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영국엔 날개가 없다.’ 1980년대 대처 정부 이후 금융산업이 성장하면서 런던은 뉴욕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런던 금융 중심지에선 투자은행, 컨설턴트 등 금융 관련 종사자들이 수십만,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며 돈을 물 쓰듯 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말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는 영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금융산업이 무너지자 영국 경제는 뿌리째 흔들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68.6%인 영국의 국가 채무가 5년 뒤에는 100%에 근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업수당 수령자도 1997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었다. 2005년 GDP 순위 세계 4위이던 영국은 2006년과 2008년 각각 중국과 프랑스에 추월당하며 5, 6위로 한 단계씩 밀려났다.
영국 경제가 요동치면서 한국인이 영국에서 취업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2009년 현재 4만5000여 명의 교민이 영국에 거주한다. 이 가운데 시민권자는 3100여 명에 지나지 않고 유학생이 1만8700여 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경제사정 탓에 유학생 대부분이 영국에서 취업할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한다.
지금까지 영국 취업을 희망하는 한국인에게 유망 직종은 단연 IT였다. 이 밖에 수학, 과학, 엔지니어링 분야도 외국인에게 개방돼 있다. 이들 분야에선 오히려 영국인이 소수자다. 특히 IT 쪽은 인도인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인이 과학, 엔지니어링, 수학 등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영국인은 전통적으로 외교관, 회계사, 변호사, 은행가, 언론인을 선호 직업으로 여겼다.
영국 통화인 파운드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돈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임금 수준은 상당히 높다. ‘더 타임스’가 발간한 ‘Top 100 Employers’(2007)에 따르면 2007년에 선정된 기업들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초봉은 2만6400파운드로, 우리 돈으로 50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한다면 급여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런던 시내 1, 2존에 웬만큼 살 만한 방 2개짜리 집을 사려면 최소한 30만 파운드(약 6억원)는 줘야 한다. 세를 얻는다고 해도 한 달에 300~800파운드(약 60만~160만원)를 지불해야 할 만큼 비싸다. 그러니 영국 직장인 사이에선 “세금 내고 모기지 상환하고, 각종 공과금 내면 남는 게 없다”는 불평도 쏟아진다.
영국에서는 보통 한 회사에서 5년 정도 근무한다. 그 이상이 되면 이직을 생각하거나 진급을 통해 다른 직급을 갖는다. 영국에서의 직장생활은 꾸준한 경력 관리가 필수. 회사가 개인에게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회사에 공헌하지 않는 개인을 회사가 무조건 받아주지도 않는다.
런던에서 고용 전문 에이전시 ‘토탈좁스(Totaljobs)’ 선임개발자로 일하는 차영호 씨는 “영국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서도 “최근의 경제위기 탓에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심해지면서 한국인의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막연한 환상 버리고 발로 뛰며 준비하라” ‘EF 런던 오피스’ 애널리스트 김소영
“너무 기뻐서 방에서 콩콩 뛰어다녔답니다.” 최종 인터뷰가 끝난 다음 날, 회사로부터 취업 축하를 받았을 때의 기쁨을 김소영(30)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해외취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영국으로 날아온 지도 1년이 넘었다. 그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통해 해외 취업이 나름의 장단점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자율적인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 일과 삶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는 국내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무엇보다 다국적 문화를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한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나먼 타향에서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죠. 막상 직업을 구하려 해도 선택의 폭이 현지인에 비해 좁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현재 그는 사립어학연수 전문기관 EF 런던 오피스에서 애널리스트(Search Analyst)로 ‘삶의 제2막’을 보내고 있다. 한국 시장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온라인 마케팅 관리가 그의 업무. 각국의 시장 흐름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짜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 오기 전, 이미 그는 서울 강남의 미국 유학생 시험 전문학원에서 토플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안정된 직장과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삶의 제1막’은 탄탄대로였다. 그럼에도 과감히 도전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막연한 동경에서 해외 취업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주변에서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말도 바로 ‘해외 취업에 대한 강력한 확신’이다.
“해외 취업은 준비 과정부터 취업 후 생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전과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집니다. 아무 준비 없이 환상만 갖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죠.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만 낭비할 수 있습니다.”
