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신지예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은 제6·7대 서울시장 선거에 각각 녹색당(왼쪽),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다. [사진 제공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의당 "기괴한 변절" 일침
이번 영입이 얄팍한 득표 전략의 산물인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 나름 전략가인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의 작품이다. 국민의힘의 취약점인 이대녀(20대 여성) 표심을 잡겠다는 의도지만 근본적 변화의 단초일 수도 있다. 신 부위원장은 녹색당에서 활동했다. 2016년 총선 당시 녹색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후보 5번이었고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는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표방하고 나서 1.67%를 득표해 정의당 김종민 후보에 앞서며 4위를 차지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그는 지난해 녹색당과 결별했다. 녹색당이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 협상에서 배제된 직후다. 당시 녹색당은 “모든 선거연합 논의는 민주당에서 주도하는 허울뿐인 선거연합이라고 판단하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취지마저 무색하게 하는 행위라고 강력히 비판한다”는 논평을 냈다. 신 부위원장은 녹색당마저 비판하면서 총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부끄러운 기록으로 남을 위성정당 참여 명단에 녹색당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내렸다”며 “과거 문법에 얽매인 정당에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 양당체제를 넘어 제3지대 문을 열고자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총선 때는 서울 서대문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역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물론 둘 다 낙선했다. 신 부위원장은 최근까지 제3지대 대안 후보 육성 활동을 벌였다. 정의당, 국민의당, 신자유민주연합, 여성의당 일부 당원과 일반 시민이 참여한 ‘대선 전환 추진위원회’ 대변인 활동이 그것이다.
대선 전환 추진위원회는 11월 2일 “민주당 후보는 전혀 공공적이지 못한 사업을 설계하고도 그 책임을 회피한 채 상대 당 탓만 한다. 국민의힘 유력 후보는 의혹을 해명하기보다 시종일관 제보자와 언론을 공격·폄훼하며 음모론을 편다. 결국 양아치와 조폭 중에 대통령을 뽑아야 할 지경”이라며 “거대 양당이 막은 변화의 문을 열자. 소외된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의 출현이 막혀 있다. 다당제와 연합정치를 추구해온 심상정, 안철수, 김동연 같은 대선주자들마저 말이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제3지대 후보의 부상을 독려하는 국민적 공론장을 열자’는 제안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 신 부위원장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손을 잡았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 측이 ‘기괴한 변절’이라고 비난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가운데)가 12월 20일 서울 여의도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실에서 열린 영입인사 환영식에 참석해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왼쪽), 신지예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독일 ‘신호등 연정’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신 부위원장은 12월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양자 구도를 벗어나기 요원해 보였다. 물리적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3지대가 힘을 못 쓰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그동안 민주당이 보여준 ‘박원순·오거돈·안희정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 조직적인 2차 가해, 4월 재보궐선거 때 손바닥 뒤집듯 당헌을 바꿔 후보를 낸 일 등 이런 문제는 여성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라면서 “강간당해도, 죽어도 가만히 있으라는 그런 나라는, 그런 정권은 더는 재창출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간절함을 갖고 합류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3지대 대선후보가 뜨지 않는 상황에서 여성을 위한 절박함으로 국민의힘에 합류했다는 설명이다.당연히 다른 정치적 의도도 있을 것이다. 녹색당 또는 무소속 후보로는 국회의원도, 서울시장도 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정치적 미래를 계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현실적 판단을 내렸다고도 볼 수 있다. 현 시점 녹색당 또는 무소속 후보로 국회의원이나 서울시장이 될 수 없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앞서 신 부위원장의 국민의힘 새시대준비위원회 합류가 근본적 변화의 단초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 변화는 탈이념 실용정치다.
12월 8일 독일 연방하원은 올라프 숄츠 사회민주당 의원을 새로운 총리로 선출했다. 하루 전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 3당이 연립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세 정당은 9월 총선거에서 각각 206석, 118석, 92석을 확보했다. 중도 좌파 정당에 중도 우파 정당까지 이념적으로도 다양할 뿐 아니라, 당색도 다르다. 사회민주당은 빨강, 녹색당은 초록, 자유민주당은 노랑이어서 새 정부는 ‘신호등 연정’으로 불리기도 한다.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에도 이 같은 연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적잖다. 신 부위원장의 변절을 허락해야 하는 이유다.
신 부위원장 사례는 개인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다. 상징적 의미 이상을 갖기 어렵다. 이념을 넘나드는 탈이념 실용정치는 정당 간 연정으로 나타나야 비로소 실질적 의미를 갖는다. 녹색당이나 정의당이 국민의힘과 연정을 구성할 수 있는 시대,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연정에서 녹색당이나 정의당 출신이 환경부 장관과 노동부 장관을 하는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신 부위원장 사례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