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자 위에 등나무로 짠 꽃병 하나. 그리고 꽃병에 듬뿍 꽂힌 꽃들. 브뤼겔의 그림에는 뾰족한 게 없다. 그게 전부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비극적이지도, 헤라클레스의 용맹처럼 호쾌하지도 않다. 그림 속에 성서나 신화의 사연 한 갈피쯤 끼워두었으면 얼마나 흥미진진했을까? 그러나 탁자 위에 덩그러니 놓인 꽃병에는 호기심을 끌 만한 건덕지가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17세기는 잘 알려진 대로 바로크 시대다. 사람의 영혼을 마구 휘젓고 보는 이의 눈물을 쏙 빼는 감동구조가 미술의 영토에도 미친 바람처럼 몰아치던 때였다. 그런데 한가롭기 짝이 없는 꽃 그림이나 붙들고 앉아 있는 건 무슨 심사였을까? 네덜란드 화가들이 특히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번듯한 내용이나 줄거리가 없기 때문에 괄시를 면치 못하던 풍경화나 정물화에 한사코 매달렸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꽃삽 든 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미술의 텃밭을 가꾸는 일에만 열을 올렸다.
그런 고집쟁이 화가들 가운데 브뢰겔이 가장 악착같았다. ‘꽃 브뢰겔’이라는 별스런 예명을 얻는가 하면, 자연의 기적을 어찌나 감쪽같이 흉내내는지 진짜 자연의 어머니가 질투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브뢰겔이 가꾼 꽃은 종류도 가지가지다. 길섶 언저리 아무 데서나 발길에 채이는 못난이 들꽃부터 숙련된 정원사의 손끝에서 어렵사리 탄생한 희귀 품종까지 100가지가 넘는다. 못 보던 꽃이 있다는 소문에 브뤼셀 대공의 정원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니까 브뢰겔도 정성이 단단히 뻗쳤다. 이런 꽃들이 그림 속에 들어앉아 저마다 때깔을 자랑하며 와글와글 웃음소리가 시끄럽다. 그림 바탕에 검은 속옷을 짙게 깔고 요염 떠는 자태들이 자못 화사하다.
브뤼겔이 그린 꽃들은 다 어디서 온 걸까? 한 세기 전만 해도 그림의 꽃 향기는 이처럼 방장하지 않았다. 고작해야 천사와 마리아의 만남 장면에서 성처녀의 순결을 상징하는 물병 속의 흰 백합 두어 송이가 고작이었다. 아니면 성모자가 휴식하는 천상의 정원에 목책을 타고 오르는 붉은 장미나 딸기꽃 정도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브뢰겔은 뜻 모를 상징과 심각한 꽃말 따위는 개의치 않고 세상 꽃들을 죄다 꺾어다가 자신의 꽃병에 쓸어 담았다.
고대 신화는 잘 알려진 대로 인간의 운명에 아름답고 슬픈 꽃말들을 씌우기 좋아했다. 연못에 비친 제 얼굴에 반해 죽은 나르시스의 수선화는 원래 연인의 무덤을 수놓던 무덤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바람 한 자락 부는 동안 피었다 스러지는 바람꽃 아네모네도 사랑의 여신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미소년 아도니스의 차가운 주검에서 피어났다고 전한다.
사연이 많기는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꽃 한 송이마다 교훈과 덕목의 세례를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마리아의 순결과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설명하는 백합, 원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상징 꽃이었다가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종교적 헌신과 순교의 의미를 얻게 된 장미, 또 날카로운 꽃잎의 끝자락이 십자가의 쇠못을 닮았다고 해서 수난과 대속을 뜻하게 된 카네이션, 한밤에 남몰래 핀다고 못된 악의 꽃으로 손가락질받았던 양귀비, 아침 첫 햇살을 반기는 착한 덕목의 상징 나팔꽃 등이 정물화마다 안 빠지고 얼굴을 내밀었다.
브뢰겔의 꽃병에도 꼭대기 왕관초를 위시해 임금백합, 작약, 앵초, 물망초, 아네모네, 장미, 붓꽃, 매발톱, 수선화 따위가 제멋에 겨워 제 잘난 이름들을 뽐낸다. 물론 튤립도 빠지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꽃잎에 그림자가 진다거나 남의 어깨 뒤에 숨는 법 없이 목들을 길게 뽑고 절정의 자태를 뻐긴다. 색깔과 모양새가 저마다 다른 천방지축들을 이처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는 걸 보면 화가의 꽃꽂이 솜씨도 보통이 넘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꽃들을 가만히 보면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꽃들은 한철 꽃이 아니다. 밤과 낮, 봄과 가을을 가려 따로 피는 꽃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웬일일까? 1611년 4월22일에 쓴 브뢰겔의 편지는 그의 작업 방식을 잘 설명한다.
“꽃 그림은 그리기가 퍽 까다롭다… 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려야지, 소묘나 유화로 밑그림을 그려보아야 소용없다. 꽃은 사철 피는 종류를 다 챙긴다. 세상에 없는 꽃을 지어내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한자리에 조심스레 모아야 한다.”