해외 취업 준비과정은 본인이 직접 정보를 찾고, 알아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료 수집도 국내 취업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인터넷에는 이런저런 자료가 많지만 정작 요긴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해외 취업을 알선하는 사이트도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어요. 결국 www.reed.co.uk 같은 영문 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 해외 취업 때 내가 갖춰야 할 지원자격 요건은 무엇인지, 비자는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보를 얻는 데 몇 달이 걸렸어요.”
현지에 왔을 때도 사전 준비는 계속된다. 일자리에 오퍼를 하고,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옷차림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유형의 시험이 있는지 준비하지 않으면 당황하기 쉽다.
“저는 해외 취업정보사이트에 가입해 그곳에서 오는 메일들을 잘 활용했습니다. 취업정보사이트에서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방법, 옷차림, 피해야 할 표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메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꼼꼼히 읽으며 면접을 준비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씨는 특히 면접과정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기를 것을 주문했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갑자기 작은 시험을 본다고 얘기하더군요. 애널리스트 일에 필요한 기본적인 분석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습니다. Case question이라는 사례시험이었는데,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시험에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동안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써내려갔더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준비는 취업이 되고 난 뒤에도 필요하다. 전혀 다른 문화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했던 만큼 탄탄한 준비과정은 필수.
“행운은 기회의 문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지레 어렵고 안 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뒤따른다면 해외 취업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남은 인생 1/3은 다양한 나라, 1/3은 사랑하는 나라에서” 다국적 석유회사 ‘로열 더치 셀’ 副마케팅 매니저 김수영
“정말 해외 취업 준비가 돼 있고, 실제로 구직을 하는 분만 e메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막연하게 해외 취업을 꿈꾸고 김수영(28) 씨에게 해외 취업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가는 이렇게 면박을 당할 수 있다. 그는 영국 취업을 꿈꿔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사가 됐다. 김씨는 영국 취업 블로그(http://blog.naver. com/cyberelf00)를 운영한다.
하루에 200명도 넘는 누리꾼이 다녀갈 만큼 인기 블로그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쏟아내는 탓에 ‘영국 취업과 생활’이라는 주제로 장문의 글 8개를 게재해놨다. 해외 취업의 장단점, 인터뷰 경험, 비자 문제 등 영국 취업의 ‘A to Z’가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는 ‘로열 더치 셸’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글자 그대로 영국(Royal)과 네덜란드(Dutch)의 합작법인이다.
석유 정제는 물론 시추, 투자, 개발까지 다루는 다국적 석유 메이저 회사다. 그는 무역 IT 분야 인턴십으로 일을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같은 IT 실무는 인도 방갈로르에 있는 아웃소싱 업체가 담당했기에 그는 IT 관련 경영분석 일을 맡았다. 이후 인턴십이 끝난 뒤 셸 측의 취업 제의를 수락했고 노동허가증도 받았다. 현재 그는 마케팅팀에서 부(副)마케팅 매니저(assistant marketing manager)로 일하고 있다.
‘assistant mana-ger’는 대리 정도에 해당하는 직급. 그는 자신의 좌우명인 앙드레 말로의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을 꺼내며 해외 취업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다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엑셀 파일에 정리해봤습니다. 모두 73개나 되더군요. 각각의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제쯤 이루고 싶은지를 점수로 매겨본 다음 가장 중요하고 급한 것부터 정리했습니다. 그러자 대략적인 인생의 로드맵이 보였어요.”
그때 첫 번째 순위로 선택된 것이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구직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의 신입사원 공채에 해당하는 ‘graduate programme’을 인터넷으로 지원했고, 영국에 온 지 두 달째부터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몇몇 리크루팅 에이전시에 등록을 했고, 특정 포지션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커리어 관련 박람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일단은 공부보다 구직에 열중했지요.”
정말 정성을 다해 지원한 회사가 30개에 이를 정도. 이력서만 던진 회사까지 포함하면 50개가 넘었다. 이 중 4곳으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다.
