 가운데 택일할 수 있다. 습진은 물론 당뇨, 유방암 등 23앤드미가 다루는 질병 범위가 경쟁사 대비 넓고, 시료 접수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3~5주로 경쟁사 대비 짧다고 한다.
나머지 매출원은 23앤드미가 다른 유전체분석 기업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에서 나온다. 이 회사는 고객들이 “연구에 사용해도 좋다”고 동의한 방대한 양의 DNA 데이터를 활용해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나서고 있다. 6년 전 신약 후보물질 개발을 목표로 한 전담 부서(Therapeutics Division)를 만들었고, 2018년에는 글로벌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공동 신약 후보물질 개발을 위한 4년 기한의 파트너십을 맺었다. GSK로부터 3억 달러(약 3570억3000만 원) 지분 투자도 유치했다. GSK는 23앤드미의 익명화된 DNA 데이터를 사용하면서 대가를 지불하는데, 이것이 23앤드미의 나머지 매출원이다. 올해 7월에는 이 두 회사가 공동개발 중인 뇌종양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2022년 말까지는 첫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23앤드미는 자체적으로도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는 종양학, 면역학, 신경학, 심혈관 및 대사 질환 등과 관련해 30개 가까운 후보물질을 검증하는 단계다. 내년 3월에는 첫 번째 자체 개발 약물을 발표할 것으로 기대된다. 23앤드미 측은 “유전자 데이터로 검증된 치료법은 전통 치료법 대비 치료에 성공할 가능성이 최소 2배 이상 높다”고 말한다.
23앤드미는 최근 원격진료 및 온라인 약국 서비스 스타트업 레모네이드 헬스(Lemonaid Health)를 4억 달러(약 4761억2000만 원)에 인수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원격의료 서비스 수요가 증가한 사업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이자, 좀 더 개인화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우선 23앤드미는 자사가 보유한 고객 유전자 정보를 레모네이드 헬스의 원격의료 서비스와 결합하고, 레모네이드 헬스 의사로 하여금 환자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참고해 좀 더 적절한 약물을 처방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스팩 상장 후 주가 바닥
23앤드미의 DNA 검사 키트. [23앤드미 홈페이지]
한편 DNA 검사 및 분석 사업은 필연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이슈를 부른다. 한 발 더 나아가 DNA 데이터를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활용하는 것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미국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23앤드미를 다룬 기사에서 “엄청난 부자만 사용할 수 있는 기적의 치료법을 위해 대중의 DNA가 채굴되는 ‘가타카’ 같은 미래가 상상된다”고 썼다. ‘가타카’는 1997년 개봉한 SF영화로, 유전자 조작 여부를 통해 인간의 우열을 가르는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다. 일반인이 손쉽고 저렴하게 자신의 유전자 정보에 접근해 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겠다는 23앤드미가 신약 후보물질 개발 사업에서도 ‘따뜻한 기술’을 보여줄지는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