브뢰겔은 투명하고 촘촘한 시간의 그물을 계절의 바다에 던진다. 그리고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기억 속에 챙겨두었다가 예술의 영토에다 부린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꽃을 억지로 지어내지는 않았다. 꽃씨를 어루만져 꽃잎을 피워낸 것은 계절의 순행을 굴리는 자연의 몫이다. 그러나 꽃잎이 벌어지기를 기다려 영감의 흙삽과 상상력의 가위로 다듬어 한 묶음의 예술로 갈무리한 것은 누가 뭐래도 화가의 재능이다.
브뢰겔의 그림에는 17세기 자연과학이 허용하는 세상 모든 화훼의 지식이 한바탕 흐드러졌다. 꽃병 아래쪽부터 올망졸망 머리를 내미는 꽃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탐스럽고 풍만하게 입술을 벌린다. 상징 가치의 체계에 따라 분류된 식물학적 의미론의 계보가 꽃가루 알갱이 하나도 흘리지 않는 자연 관찰과 바로크적 수집 취미를 좇아 망라되었다.
화가의 붓은 예술의 영토에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과 같아 자연이 모르는 기적의 현장, 현실을 넘어선 은유의 풍경, 시간의 지배가 닿지 못하는 평면 속 공간에다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눈부신 또 하나의 기적을 피워낸다. 한해살이 꽃들에게 시들지 않는 불멸의 영혼을 선사한 것이다.
그러나 그뿐일까? 브뢰겔의 향기에 넋을 잃는 순간 꽃잎 사이에서 벌레들이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나비와 풀벌레는 그림 속 꽃 향기의 유인을 견디지 못하고 그림 바깥으로부터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벌레들은 자연주의 미술의 제단에 헌정된 자연의 번제물일까? 또는 달콤한 삶의 유혹에 탐닉하는 하루살이 인생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허물을 벗고 변태하는 곤충의 일생에 빗대어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의 희망을 설교하는 걸까? 세비야의 이시도루스도 번데기가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고 나비를 부활의 상징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처럼 벌레들은 식물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을 같이 준다. 꽃과 벌레의 병치는 어떻게 보면 해골을 베개 삼고 누운 어린 아기의 대비처럼 무상하고 극적이다. 식물의 번식과 생장에도 요긴하지만, 죽음과 부패를 앞당기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심지어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모든 꽃 정물은 죽음의 비유’라고 단정한다. 쉬이 피고 금세 지는 인간의 삶이 꽃병 그림 속에 한 묶음 담겨 있다는 것이다. 브뢰겔도 비슷한 생각을 시구에 담아 그림에다 써넣은 적이 있었다.
“그대는 눈앞의 아름다운 꽃들을 쳐다보는가
꽃들은 햇살 아래 허무하게 시들고 만다네
이 세상 소중한 것들은 한바탕 꿈일 뿐
차라리 시들지 않는 주님 말씀에 귀기울이는 게 어떠리”
17세기는 잘 알려진 대로 바로크 시대다. 사람의 영혼을 마구 휘젓고 보는 이의 눈물을 쏙 빼는 감동구조가 미술의 영토에도 미친 바람처럼 몰아치던 때였다. 그런데 한가롭기 짝이 없는 꽃 그림이나 붙들고 앉아 있는 건 무슨 심사였을까? 네덜란드 화가들이 특히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번듯한 내용이나 줄거리가 없기 때문에 괄시를 면치 못하던 풍경화나 정물화에 한사코 매달렸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꽃삽 든 팔 소매를 걷어붙이고 미술의 텃밭을 가꾸는 일에만 열을 올렸다.
그런 고집쟁이 화가들 가운데 브뢰겔이 가장 악착같았다. ‘꽃 브뢰겔’이라는 별스런 예명을 얻는가 하면, 자연의 기적을 어찌나 감쪽같이 흉내내는지 진짜 자연의 어머니가 질투한다는 말까지 들었다. 브뢰겔이 가꾼 꽃은 종류도 가지가지다. 길섶 언저리 아무 데서나 발길에 채이는 못난이 들꽃부터 숙련된 정원사의 손끝에서 어렵사리 탄생한 희귀 품종까지 100가지가 넘는다. 못 보던 꽃이 있다는 소문에 브뤼셀 대공의 정원까지 찾아간 적도 있었다니까 브뢰겔도 정성이 단단히 뻗쳤다. 이런 꽃들이 그림 속에 들어앉아 저마다 때깔을 자랑하며 와글와글 웃음소리가 시끄럽다. 그림 바탕에 검은 속옷을 짙게 깔고 요염 떠는 자태들이 자못 화사하다.
피터 홀스테인 2세<br> '셈퍼 아우구스투스'
고대 신화는 잘 알려진 대로 인간의 운명에 아름답고 슬픈 꽃말들을 씌우기 좋아했다. 연못에 비친 제 얼굴에 반해 죽은 나르시스의 수선화는 원래 연인의 무덤을 수놓던 무덤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바람 한 자락 부는 동안 피었다 스러지는 바람꽃 아네모네도 사랑의 여신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미소년 아도니스의 차가운 주검에서 피어났다고 전한다.