“해외 취업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서 구직할 때도 50군데 이상 기업에 이력서를 써보냈습니다. 대충대충 하면 되리라는 생각은 버려야죠.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진심을 담아서 에세이를 쓰고, 인터뷰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명문대 졸업장 하나만으로도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외국에서는 도통 알아주지를 않으니 몇 번 도전해보다 실패하면 금방 좌절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 이들 중 일부는 자기가 안 되니까 남들도 당연히 안 될 거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김씨는 앞으로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을 떠날 때 ‘인생의 3분의 1은 한국에서 보낸 만큼, 다음 3분의 1은 다양한 나라에서 살다가 마지막 3분의 1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에 자리잡고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년에 영국을 떠나 다른 나라 지사로 옮길 계획인데 남미, 중동 등 다양한 지역에 있는 매니저들과 네트워킹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해외인턴사업 → 해외취업’ 이상적 성공 모델 고용전문 에이전시 ‘토탈좁스(Totaljobs)’ 선임개발자 차영호
“최근 몇 년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한국에서 다시 해외 인턴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도 해외 인턴 파견을 통해 운명이 바뀐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차영호(38) 씨가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할 당시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라 일자리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취업이 뜻대도 되지 않자 IT로 눈을 돌렸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6개월짜리 인터넷 개발교육 강좌에 등록했다.
“전공은 영어지만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습니다. 임시교사로 1년간 학교에서 근무해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탈출구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 무렵 뜨고 있던 IT에 인생의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1999년 KCC 정보통신을 통해 해외 인턴사원으로 영국에 파견됐다. 취업 사정이 어렵다 보니 당시에도 요즘처럼 정부에서 월급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해외인턴 파견사업이 많이 실시됐다. 처음부터 영국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미국을 지원했지만 미국사무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얼떨결에 영국지사로 파견된 것.
처음에는 런던시에서 금융 관련 패키지 유지보수 작업을 맡았다. 이후 삼성SDS 영국법인, 기아자동차 영국법인을 거쳐 2005년부터는 고용전문 에이전시(Recruitment Agency) ‘토탈좁스(Totaljobs)’의 개발팀에서 선임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직장 구하기가 힘들지,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자신의 조건에 맞는 직업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삼성SDS 영국법인부터는 스스로 직장을 구한 경우고요.”
그처럼 바쁘게 살다 보니 영국에 온 지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개발자로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고 자평한다. 무엇보다 그는 영국 기업들의 ‘기술자 우대문화’가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이 개발업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싫어도 매니저 자리를 떠맡아야 하는 한국에서와 달리, 이곳에선 나이가 많다고 어쩔 수 없이 매니저가 된다는 인식은 없다.
“제가 우리 나이로 곧 마흔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개발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제 나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아무도 묻지 않죠.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거든요. 해외에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합니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대우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생각만큼 심각하지는 않더라고 한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전반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있으며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차별을 방지하는 다양한 대안이 마련돼 있다. 직장에서의 성별, 연령, 인종에 대한 여러 규정이 잘 법제화돼 있고, 이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보고서들이 매년 관련기관에서 출판된다.
“영국, 특히 런던에는 영국인보다 외국인 비율이 높은 분야가 많아 기본적으로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외국인들이 소수자지만, 산업에 따라선 영국인들이 소수인 경우도 있습니다. IT가 대표적이죠. IT는 인도인이 주류를 이룹니다. 제가 일하는 기술개발 파트에서도 중국인 4명, 한국인 1명, 인도인 3명 등 동양인이 주류이고 영국인이 오히려 마이너입니다.”
영어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취업에 필요한 영어라면 일반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된다. 차씨는 영국식 발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BBC Learning English 웹사이트를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
“어쩌면 이제 영국에서, 특히 런던에서 영국 영어는 소수가 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워낙 국제적인 도시이다 보니 세계 각지 사람들이 모여들거든요. 각양각색의 발음이 있는 만큼 한국식 발음을 창피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언어 및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마세요.”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2007년 말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는 영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다. 금융산업이 무너지자 영국 경제는 뿌리째 흔들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68.6%인 영국의 국가 채무가 5년 뒤에는 100%에 근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업수당 수령자도 1997년 이후 처음으로 200만명을 넘었다. 2005년 GDP 순위 세계 4위이던 영국은 2006년과 2008년 각각 중국과 프랑스에 추월당하며 5, 6위로 한 단계씩 밀려났다.
영국 경제가 요동치면서 한국인이 영국에서 취업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2009년 현재 4만5000여 명의 교민이 영국에 거주한다. 이 가운데 시민권자는 3100여 명에 지나지 않고 유학생이 1만8700여 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경제사정 탓에 유학생 대부분이 영국에서 취업할 꿈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한다.
