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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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차이나 쇼크’ 막아라…美, 중국산 제품에 관세 폭탄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미국 핵심 산업 기반 위협당하자 승부수 던져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4-05-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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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 자유화를 통한 전 세계적인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다. WTO 회원국은 1995년 1월 1일 출범 당시 128개국이었지만 현재 166개국으로 늘어났다. WTO 회원국 간 교역은 전 세계 교역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첨단산업서 맞붙은 美·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뉴시스]

    미국은 그동안 WTO를 주도하면서 각국에 자유무역과 공정경쟁을 강조해왔고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적극 지원했다. 미국은 중국이 WTO에 가입해 자유무역과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면 자국과 세계경제에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산주의 체제인 중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미국처럼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중국은 WTO에 가입한 후 저렴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공장’이 됐고 급속히 성장했다. 2001년 중국의 미국 대비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12.7%에 불과했으나 2011년 48.6%까지 증가했다. 중국은 최혜국 대우라는 혜택과 개발도상국(개도국)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세계시장을 공략해나갔다. 게다가 거대한 시장 장벽에 의존한 경제모델, 국영기업에 막대한 보조금 지급, 환율 조작, 덤핑, 중국 진출 외국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 강요, 지식재산권 도용 및 기업 비밀 절취 등 불공정무역과 비(非)시장경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결국 미국을 비롯해 각국은 이른바 ‘차이나 쇼크’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차이나 쇼크란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을 계기로 중국산 저부가가치 상품이 세계시장을 뒤덮고 글로벌 교역 및 주요국의 산업 구조가 재편되는 등 세계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현상을 말한다. 중국산 저가 제품을 수입한 각국은 제조업 기반이 붕괴되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됐다. 각국 기업들은 값싼 중국산 제품과 경쟁하려면 가격을 대폭 낮춰야 했고, 파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일자리가 없어졌고 실업률이 급등했다. 1999~2011년 중국산 제품으로 미국에서만 24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12월 13일 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 전기차들이 선적을 위해 장쑤성 타이창항에 늘어서 있다. [CFP]

    지난해 12월 13일 외국으로 수출되는 중국 전기차들이 선적을 위해 장쑤성 타이창항에 늘어서 있다. [CFP]

    미국이 두 번째 차이나 쇼크를 막고자 특정 중국산 제품들에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 14일(현지 시간) 전기차, 철강·알루미늄 제품, 레거시(구형) 반도체, 태양광 전지, 주요 광물, 크레인, 의료 제품 등 중국산 제품들에 대한 관세 인상 조치를 발표했다. 전기차 관세를 25%에서 100%로, 철강·알루미늄 제품과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관세를 25%로, 레거시 반도체와 태양광 전지 관세를 25%에서 50%로 올린다는 내용이다. 천연 흑연과 영구 자석의 관세도 2026년에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백악관은 “중국은 그동안 기술이전 요구, 지식재산권 침해 등 불공정무역 관행을 통해 미국 업계와 근로자들을 위협해왔다”며 “중국은 인위적인 저가 수출로 세계시장에 제품들이 넘쳐나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슈퍼 301조’ 꺼내 든 美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5월 14일(현지 시간) 전기차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조치에 서명한 후 웃고 있다. [백악관 제공]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5월 14일(현지 시간) 전기차 등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 조치에 서명한 후 웃고 있다. [백악관 제공]