사연이 많기는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다. 꽃 한 송이마다 교훈과 덕목의 세례를 주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마리아의 순결과 동정녀 탄생의 신비를 설명하는 백합, 원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상징 꽃이었다가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종교적 헌신과 순교의 의미를 얻게 된 장미, 또 날카로운 꽃잎의 끝자락이 십자가의 쇠못을 닮았다고 해서 수난과 대속을 뜻하게 된 카네이션, 한밤에 남몰래 핀다고 못된 악의 꽃으로 손가락질받았던 양귀비, 아침 첫 햇살을 반기는 착한 덕목의 상징 나팔꽃 등이 정물화마다 안 빠지고 얼굴을 내밀었다.
브뢰겔의 꽃병에도 꼭대기 왕관초를 위시해 임금백합, 작약, 앵초, 물망초, 아네모네, 장미, 붓꽃, 매발톱, 수선화 따위가 제멋에 겨워 제 잘난 이름들을 뽐낸다. 물론 튤립도 빠지지 않는다. 어느 것 하나 꽃잎에 그림자가 진다거나 남의 어깨 뒤에 숨는 법 없이 목들을 길게 뽑고 절정의 자태를 뻐긴다. 색깔과 모양새가 저마다 다른 천방지축들을 이처럼 하나의 화폭에 담아내는 걸 보면 화가의 꽃꽂이 솜씨도 보통이 넘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꽃들을 가만히 보면 이상한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 꽃들은 한철 꽃이 아니다. 밤과 낮, 봄과 가을을 가려 따로 피는 꽃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웬일일까? 1611년 4월22일에 쓴 브뢰겔의 편지는 그의 작업 방식을 잘 설명한다.
“꽃 그림은 그리기가 퍽 까다롭다… 꽃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그려야지, 소묘나 유화로 밑그림을 그려보아야 소용없다. 꽃은 사철 피는 종류를 다 챙긴다. 세상에 없는 꽃을 지어내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 한자리에 조심스레 모아야 한다.”
브뢰겔은 투명하고 촘촘한 시간의 그물을 계절의 바다에 던진다. 그리고 꽃들이 피고 지는 모습을 기억 속에 챙겨두었다가 예술의 영토에다 부린다. 그러나 세상에 없는 꽃을 억지로 지어내지는 않았다. 꽃씨를 어루만져 꽃잎을 피워낸 것은 계절의 순행을 굴리는 자연의 몫이다. 그러나 꽃잎이 벌어지기를 기다려 영감의 흙삽과 상상력의 가위로 다듬어 한 묶음의 예술로 갈무리한 것은 누가 뭐래도 화가의 재능이다.
브뢰겔의 그림에는 17세기 자연과학이 허용하는 세상 모든 화훼의 지식이 한바탕 흐드러졌다. 꽃병 아래쪽부터 올망졸망 머리를 내미는 꽃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탐스럽고 풍만하게 입술을 벌린다. 상징 가치의 체계에 따라 분류된 식물학적 의미론의 계보가 꽃가루 알갱이 하나도 흘리지 않는 자연 관찰과 바로크적 수집 취미를 좇아 망라되었다.
요한네스 바르스<br> '벽감 속의 꽃병'
그러나 그뿐일까? 브뢰겔의 향기에 넋을 잃는 순간 꽃잎 사이에서 벌레들이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나비와 풀벌레는 그림 속 꽃 향기의 유인을 견디지 못하고 그림 바깥으로부터 스며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벌레들은 자연주의 미술의 제단에 헌정된 자연의 번제물일까? 또는 달콤한 삶의 유혹에 탐닉하는 하루살이 인생에 대한 경고일까? 아니면 허물을 벗고 변태하는 곤충의 일생에 빗대어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의 희망을 설교하는 걸까? 세비야의 이시도루스도 번데기가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보고 나비를 부활의 상징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이처럼 벌레들은 식물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을 같이 준다. 꽃과 벌레의 병치는 어떻게 보면 해골을 베개 삼고 누운 어린 아기의 대비처럼 무상하고 극적이다. 식물의 번식과 생장에도 요긴하지만, 죽음과 부패를 앞당기기도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심지어 미술사학자 곰브리치는 ‘모든 꽃 정물은 죽음의 비유’라고 단정한다. 쉬이 피고 금세 지는 인간의 삶이 꽃병 그림 속에 한 묶음 담겨 있다는 것이다. 브뢰겔도 비슷한 생각을 시구에 담아 그림에다 써넣은 적이 있었다.
“그대는 눈앞의 아름다운 꽃들을 쳐다보는가
꽃들은 햇살 아래 허무하게 시들고 만다네
이 세상 소중한 것들은 한바탕 꿈일 뿐
차라리 시들지 않는 주님 말씀에 귀기울이는 게 어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