지금까지 영국 취업을 희망하는 한국인에게 유망 직종은 단연 IT였다. 이 밖에 수학, 과학, 엔지니어링 분야도 외국인에게 개방돼 있다. 이들 분야에선 오히려 영국인이 소수자다. 특히 IT 쪽은 인도인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영국인이 과학, 엔지니어링, 수학 등을 기피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영국인은 전통적으로 외교관, 회계사, 변호사, 은행가, 언론인을 선호 직업으로 여겼다.
영국 통화인 파운드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돈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영국의 임금 수준은 상당히 높다. ‘더 타임스’가 발간한 ‘Top 100 Employers’(2007)에 따르면 2007년에 선정된 기업들의 대졸 신입사원 평균 초봉은 2만6400파운드로, 우리 돈으로 500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살인적인 물가를 고려한다면 급여는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런던 시내 1, 2존에 웬만큼 살 만한 방 2개짜리 집을 사려면 최소한 30만 파운드(약 6억원)는 줘야 한다. 세를 얻는다고 해도 한 달에 300~800파운드(약 60만~160만원)를 지불해야 할 만큼 비싸다. 그러니 영국 직장인 사이에선 “세금 내고 모기지 상환하고, 각종 공과금 내면 남는 게 없다”는 불평도 쏟아진다.
영국에서는 보통 한 회사에서 5년 정도 근무한다. 그 이상이 되면 이직을 생각하거나 진급을 통해 다른 직급을 갖는다. 영국에서의 직장생활은 꾸준한 경력 관리가 필수. 회사가 개인에게 무조건 희생을 요구하지도 않지만, 회사에 공헌하지 않는 개인을 회사가 무조건 받아주지도 않는다.
런던에서 고용 전문 에이전시 ‘토탈좁스(Totaljobs)’ 선임개발자로 일하는 차영호 씨는 “영국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다”면서도 “최근의 경제위기 탓에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심해지면서 한국인의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진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막연한 환상 버리고 발로 뛰며 준비하라” ‘EF 런던 오피스’ 애널리스트 김소영
“너무 기뻐서 방에서 콩콩 뛰어다녔답니다.” 최종 인터뷰가 끝난 다음 날, 회사로부터 취업 축하를 받았을 때의 기쁨을 김소영(30) 씨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가 해외취업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영국으로 날아온 지도 1년이 넘었다. 그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통해 해외 취업이 나름의 장단점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자율적인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 일과 삶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문화는 국내에선 경험할 수 없었던 부분이다. 무엇보다 다국적 문화를 경험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힐 수 있다는 게 좋았다고 한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머나먼 타향에서 가족, 친구들과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것부터가 쉬운 일은 아니죠. 막상 직업을 구하려 해도 선택의 폭이 현지인에 비해 좁다는 것도 단점이고요.”
현재 그는 사립어학연수 전문기관 EF 런던 오피스에서 애널리스트(Search Analyst)로 ‘삶의 제2막’을 보내고 있다. 한국 시장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온라인 마케팅 관리가 그의 업무. 각국의 시장 흐름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짜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영국에 오기 전, 이미 그는 서울 강남의 미국 유학생 시험 전문학원에서 토플 강사로 이름을 날렸다.
안정된 직장과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삶의 제1막’은 탄탄대로였다. 그럼에도 과감히 도전을 선택했다. 그렇다고 막연한 동경에서 해외 취업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가 주변에서 해외 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말도 바로 ‘해외 취업에 대한 강력한 확신’이다.
“해외 취업은 준비 과정부터 취업 후 생활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도전과 자신과의 싸움이 이어집니다. 아무 준비 없이 환상만 갖고 나가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죠.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만 낭비할 수 있습니다.”
해외 취업 준비과정은 본인이 직접 정보를 찾고, 알아봐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료 수집도 국내 취업보다 몇 배는 더 힘들다. 인터넷에는 이런저런 자료가 많지만 정작 요긴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해외 취업을 알선하는 사이트도 있었지만 제가 원하는 일자리는 거의 없었어요. 결국 www.reed.co.uk 같은 영문 사이트에 들어가봤습니다. 해외 취업 때 내가 갖춰야 할 지원자격 요건은 무엇인지, 비자는 어떻게 신청해야 하는지 등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보를 얻는 데 몇 달이 걸렸어요.”
