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함께 세계 최고 문명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이집트 문명을 상징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피라미드다. 피라미드에는 사후 세계를 중시하는 이집트 문화가 담겼다. 마찬가지로 이집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와인이다. 이집트 와인이 와인사(史)에 큰 족적을 남겼고, 내세에 대한 그들의 인식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 피라미드처럼 내세를 대비한 문화가 발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지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천혜의 방어막’이 외세 침입을 막아준 만큼 사후 세계에 관심을 쏟을 만한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왼쪽으로는 사하라 사막, 오른쪽으로는 홍해, 그리고 나일강이 이집트를 지켜줬다. 현세가 안정되다 보니 사후 세계를 고민할 여력이 있었던 셈이다.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헤로도토스의 말처럼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을 이용한 농업이 성했다. 나일강을 잘 다루기 위해 촌락의 통합이 이뤄지기도 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하면 유실된 땅만큼 세금을 면제해줬다. 이를 위해 유실된 땅 면적을 계산하는 법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도형 계산법이 발달했다. 이것이 기하학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기하학과 더불어 수학이 발전하다 보니 건축 기술이 향상됐고, 피라미드 같은 거대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는 와인 역사에서 지분이 크다. 조지아·아르메니아·수메르 문명과 달리 벽화와 파피루스를 통해 와인 제조법을 남겼다. 여기에는 포도를 따는 모습부터 발로 으깨는 과정은 물론, 착즙·저장·발효 과정까지 담겼다. 특히 기원전 14세기 투트모세 4세의 천문관 나크트 묘에 그려진 벽화에는 와인 양조 공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포도를 수확하고 밟아 착즙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착즙된 포도즙은 암포라라는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킨 뒤 저장한다. 오늘날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암포라에는 와인의 양조 연도, 품질, 책임자, 와이너리 책임자 등이 기재됐다. 현대 와인의 라벨 제도와 유사한 시스템이 고대 이집트에도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와인 문화는 어땠을까. 이집트에서 와인은 철저히 종교적 의미를 지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와인은 신들과 싸우던 선조들의 피였고, 그들이 대지로 돌아온다. 그 증표로 태어난 것이 포도이며, 그 포도로 만든 와인은 선조들의 피다. 와인을 마시면 선조들의 피로 충만해지고, 죽은 사자 및 신과 교류한다.”
와인은 고대 이집트 생활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레드 와인을 선조들의 피라고 여겼고, 와인을 마시면 선조들의 피로 충만해진다고 봤다. 이 때문에 피와 색깔이 유사한 레드 와인이 이집트에서는 주류였다. 종교와 와인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당연히 와인의 신도 있었다. 바로 대지의 신 게브의 아들 ‘오시리스’다. 영화 ‘갓 오브 이집트’에도 등장하는 이 신은 농업과 부활의 신인 동시에 와인의 신이다. 포도를 재배하고 이를 이용해 와인을 담근 최초의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오시리스는 기후·토양이 와인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보리를 빚어 맥주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이에 고대 이집트 백성은 그를 양식을 제공하는 자로 여기며 신으로 숭배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 파라오는 자신이 오시리스의 후계자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오시리스는 남동생 세트의 계략에 빠져 죽고, 몸이 14개로 조각나 나일강에 뿌려진다. 그는 결국 부활해 지하 세계의 왕이 되는데, 이 역시 와인 원료인 포도와 맞닿은 지점이 있다. 포도는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식물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집트는 사막 기후로 물이 부족하고 모래가 많다. 땅에 양분이 적은 편이다 보니 이집트의 포도나무는 살아남고자 뿌리를 땅속 깊은 곳까지 내리게 됐다. 세상 모든 식물은 땅 위에서 사라졌다가 땅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캄캄한 땅속에서 새싹이 움트는 모습은 부활을 떠올리게 한다.