    미국 정부의 이번 조치는 무역법 301조에 따른 것이다. 이른바 ‘슈퍼 301조’로 불리는 무역법 301조는 교역 상대국의 불공정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행위 또는 특정 수입 품목으로 미국 내 산업에 차질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면 대통령 권한으로 무역 보복 조치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미국 정부는 5월 16일 중국산 태양광 패널 수입을 줄이기 위한 조치로 자국에 수입되는 양면형 태양광 패널의 관세 유예, 즉 면세 조치를 끝낸다고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친환경 에너지 생산에 필수적이라는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던 특혜를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수입 태양광 패널에 14.25%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대형 전력 사업에 사용되는 양면형 패널에는 관세를 면제해왔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캄보디아·말레이시아·태국 등 동남아 4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태양광 설비의 관세 유예도 6월 6일을 기점으로 종료하는 조치를 내렸다. 태양광 설비에서 핵심 부품인 모듈의 75%가 이들 4개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데, 이 모듈을 4개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생산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단호한 조치를 내린 까닭은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등 핵심 산업 분야와 연관된 제품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동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등을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 핵심 산업 분야를 적극 육성해왔다. 그런데 중국이 저가 제품을 대량 생산해 이 분야의 기반을 무너뜨리려 하자 관세 대폭 인상이라는 승부수를 꺼내 든 것이다. 말 그대로 ‘2차 차이나 쇼크’를 막기 위해서다.

    1차 차이나 쇼크 당시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습을 받은 미국 등 선진국은 이미 경쟁력을 잃은 사양 산업에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2차 차이나 쇼크를 막지 못할 경우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생산하는 첨단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은 이제 해외 기업을 위해 조립이나 해주는 나라가 아니라, 하이테크 분야 선두 주자가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산 첨단 제품에 대한 관세 인상뿐 아니라 인공지능(AI), 커넥티드 카(스마트카) 등 중국 첨단기술을 통제하는 추가 경제 압박 조치도 고려하고 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5월 16일 워싱턴 소재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와 대담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웠다”며 “미국에서 두 번째 차이나 쇼크가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브레이너드 위원장은 “중국이 기술 강제 이전 요구와 지식재산권 탈취, 차별적 규정 등 시장경제에 반하는 관행을 통해 경쟁국 기업들을 밀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국이 전기차, 태양광 패널, 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집중해 생산비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바람에 다른 국가 기업들이 가격 측면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할 수 없고 아예 투자를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브레이너드 위원장은 “특정 부문에서 중국 산업의 과잉 생산과 수출은 시장에 기반을 둔 혁신 및 경쟁, 우리 노동자와 공급망의 회복력을 약화하고 있다”며 “주요 7개국(G7)은 물론, 주요 20개국(G20) 파트너와 우리의 공동 이익 증진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G7 의장국인 이탈리아의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장관은 “유럽도 미국처럼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캐나다 등 선진국은 미국처럼 중국산 첨단 제품에 비슷한 조치를 내리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조지프 웹스터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관세를 높이면 중국산 저가 제품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갈 수 있다”며 “EU가 신속하게 관세를 올리지 않는다면 중국산 홍수를 맞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중국 수출에서 최고 히트 제품은 전기차·리튬이온배터리·태양광 패널 등이었다. 이들 제품의 전체 수출액이 1조 위안(약 188조2900억 원)을 돌파했다. 중국은 지난해 전기차 약진에 힘입어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BYD는 기존 강자 테슬라를 2위로 밀어냈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지난해 글로벌 태양광 패널 가격이 25% 이상 급락해 유럽 태양광업체들이 대거 파산하기도 했다. 인도, 브라질, 남아공, 칠레 등 개도국은 철강을 포함해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30년 맞는 WTO 체제 흔들

    중국도 자국 제품의 관세를 인상한 국가들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반격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를 예고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모든 필요한 조치를 통해 정당한 권익을 수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8년 시작된 제1차 미·중 무역 전쟁에 이어 제2차 무역 전쟁이 벌어지게 된 셈이다.

    향후 글로벌 통상 질서가 새롭게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각국은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 등 선진국은 동맹국은 물론, 뜻이 맞는 국가들과의 연대·협력에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를 ‘좁은 마당에 높은 장벽(a small yard with high fence)’이라고 표현했다. 동맹국을 중심으로 좁은 마당을 형성한 뒤 지향점이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높은 울타리를 치겠다는 것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국가 간 경제제재와 국제기구들의 기능 마비 등으로 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내년 30주년을 맞는 WTO에 사실상 ‘사망 선고’ 판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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