현지에 왔을 때도 사전 준비는 계속된다. 일자리에 오퍼를 하고,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옷차림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유형의 시험이 있는지 준비하지 않으면 당황하기 쉽다.
“저는 해외 취업정보사이트에 가입해 그곳에서 오는 메일들을 잘 활용했습니다. 취업정보사이트에서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방법, 옷차림, 피해야 할 표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메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꼼꼼히 읽으며 면접을 준비한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씨는 특히 면접과정에서는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기를 것을 주문했다.
“면접을 보러 갔는데 갑자기 작은 시험을 본다고 얘기하더군요. 애널리스트 일에 필요한 기본적인 분석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었습니다. Case question이라는 사례시험이었는데,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지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시험에 당황했습니다. 하지만 곧 그동안 준비한 것을 바탕으로 차분하게 써내려갔더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준비는 취업이 되고 난 뒤에도 필요하다. 전혀 다른 문화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했던 만큼 탄탄한 준비과정은 필수.
“행운은 기회의 문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지레 어렵고 안 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고,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 뒤따른다면 해외 취업은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올 것입니다.”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남은 인생 1/3은 다양한 나라, 1/3은 사랑하는 나라에서” 다국적 석유회사 ‘로열 더치 셀’ 副마케팅 매니저 김수영
“정말 해외 취업 준비가 돼 있고, 실제로 구직을 하는 분만 e메일 보내시기 바랍니다.”
막연하게 해외 취업을 꿈꾸고 김수영(28) 씨에게 해외 취업에 대한 질문을 건넸다가는 이렇게 면박을 당할 수 있다. 그는 영국 취업을 꿈꿔본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사가 됐다. 김씨는 영국 취업 블로그(http://blog.naver. com/cyberelf00)를 운영한다.
하루에 200명도 넘는 누리꾼이 다녀갈 만큼 인기 블로그다. 많은 사람이 똑같은 질문을 쏟아내는 탓에 ‘영국 취업과 생활’이라는 주제로 장문의 글 8개를 게재해놨다. 해외 취업의 장단점, 인터뷰 경험, 비자 문제 등 영국 취업의 ‘A to Z’가 모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씨는 ‘로열 더치 셸’에서 4년째 일하고 있다. 이 회사는 글자 그대로 영국(Royal)과 네덜란드(Dutch)의 합작법인이다.
석유 정제는 물론 시추, 투자, 개발까지 다루는 다국적 석유 메이저 회사다. 그는 무역 IT 분야 인턴십으로 일을 시작했다. 프로그래밍 같은 IT 실무는 인도 방갈로르에 있는 아웃소싱 업체가 담당했기에 그는 IT 관련 경영분석 일을 맡았다. 이후 인턴십이 끝난 뒤 셸 측의 취업 제의를 수락했고 노동허가증도 받았다. 현재 그는 마케팅팀에서 부(副)마케팅 매니저(assistant marketing manager)로 일하고 있다.
‘assistant mana-ger’는 대리 정도에 해당하는 직급. 그는 자신의 좌우명인 앙드레 말로의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그 꿈을 닮아간다’는 말을 꺼내며 해외 취업을 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다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엑셀 파일에 정리해봤습니다. 모두 73개나 되더군요. 각각의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언제쯤 이루고 싶은지를 점수로 매겨본 다음 가장 중요하고 급한 것부터 정리했습니다. 그러자 대략적인 인생의 로드맵이 보였어요.”
그때 첫 번째 순위로 선택된 것이 한국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구직활동에 들어갔다. 한국의 신입사원 공채에 해당하는 ‘graduate programme’을 인터넷으로 지원했고, 영국에 온 지 두 달째부터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몇몇 리크루팅 에이전시에 등록을 했고, 특정 포지션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커리어 관련 박람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일단은 공부보다 구직에 열중했지요.”
정말 정성을 다해 지원한 회사가 30개에 이를 정도. 이력서만 던진 회사까지 포함하면 50개가 넘었다. 이 중 4곳으로부터 취업 제의를 받았다.
“해외 취업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서 구직할 때도 50군데 이상 기업에 이력서를 써보냈습니다. 대충대충 하면 되리라는 생각은 버려야죠.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진심을 담아서 에세이를 쓰고, 인터뷰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해외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까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명문대 졸업장 하나만으로도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외국에서는 도통 알아주지를 않으니 몇 번 도전해보다 실패하면 금방 좌절하는 이가 적지 않다는 것. 이들 중 일부는 자기가 안 되니까 남들도 당연히 안 될 거라고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기도 한다.