오시리스의 몸이 14개 조각으로 나뉘는 것이 파종을 뜻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4개 조각으로 나뉜 그의 몸을 씨앗으로 해석한 것이다. 오시리스는 농업과 연관된 신인 만큼 피부도 녹색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두고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박혁거세는 몸이 5개 조각으로 나뉘어 땅에 묻혔다고 한다. 이에 박혁거세는 오곡 및 파종, 나아가 농경의 신으로 여겨진다. 이역만리 이집트 신과 박혁거세 사이에 유사점이 관찰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역시 인류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와인은 신들과 싸우던 선조들 피”
투트모세 4세의 천문관 나크트 묘 벽화에 와인 양조 공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위키피디아]
“이집트는 나일강의 선물”이라는 헤로도토스의 말처럼 고대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범람을 이용한 농업이 성했다. 나일강을 잘 다루기 위해 촌락의 통합이 이뤄지기도 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범람하면 유실된 땅만큼 세금을 면제해줬다. 이를 위해 유실된 땅 면적을 계산하는 법이 필요했고, 자연스레 도형 계산법이 발달했다. 이것이 기하학의 기원이 됐다고 한다. 기하학과 더불어 수학이 발전하다 보니 건축 기술이 향상됐고, 피라미드 같은 거대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고대 이집트는 와인 역사에서 지분이 크다. 조지아·아르메니아·수메르 문명과 달리 벽화와 파피루스를 통해 와인 제조법을 남겼다. 여기에는 포도를 따는 모습부터 발로 으깨는 과정은 물론, 착즙·저장·발효 과정까지 담겼다. 특히 기원전 14세기 투트모세 4세의 천문관 나크트 묘에 그려진 벽화에는 와인 양조 공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이 포도를 수확하고 밟아 착즙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착즙된 포도즙은 암포라라는 항아리에 담아 발효시킨 뒤 저장한다. 오늘날 와인을 만드는 과정과 매우 유사하다. 암포라에는 와인의 양조 연도, 품질, 책임자, 와이너리 책임자 등이 기재됐다. 현대 와인의 라벨 제도와 유사한 시스템이 고대 이집트에도 있었던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와인 문화는 어땠을까. 이집트에서 와인은 철저히 종교적 의미를 지녔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루타르코스의 ‘윤리론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와인은 신들과 싸우던 선조들의 피였고, 그들이 대지로 돌아온다. 그 증표로 태어난 것이 포도이며, 그 포도로 만든 와인은 선조들의 피다. 와인을 마시면 선조들의 피로 충만해지고, 죽은 사자 및 신과 교류한다.”
와인은 고대 이집트 생활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집트 사람들은 레드 와인을 선조들의 피라고 여겼고, 와인을 마시면 선조들의 피로 충만해진다고 봤다. 이 때문에 피와 색깔이 유사한 레드 와인이 이집트에서는 주류였다. 종교와 와인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당연히 와인의 신도 있었다. 바로 대지의 신 게브의 아들 ‘오시리스’다. 영화 ‘갓 오브 이집트’에도 등장하는 이 신은 농업과 부활의 신인 동시에 와인의 신이다. 포도를 재배하고 이를 이용해 와인을 담근 최초의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오시리스는 기후·토양이 와인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보리를 빚어 맥주를 만들게 했다고 한다. 이에 고대 이집트 백성은 그를 양식을 제공하는 자로 여기며 신으로 숭배했다고 전해진다. 이집트 파라오는 자신이 오시리스의 후계자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오시리스와 박혁거세의 공통점
이집트 신 오시리스. [위키피디아]
오시리스의 몸이 14개 조각으로 나뉘는 것이 파종을 뜻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14개 조각으로 나뉜 그의 몸을 씨앗으로 해석한 것이다. 오시리스는 농업과 연관된 신인 만큼 피부도 녹색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두고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박혁거세는 몸이 5개 조각으로 나뉘어 땅에 묻혔다고 한다. 이에 박혁거세는 오곡 및 파종, 나아가 농경의 신으로 여겨진다. 이역만리 이집트 신과 박혁거세 사이에 유사점이 관찰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역시 인류는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