김씨는 앞으로도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을 것이라고 한다.
“한국을 떠날 때 ‘인생의 3분의 1은 한국에서 보낸 만큼, 다음 3분의 1은 다양한 나라에서 살다가 마지막 3분의 1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라에 자리잡고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내년에 영국을 떠나 다른 나라 지사로 옮길 계획인데 남미, 중동 등 다양한 지역에 있는 매니저들과 네트워킹을 하면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찾아볼 생각입니다.”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해외인턴사업 → 해외취업’ 이상적 성공 모델 고용전문 에이전시 ‘토탈좁스(Totaljobs)’ 선임개발자 차영호
“최근 몇 년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한국에서 다시 해외 인턴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저도 해외 인턴 파견을 통해 운명이 바뀐 경우라고 할 수 있지요.”
차영호(38) 씨가 고려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할 당시는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때라 일자리 구하기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였다. 취업이 뜻대도 되지 않자 IT로 눈을 돌렸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6개월짜리 인터넷 개발교육 강좌에 등록했다.
“전공은 영어지만 어릴 때부터 컴퓨터를 좋아했습니다. 임시교사로 1년간 학교에서 근무해보기도 했지만 좀처럼 탈출구가 보이지 않더군요. 그 무렵 뜨고 있던 IT에 인생의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교육지원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1999년 KCC 정보통신을 통해 해외 인턴사원으로 영국에 파견됐다. 취업 사정이 어렵다 보니 당시에도 요즘처럼 정부에서 월급의 일정 부분을 지원하는 해외인턴 파견사업이 많이 실시됐다. 처음부터 영국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원래는 미국을 지원했지만 미국사무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얼떨결에 영국지사로 파견된 것.
처음에는 런던시에서 금융 관련 패키지 유지보수 작업을 맡았다. 이후 삼성SDS 영국법인, 기아자동차 영국법인을 거쳐 2005년부터는 고용전문 에이전시(Recruitment Agency) ‘토탈좁스(Totaljobs)’의 개발팀에서 선임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다.
“처음 직장 구하기가 힘들지,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면 자신의 조건에 맞는 직업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저 또한 삼성SDS 영국법인부터는 스스로 직장을 구한 경우고요.”
그처럼 바쁘게 살다 보니 영국에 온 지도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개발자로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았다고 자평한다. 무엇보다 그는 영국 기업들의 ‘기술자 우대문화’가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자신이 개발업무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싫어도 매니저 자리를 떠맡아야 하는 한국에서와 달리, 이곳에선 나이가 많다고 어쩔 수 없이 매니저가 된다는 인식은 없다.
“제가 우리 나이로 곧 마흔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개발하는 일이 즐겁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제 나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아무도 묻지 않죠.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거든요. 해외에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합니다.”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대우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니 생각만큼 심각하지는 않더라고 한다. 물론 어느 사회에나 전반적으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있으며 영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차별을 방지하는 다양한 대안이 마련돼 있다. 직장에서의 성별, 연령, 인종에 대한 여러 규정이 잘 법제화돼 있고, 이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보고서들이 매년 관련기관에서 출판된다.
“영국, 특히 런던에는 영국인보다 외국인 비율이 높은 분야가 많아 기본적으로 다인종, 다문화가 공존하는 사회입니다. 전체적으로는 외국인들이 소수자지만, 산업에 따라선 영국인들이 소수인 경우도 있습니다. IT가 대표적이죠. IT는 인도인이 주류를 이룹니다. 제가 일하는 기술개발 파트에서도 중국인 4명, 한국인 1명, 인도인 3명 등 동양인이 주류이고 영국인이 오히려 마이너입니다.”
영어도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취업에 필요한 영어라면 일반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된다. 차씨는 영국식 발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BBC Learning English 웹사이트를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
“어쩌면 이제 영국에서, 특히 런던에서 영국 영어는 소수가 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워낙 국제적인 도시이다 보니 세계 각지 사람들이 모여들거든요. 각양각색의 발음이 있는 만큼 한국식 발음을 창피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언어 및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은 잊지 마세요.”
런던=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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